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자랑거리 된 든든한 ‘마포 효자’, 효도밥상

신재은 기자 2024. 8. 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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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세상을 바꾸는 정책]75세 이상 1000명에 점심 제공, 담소하며 모두가 ‘식구’
[편집자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량은 ‘정책’의 기획과 실행 능력으로 평가된다. 한정된 예산으로 얼마큼 효율적인 정책을 펼치느냐에 따라 주민 삶은 크게 달라진다. 우리 동네에 ‘안심가로등’이 설치되는 것부터 출산과 양육 지원까지 모두 정책의 영역이다. ‘체험 세상을 바꾸는 정책’은 기자가 직접 정책 현장을 찾아가는 코너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해당 정책의 실효성을 검증한다. ‘더 좋은 정책’을 위해 대안을 제시, 독자들과 정책 대상자들에게 사랑받는 코너로 자리 잡는 게 목표다.

▲ 한 어르신이 마포구 공덕동 실뿌리복지센터 효도밥상을 찾아 출석체크를 하고 있다./사진=최현승 기자
“어르신, 오늘 효도밥상 드시러 안 오세요? 네~ 조심히 오세요!”

지난 7월 15일 오후 12시 서울 마포구 실뿌리복지센터 내 ‘효도밥상’ 경로당, 근무자가 아직 오지 않은 어르신에게 전화를 걸어 참석 여부를 확인했다. 이미 경로당은 식사를 하기 위해 모인 어르신들로 북적였다. 어르신들은 익숙한 듯 QR코드나 이름을 통해 출석을 확인하고, 자원봉사자는 어르신께 오늘의 식단을 안내했다. 이날의 식단은 △열무된장국 △야채계란찜 △멸치땅콩조림 △순대야채볶음 △실곤약무침 △건파래무침 △배추김치로 구성됐다. 영양사가 필수 영양성분을 고려해 정성 들여 준비한 식단이다. 마포구는 매일 어르신들을 위한 ‘효도밥상’을 차린다.

어르신의 하루 일과가 된 ‘효도밥상’
▲효도밥상에서 식사 중인 어르신들/사진=최현승 기자
“거기 혼자 있지 말고 이쪽으로 와서 같이 먹어요.”
“그럴까요? 같이 먹어야 맛나지.”

혼자 식사를 시작한 한 어르신에게 다른 어르신이 말을 걸었다. 어르신들은 식사를 하며 병원에서 검진받은 이야기, 손자 손녀 자랑 등을 늘어놓았다.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었다. 효도밥상을 찾은 신순영 어르신(89세)은 “혼자 먹는 것보다 여럿이 같이 먹어야 입맛도 돈다. 집에서는 아무렇게나 차려 먹는데 여기 나와 정성껏 준비한 밥을 먹을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

인터뷰를 듣고 있던 배영자 어르신(83세)은 마포구 자랑을 늘어놨다. 그는 “딸에게 효도밥상 자랑을 했다. 딸이 시어머니에게도 추천하고 싶어 검색해봤더니 마포구에서만 이 사업을 한다고 하더라. 뿌듯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용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식사를 마친 몇몇 어르신은 자리에 남아 함께 식사한 이들과 담소를 나눴다. 신순영 어르신은 “일 운동할 겸 나와 식사하고 친구들과 함께 산책도 한다”고 했다. 어르신에게 ‘일상’이 생겼다.
전국 유일…75세 어르신이면 누구나
▲어르신들이 차례로 식사를 담고 있다./사진=최현승 기자
효도밥상은 75세 이상의 어르신에게 무료로 점심식사를 제공하는 마포구의 노인 복지 프로그램이다. 전국 최초이자 유일하다. 평일은 지정된 식당에서, 토요일은 집에서 먹을 수 있는 대체식으로 제공한다. 처음 17개 식당에서 시작된 이 사업은 1년 3개월이 지난 지금, 33개소로 확장됐다. 제휴 식당, 종교복지시설, 경로당 등에서 매일 1000명의 어르신이 효도밥상을 이용하고 있다.

