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토막 리뷰] 소세지가 될 운명의 돼지가 주역인 '잔혹동화'
최근 국산 인디게임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인디게임이라고 하면 비교적 저비용으로 제작한 게임을 뜻하지만, 최근에는 작은 규모의 게임들도 PC의 경우 스팀이나 스토브, 그리고 모바일에서의 구글플레이나 iOS 앱스토어를 통한 출시가 과거에 비해 용이해 졌기 때문에 단순히 작은 규모라 해도 대중과 접하기가 매우 쉬워졌다.
이에 따라 대형 게임사들도 이 시장에 주목하고 퍼블리싱에 나서거나 사내에 작은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직접 인디게임을 제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달 25일 게임 플랫폼 스팀과 스토브에 정식 출시한 '피그로맨스'는 이 중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게임의 배급을 맡고 있는 그라비티는 이전에도 인디게임에 적지 않은 관심을 가져오고 지원해 온 게임사다. 'START with GRAVITY'를 통해 지난해부터 'Wetory', 'ALTF42', '심연의 작은 존재들', '파이널 나이트', '라이트 오디세이', '샴블즈' 등의 게임에 대한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했다.
인디게임이 주목받는 이유라고 하면 비교적 저예산이 투입되지만, 기존의 대형 게임들이 쉽게 발 담그기 어려운 참신한 게임을 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패해도 부담이 적다는 것은 모험적인 시도나, 대중의 취향에서 다소 벗어나더라도 매니아를 겨냥한 게임도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어서다.
게다가 시장이 국내로 한정되던 과거와 달리 전세계로 확장된 현재에 있어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것보다 소수 매니아들을 겨냥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시장을 형성할 수도 있어 상업적으로도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할 수 없다는 점도 인디게임이 주목받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피그로맨스'에 대해 기자가 직접 경험한 뒤 내린 평가는 이런 인디게임의 미학을 주제나 스토리 면에서 잘 살린 게임 중 하나라는 것이다.
사실 이 게임이 액션이나 퍼즐로서의 가치를 따진다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더 잘 만든 게임은 수없이 많다. 당장 같은 시장에서 슈퍼마리오와 경쟁한다면 당연히 이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잔혹동화'스러운 분위기로 게이머에게 메이저 게임사들이 주기 어려운 경험을 준다는 점이 주목할 만 하다.
일단 이 게임은 농장에서 주돈(豚)공인 돼지가 탈출하면서 시작하는데, 모든 돼지들의 몸에는 정육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위별로 구분한 점선이 그려져 있다. 식용을 목적으로 사육중인 돼지임을 잘 드러내는 장치다.
잡히면 그냥 깜빡이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점선에 따라 몸이 토막나면서 죽는다. 탈출을 위해서는 같은 돼지들을 전기톱의 제물로 바쳐야 하는 내용도 있다. 피는 안 튀며 가학적이라는 비난을 살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기에 신경이 쓰이지 않는 편은 아니다.
만일 돼지가 아니라 사람이 탈출하는 내용이었으면 미성년자에게 권하기는 매우 꺼림칙한 게임이었을 수도 있겠다. 참고로 이 게임은 12세 이용가다.
난이도는 낮지 않다. 특히 중간에 게임 내 메인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커팅맨'이 쫒아오는 상태에서 도망가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 몇 차례 있는데, 평범한 게이머라면 캐릭터가 수 십 차례 생햄, 또는 통구이가 되는 것을 감상하게 된다. 종합하자면 이 게임이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게임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게임의 돼지는 매우 귀엽다. '도도도' 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돼지의 모습을 보면 이 게임의 타깃 층이 어린이를 위한 게임으로 착각하게 한다. 적인 커팅맨도 웃고 있는 얼굴이 그려진 앞치마가 귀엽고, 결코 혐오스럽지 않다.
기본 조작도 이해하기 쉽다. 조작은 방향키를 통한 이동과 점프, 빠른 이동과 게임 내 사물과 상호작용하는 버튼, 그리고 게임 중반 이후 동료와 컨트롤을 전환하는 버튼, 여기에 특이한 액션이라고 하면 방향키를 아래로 하면 바닥에 붙을 수 있다는 정도다. 방향키를 포함해 단 3개의 키만 사용한다.
