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절벽 앞에 선 시니어들 “내 나이가 어때서”
[편집자주] 대한민국이 늙어가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7월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노인인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급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경제 활동 인구와 노인 부양 인구가 줄고 있다. 초고령사회를 맞아 노인의 정년 기준을 재정립하고 노동 체계를 되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노인 고용을 늘리면 국내총생산(GDP)이 올라갈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현재 ‘노인’의 고용 형태는 어떤지, 이들의 인력을 활용하면 경제성장률 등 사회 체계는 어떻게 바뀌는지 들여다본다.
지난 7월 17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 위치한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는 일자리를 구하는 어르신들로 북적였다. 기자는 이날 펀더플드림협동조합 조합원으로 활동 중인 홍수형(67) 이사장, 변창수(70)씨, 최승희(66)씨를 만나 시니어 재취업에 대해 들어봤다.
펀더플드림협동조합은 은퇴 후 건강하고 안정적인 노년기를 준비할 수 있도록 자원 및 서비스를 연계하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에서 자판기 관리 업무를 하는 변창수(70)씨는 “생활비, 건강유지, 사회적 지위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많은 시니어가 일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함께한 김슬기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팀장은 “센터와 노인복지관 취업알선상담과에 매년 1만 명가량이 상담을 신청하는데 이 중 4000~6000명 정도가 생계형일자리로 직업을 구하는 분들”이라며 “각자 가정사에 따라 아직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은퇴자가 많다”고 말했다.
김 팀장에 따르면 고위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은퇴했지만 자녀가 아직 어려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혼 이후 가정주부로 지냈던 50~60대 여성들이 남편의 은퇴와 함께 노동시장에 나오기도 한다.
지난 2월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행정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운영하는 취업정보 사이트 ‘워크넷’에 올라온 신규 구직 건수는 모두 477만6288건으로, 이 중 95만9602건(20.1%)이 60세 이상의 구직이었다. 구직자 5명 중 1명이 60세 이상이다. 60세 이상 구직자를 연도별로 보면 △2015년 14.1% △2017년 17.1% △2019년 17.5% △2021년 17.7% △2022년 19.0%로 증가세다.
사회 속의 ‘나’를 찾기 위해 재취업을 결심하는 경우도 많다. 자동차 관련 대기업에서 33년간 근무하고 정년퇴직을 한 홍수형(67)씨가 그렇다. 그는 “정년퇴직 후 가족과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왜 여기에 있지’, ‘무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학교에서 배우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를 체감한 순간이라고 했다.
홍씨는 “무엇을 해야 할지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를 알게 됐다”며 “그렇게 ‘실버인지활동강사 양성 과정’을 수료하고 취업준비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람회 첫날인 25일 직업 상담을 받은 손정표(67)씨는 경비와 주차관리 업무를 추천받았다. 해당 직업이 현재 하는 일과 관련 없지만 그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손씨는 “나는 엔지니어가 아니라 기술이나 자격증이 없다. 문과 출신에 관리직 경력이 전부”라며 “65세 넘어서 일을 하려면 큰 욕심을 부릴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고령자의 안전과 안정된 노후생활을 위해 △공익형 △사회서비스형 △민간형 등의 노인 일자리 연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일자리의 수는 많지만 대부분 단순노무직이거나 돌봄·요양 관련 업무이다. 기업 채용 등의 민간형 일자리는 비교적 적다.
더 라이프스타일 박람회에서 만난 강모(60)씨는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는 “올 3월에 은퇴했다. 생활비, 대출금, 노후 준비 등으로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 주도의 공공형, 사회서비스형 일자리는 근로 시간과 월급이 적어 실질적으로 가계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하철택배원, 어르신 도보배달원 등의 직업들도 경쟁률이 치열하다. 노인일자리 전문가는 “지하철 택배도 서류, 치과기공물, 근조기 등 분야가 다양하다. 연령에 따라 종류를 달리해 일할 수 있어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과거 10~20대가 장악했던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시니어가 늘고 있다. 맥도날드에서 근무하는 중장년층 파트타이머인 ‘시니어 크루’는 약 650명으로 나타났다. 2022년 대비 약 34% 증가한 수치다. 매장 청결 유지나 시설 관리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통계청 경제활동조사에 따르면 고령층 취업자 23.2%가 단순 노무 종사자이며, 서비스 종사자는 13.9%에 달했다. 지난 6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75세 남성 취업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연령이 높아질수록 전문직, 관리직 비중이 줄어들고 반복적이고 신체적인 업무 비중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재취업을 준비하다 정부주도 일자리에 근무 중인 한 시니어는 “재취업 시 사무직으로 다시 들어가 일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며 “나이라는 유리천장에 갇힌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려운 전문 기술이 아니더라도 일반 사무직은 나이가 있어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월급을 청년의 절반만 받더라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은 고령근무자의 계속 고용을 제도화했다. 일본의 법정 정년은 우리나라와 동일하게 60세이지만 노동자가 원한다면 65세까지 일할 수 있다. 정년이 65세 미만인 기업은 △정년연장 △정년폐지 △60세 이후 재고용을 통한 계속고용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기업에 60세 이상의 노동자를 낮은 임금으로 재고용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준 것이다. 지난해 고용 확보 조치를 한 기업 중 79.3%는 계속 고용제도를 선택했다. 재고용 시 임금이 하락해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재취업에 성공한 시니어들은 ‘과거의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에서 임원을 했던 나, 고위직 공무원이었던 나와는 이별해야 한다는 슬프지만 당면한 현실이다. 어르신 취업준비 수업을 진행하는 한 강사는 “노년퇴직자에게 취업 가능한 직종이나 급여 수준에 대해 설명하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며 “퇴직 전의 좋은 조건, 좋은 회사 등만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일에도 도전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신재은 기자 jenny091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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