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석의 식사(食史)]K푸드 열풍의 원조 '비빔밥'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몸에 기운이 없거나 입맛이 돌지 않을 때는 쓱쓱 비비는 것이 답이다. 어지러운 세상은 어지러운 식단으로 해결 가능하다. 이것저것을 섞어 놓았대서 골동(骨董)을 써 골동반(骨董飯)이라 부르는 비빔밥이다. 때론 골(汨)자를 쓰기도 하는데 이걸 굳이 밝히는 것 또한 어지러우니 아무래도 상관없다.

한국인 특유의 미각인 ‘복합미’(여러 가지가 함께 내는 맛)를 추구하는 대표 음식이다. 밥에 여러 반찬을 넣고 쓱쓱 비벼 한입에 맛볼 수 있으니 간편하기까지 하다. 반찬을 따로 집어먹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식이섬유 등 영양 균형도 맞다.
그 편의성은 샌드위치나 햄버거에 비견된다. 비빔밥이나 김밥, 샌드위치, 햄버거 등은 원리가 비슷한 음식이다. 다만 채소를 많이 쓰는 비빔밥이 훨씬 건강에 좋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옛날부터 즐겨먹었다. 시의전서 등 고문헌에는 ‘부븸밥’으로 등장한다. 오래전부터 먹어왔던 까닭에 요즘 식단에 비해 역사가 무척 길다. 선비들은 제삿밥으로, 농부는 새참으로 밥을 비볐다. 걸인은 빌어오며 저절로 비벼진 밥을 먹었다.
급식 이전 세대들은 학교에 싸온 양철 도시락에 여러 반찬과 김칫국물을 넣고 흔들어 섞은 비빔밥에 대한 기억이 있다. 한국인이라면 시대를 떠나 왕후장상과 장삼이사가 모두 즐겨왔던 음식이 비빔밥이다.

요즘 K푸드의 인기에 한몫하는 것도 비빔밥이다. 김치, 김밥, 치킨 등과 함께 비빔밥은 ‘한류 음식’의 대표 주자다. 예쁘고 화려한 데다 채소를 많이 쓰니 외국에서 인기가 높다. 특히 할리우드 스타, 팝뮤지션이 비빔밥을 자주 언급하는 바람에 덩달아 인기가 치솟았다.
1997년 내한 당시 비빔밥에 만족해 한 뒤 무한한 애정을 표시한 마이클 잭슨이 대표적이다. 어디를 가나 비빔밥이 최고였다고 말하고 다녔다. 당시 잭슨이 투숙했던 서울신라호텔에는 고추장과 고기고명 대신 간장과 채소를 쓴 ‘마이클 잭슨 비빔밥’이 메뉴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기네스 펠트로, 패리스 힐튼, 니콜라스 케이지 등이 비빔밥 예찬을 펼친 스타들이다.

비빔밥은 사실 형식이다.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생겨난다. 넣는 재료에 따라 ‘○○비빔밥’ 식으로 메뉴가 달라진다. 산채, 콩나물, 육회, 꼬막, 게알, 게장, 젓갈, 낙지, 주꾸미 비빔밥 등이 있다.
용기(그릇)에 붙는 경우도 있다. 양푼, 돌솥, 냄비, 도시락, 철판, 항아리 비빔밥 등은 어디에 밥을 담아내느냐에 따라 붙은 이름이다. 지역명이 앞에 붙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전주비빔밥을 필두로, 이에 필적할 만한 유명세를 뽐내는 진주비빔밥, 전북 익산 황등비빔밥, 기름에 볶은 밥을 올리는 황해도 해주비빔밥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통영, 함평, 평양, 거제 등이 맛있다고 알려진 지역이다.
이름에 비빔밥이 따로 붙지는 않지만 안동 헛제삿밥은 대개 비벼 먹는다. 따로 차리지 않고 한 번에 음복하기에도 좋다. 좋아하는 찬을 올리고 비벼서 마무리한다. 중국에는 없는 중화비빔밥도 있다. 대구 경북 지방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음식이다. 채소와 해물을 매콤하게 볶아 밥을 비벼먹는 데 이게 또 별미다.
각종 반찬에 밥을 비비는 것이 비빔밥의 주된 특성이다. 골고루 비비기 위해 소스로 고추장을 쓰거나 간장, 강된장, 양념간장을 쓰기도 한다. 짭조름한 강된장은 밥을 비벼먹기에 최고의 소스 구실을 한다. 우렁을 넣고 자작하게 지진 된장찌개는 아예 비빔밥을 위해 올린다. 참기름은 없어도 되지만, 보통 넣어야 더욱 맛이 난다. 젓가락을 쓰면 밥알이 뭉개지지 않고 잘 섞인다.