분위기만 얼핏 보면 거의 디즈니의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만한 수준이다. 사실적으로 묘사된 내장 안에 같이 탈출한 친구 돼지의 살점을 보관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징그럽거나 한 부분은 거의 없다. 주인공 돼지의 굿즈를 제작하면 귀엽다는 이유로 잘 팔리지 않을까 싶은 정도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내용은 다소 잔인하거나 혐오스러울만한 부분이 섞여 있으니 어린이에게 이 게임을 권했다가는 공포스러운 내용이 밤에 잠을 못자고 부모의 침실에 찾아오게 만들 수도 있겠다.
게다가 어린이가 성장기에 이 게임을 한 뒤 돼지나 소, 닭에 감정이입해 채식주의자가 된다면 그것도 부모 입장에서는 곤란할 것 같다. 실제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으로 극장에서 상영했는데, 횟감인 고등어가 주역이고, 물고기의 감정 표현과 동작이 세밀하고, 횟감으로 죽어가는 모습도 사실적이어서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겼던 사례도 있었다.
난이도 조절도 약간은 애매하다. 중간에 급격하게 올라가는 난이도 때문이다. 기믹도 어떤 장치들은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가는 구간이 있다. 예를 들어 파이프들을 연결하는 부분에 있어 딱 맞추면 풀릴 것 같은 부분에서 사실은 딱 맞추지 않아야 통과가 가능한 부분이 있었고, 굳이 없어도 될 만한 장치도 있었다.
이는 기믹에 대한 자연스러운 이해를 유도해 플레이어의 납득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풀다만 퍼즐을 방치하고 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부여한다.
실제로 이 게임에 대한 평가 중에는 "어린이를 위한 게임이라기는 잔인하고 어려우며, 성인이 즐기기에는 유치하다"라는 내용도 있었는데, 이는 사실 게임의 제작 단계에서 본다면 실패라고 할 수 있다. 목표 수요층이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디게임이다보니 이런 애매모호한 콘셉트가 장점이 된다. 무언가 껄끄럽고, 대중성이 결여돼 있다고 불 수 있겠지만, 독특한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콘텐츠로서의 의의를 갖고 있다고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장점을 중심으로 평가하면 다소 부족한 게임성도 충분히 눈감아 줄 수 있다. 급작스럽게 올라가는 난이도도 게임성이 아니라 게임의 음산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장치로 이해하면 매우 적절한 배치로 보인다.
이 게임의 장점은 또 있다. 우선 게임 내에 대사가 없다. 번역을 한다면 타이틀이나 옵션만 손보면 될 정도다. 필요이상 긴 인트로나 중간에 지루한 영상 삽입을 통해 스토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을 부여함으로서 게이머가 감정의 동선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한 것은 분명 이 게임의 장점이다.
게다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해도 죽으면 바로 사망 직전의 상황에서 재시작하게 되므로 어떤 난이도든 꾸준히 시도만 한다면 클리어가 가능하다. 단지 시간이 조금 많이 걸릴 뿐이다.
최근 인디게임들의 많은 출시는 한사람의 게이머로서 환영할 만 하다. 하지만 상당수의 게임들이 이미 인기를 끈 게임의 장르를 빌려와 약간의 변형을 가하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인디게임 페스티벌에 '키우기'나 '뱀서라이크' 등의 게임들이 상당수 출시된 것 등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진짜 다양성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인디'스럽다고 할 만 한 게임의 출시는 반갑다. 어떤 이들에게는 "왜 이런 게임이 나왔지?" 라는 반응이 나올수 있겠지만, 적어도 기자와 같은 게이머들에게는 "아 이 게임 굿즈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평가를 내리자면, 특이한 경험이나 정서적 자극을 원하는 게이머들, 혹은 특이한 게임에 대한 도전심을 불태우는 게이머들에게는 충분히 추천할만하다. 인디 게임의 중요한 가치라고 할 수 있는 '다양성' 면에서도 좋은 게임이고, 주역인 돼지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반면 제작진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게임의 심의 기준인 12세 이상 어린 게이머들에게는 결코 권하고 싶지 않다. 섬세한 성장기에 돼지고기를 볼 때마다 이 게임을 떠올리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다.
[이동근 마니아타임즈 기자/edgeblu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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