마지막 집창촌, 평택 ‘쌈리’는 새롭게 ‘교차’할 수 있을까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2024. 8. 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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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삼리’와 ‘교차공간 818’…옛 성매매집결지에 마련된 문화 공간
평택은 다시 소외를 포용하는 도시가 될 수 있을까

(시사저널=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20여년 만에 재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평택역 집창촌 일대 '평택1구역'. ⓒ김지나

평택역 앞 '쌈리'라 불리던 곳이 있었다. 우리나라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라고도 하는 유명한 집창촌이다. 비단 평택 뿐 아니라 성매매업소들은 유독 역 앞에 많이 생겼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기차역 특유의 분위기 때문일까. 나들이 여행객들, 바쁜 출퇴근길에 나선 직장인들, 하릴없는 유랑객들이나 노숙자까지, 기차역 풍경은 마치 우리 사회의 축소판 같다. 그렇게 오래 머무르지 않고 굳이 서로 알 필요도 없는 이들이 한데 섞여 성매매라는 무책임한 일탈의 장소를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다.

집창촌 재개발은 언제나 '지우기'의 과정이었다. 성매매업은 완전한 단속이 불가능하다고들 이야기한다. 엄연한 불법임에도 전국 곳곳에서 버젓이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다. 그래서 지도를 아예 바꿔버리는 식으로 철거가 이루어진다. 성매매를 없애기 위해 재개발을 한다기보다 전면 재개발이 필요할 정도로 정상적인 도시 기능이 사라져 버린 자리에 집창촌이 들어선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평택역 주변은 주거상업단지, 광장, 공원 등으로 재개발될 예정이다. ⓒ김지나

공간을 지우는 과정에서 함께 지워지는 종사자들

평택역 주변도 비슷한 사정이었다. 첨단산업단지가 들어오고 신도시가 개발되는 와중에 평택역이 위치한 원도심은 상대적으로 더 쇠락해져 갔다. 게다가 도시를 대표하는 역 앞에는 성매매업이 성행했다. 재개발 필요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땅 소유주들, 건물주들은 무려 20여 년 동안이나 반대 입장이었다. 도시적 맥락에서 아무리 명분이 타당해도 실리는 그렇지 않았다는 뜻이다. 코로나19가 유행하고 다른 종류의 성매매업이 흥하자 비로소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졌는지, 지난 5월에서야 겨우 조합추진위원회가 구성되며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상황이다.

그런 장소에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이들은 법적으로는 물론 사회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도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오죽하면 집창촌을 '인생의 종착역'이라 부를까. 막다른 길 끝에 갇힌 성매매종사자들의 다음 여정에 관한 계획은 평택역 재개발 청사진 속 어디에도 없다. 성매매집결지에는 민간 건설사에서 세련된 주거상업시설을 올릴 예정이고, 평택역 광장은 시민에게 돌려준다며 복합문화공간이란 애매모호한 이름으로 홍보되고 있었다.

지난 연말 대안공간 '공간삼리'와 '교차공간818'에서는 평택역 주변 지역의 역사와 기억을 주제로 미술전시가 열렸다. ⓒ김지나

그런 가운데, 평택역 광장과 옛 쌈리 사이 경계석처럼 놓인 두 개의 공간이 눈에 띈다. '공간삼리'와 '교차공간818'이란 곳이다. 전시홍보를 위해 외벽에 걸어놓은 현수막이 아니었다면 그저 폐업한 업소 건물 중 하나라고 착각할 만하다.

거리를 향해 유리문들이 늘어선 '공간삼리'의 1층은 마치 저녁이 되면 붉은 조명이 들어와 호객 행위를 하는 여성들이 앉아 있을 것만 같지만 '전시입구'란 작은 사인이 이 장소의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교차공간818'은 오래된 냉면집 2층에 있었던 여관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들어졌다. 특이하게도 삼리 집창촌 재개발을 맡은 건설사가 매입한 건물을 무상으로 내준 공간이다. 이질적인 것들이 교차하면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818'은 교차의 이미지를 가진 숫자이자, 공간 오픈을 결정한 날짜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평택역 집창촌 '삼리'의 폐업한 옛 성매매업소 건물. ⓒ김지나

공간의 교차에 배제나 혐오는 없어야

재개발을 추진하는 건설사가 나서 이런 문화공간의 기반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꽤 인상적이다. 지난 연말에는 평택역 주변의 의미를 되짚는 미술 전시도 열었다. 여기에는 건설사 대표가 직접 작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물론 전시공간이 생기고 예술가가 돌아다닌다고 해서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예술은 질문을 던진다. 혁명을 제안하고, 소외된 것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

흔히 평택을 '개방과 혼종의 도시'라 부른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실향민이 대거 유입됐으며 북한이탈주민, 외국인노동자 등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포용해 왔다. 다문화, 다양성은 평택의 중요한 도시정체성으로 꼽힌다. 평택역 재개발은 '집창촌'이란 이름으로 왜곡되어 온 도시 공간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사업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배제와 혐오가 일어나지는 않아야 할 테다. 그러기 위한 대안공간들의 역할은 무엇이 돼야 할까. 재개발로 모든 것이 바뀌기 전, '문화다양성의 도시' 평택만의 방향성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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