일부 외국인은 비벼진 모양을 잔반처럼 느끼는 경우가 있어 비비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특히 일본인들은 비빔밥이 처음 소개됐을 때, ‘그들의 방식대로’ 비비지 않고 살살 덜어 먹었다.
하지만 이것도 옛날 얘기다. 요즘은 한류 열풍을 타고 비빔밥이 인기 메뉴로 부상하면서 뜨거운 돌솥 비빔밥까지 쓱쓱 비벼 잘만 먹는다.
외식 메뉴로도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일제강점기에도 팔았다고 한다. 울산에 위치한 함양집은 1920년대 개업했다. 당시에도 충분히 값나가는 음식이었다. 쌀밥이 기본이고, 고기도 들었으니 당연하다.
기록에 따르면 1937년 종로 화신백화점 옥상 화신식당에서 25전에 팔았다. 당시 경성에서 최고로 유행하던 자랑거리는 화신백화점에 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에 올라가 비빔밥을 먹는 것이었다. 이후에도 줄곧 한식당에선 어김없이 비빔밥을 판다.
비빔밥은 빠르고 간편하게 한 그릇 뚝딱 하기 좋고 든든하니 직장인 점심 메뉴로 인기가 높다. 또 재빨리 차릴 수 있고 손님도 얼른 먹고 나가니 식당업주 입장에서도 환영이다. 항공사에서도 내외국인 손님들이 선호하는 기내식 메뉴라 매우 유용하다. 데워서 주면 알아서 척척 비벼먹는다. 대한항공은 비빔밥 기내식으로 히트를 쳤다.

▶함양집=100여년 가까이 영업해온 노포다. 위치는 울산이요, 상호는 함양인데 비빔밥은 진주식이다. 당연히 육회비빔밥으로 소문났다. 일일이 채를 썰고 알고명을 부쳐 올리는 등 손맛 깃든 육회비빔밥을 쓱쓱 비벼 함께 내는 배춧국과 함께 맛보면 거뜬하다. 고기가 잔뜩 든 파전(육전 격이다)도 맛있고, 슴슴한 메밀묵도 별미다. 울산 남구 중앙로 208번길 12.
▶돌솥밥집=‘국제시장 비빔밥집’으로 유명한 곳. 김치찌개와 순두부찌개를 주문하면 돌솥에 밥을 지어 따라온다. 달걀프라이와 고추장, 나물을 담은 그릇에 비벼먹으라는 뜻이다. 장은 살짝 넣고 찌개에 비비는 편이 낫다. 미더덕과 꽃게를 넣고 구수하게 끓인 된장찌개가 압권이다. 짭짤한 국물은 비빔밥에 퍽 어울린다. 마무리는 숭늉을 넣은 돌솥 누룽지로 하면 된다. 부산 중구 광복로37번길 7-1.
▶한일식당=익산 사람들의 자부심 중 하나가 전주보다 맛있다고 주장하는 ‘황등 비빔밥’이다. 석재로 유명한 황등면에서 자생적으로 발달한 육회비빔밥이다. 오랜 세월 영업해 온 비빔밥집이 여럿 있다. 밥 위에 살짝 간을 한 육회를 듬뿍 올리고 알고명과 다양한 채소를 얹은 밥이 나온다. 그냥 그대로 비벼먹으면 된다. 미리 비벼놓은 ‘비빈 밥’이다. 존존한 육회가 생명이다. 시원하니 맑은 선짓국을 준다. 익산시 황등면 황등로 106.
▶선영이네=연포탕과 낙지철판 등을 파는 낙지 전문 노포인데 점심에는 매콤한 양념의 낙지볶음을 그릇에 비벼먹는 손님이 많다. 칼칼한 낙지볶음의 존재감이야 워낙 세니 콩나물과 김 가루만 넣어도 조화롭다. 땀 뻘뻘 흘리며 한 그릇 뚝딱하기 좋도록 시원한 열무김치 국물이 따라나온다. 첫맛 짜릿하고 감칠맛 품은 매운 양념 맛에 은근 중독되기 쉽다. 낙지에 비해 저렴한 주꾸미 비빔밥도 있다. 서울 중구 을지로3길 30.
강경록 (roc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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