지원 자격에 소득 수준을 포함하는 여타 사업과는 달리 연령 기준만 충족하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다. 단 홀몸어르신이 우선이다. 복지센터와 아파트 관리사무소, 통장 등을 통해 홍보를 진행한다. 홍보 현수막이나 팸플릿도 적극 활용한다. 이날 효도밥상을 찾은 어르신들도 아파트 관리사무소, 복지센터 직원, 주민의 추천으로 효도밥상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강수 서울 마포구청장은 “우리나라가 마주한 ‘초고령사회’에 대한 대비로 어르신들의 식사와 함께 일상을 지켜주는 ‘효도밥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효도밥상, 원스톱 통합서비스 제공
효도밥상은 식사를 배달하지 않는다. 어르신을 밖으로, 사회로 나오게 유도한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함이다. 식사를 하기 위한 발걸음이 운동이 되는 것은 덤이다. 이 때문에 이용 대상자를 급식 기관을 중심으로 반경 200m 이내 거주 어르신으로 정했다.

효도밥상은 식사를 넘어 안부를 묻는다. 효도밥상에 참석하지 않은 어르신에겐 직접 전화를 걸어 참석 여부와 안부를 확인한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어르신이 오시지 않으면 연락을 취해보고, 받지 않으시는 경우엔 직접 자택에 방문해 어르신들의 일상을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무더위에 쓰러져 식사하러 오지 못한 노인을 발견해 구조하기도 했다.

박 구청장은 “어르신들이 효도밥상에 나와 함께 식사하고 소통하면서 우울감이 낮아지고 활력을 찾았다고 한다. 고독사도 예방되는 등 어르신들의 식사 값보다 사회적 비용 감소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마포구는 식사를 통해 모인 어르신에게 ‘원스톱 통합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초 건강 상태 관리 △행정서비스 제공 등이다. 각 동 주민센터 소속 방문간호사가 정기적으로 효도밥상 식당을 찾아 기초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고혈압이나 혈당 관리 등을 돕는다.

법률, 세무, 건강 상담 등 어르신에게 필요한 행정서비스도 제공한다. 구 소속 공무원이 주기적으로 찾기에 민원 소통 창구 역할도 한다. 이택수 어르신(80세)은 “노인들이 직접 복지센터를 찾아가는 것도 힘들고 컴퓨터로 신청하는 것도 정말 힘든데 직접 만나서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어서 좋다”며 “혈당과 혈압을 재주는 간호사가 더 자주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효도밥상 반찬공장에서 매일 신선하게 만들어진 식사가 배달되고 있다./사진=최현승 기자

마포구는 지난 4월 효도밥상에 제공될 음식을 조리하는 ‘효도밥상 반찬공장’을 건립했다. 반찬공장에는 영양사와 상시근로자, 자활근로자 등이 1000인분 정도의 음식을 생산한다. 반찬공장을 운영하게 된 이유는 수혜 범위를 대폭 확대하기 위함이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지 않고도 더 많은 어르신에게 효도밥상을 제공하기 위해 고민한 결과 조리시설을 갖춘 급식시설을 확보하는 대신 반찬공장을 만들어 대량으로 음식을 조리하는 방법을 생각했다”며 “이렇게 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더 많은 어르신께 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구는 내년 반찬공장 1개소를 추가로 설립해 효도밥상 수혜 대상을 1500~2000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온 마을이 함께 만드는 효도밥상
▲서울 마포구 성산1동 변문희 어르신이 사후에 부동산과 금융자산 등 모든 재산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기부하기로 약속해 마포복지재단이 기탁증서를 전달했다./사진제공=마포구청
효도밥상은 구민의 힘으로 운영된다. 구민들은 기부금과 봉사활동으로 효도밥상 운영에 동참한다. 구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적립된 후원금품 기탁액은 현물 1억원을 포함해 총 11억원이다. 주민과 지역 상인, 기업이 힘을 모아 어르신의 한 끼에 정성을 보태고 있다. 성산1동 주민 변문희 어르신은 지난 1월 12일 전 재산을 효도밥상 사업과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밝혔고, 지난 4월 19일에는 공덕동 주민 권경환 씨가 세상을 떠난 아들을 대신해 효도밥상에 후원금을 기탁했다.

구 관계자는 “더욱 고무적인 점은 소액 정기후원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라며 “구는 반찬공장 운영에 필요한 일부 운영비 및 인건비 정도를 지원하고 기부금으로 사업비 대부분이 충당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원봉사자도 효도밥상에 힘을 보탠다. 현재 효도밥상 자원봉사단에는 377명의 봉사자가 등록돼 있으며, 지난해 4월부터 올해 6월까지 누적 인원 5536명이 봉사에 참여했다. 기자가 효도밥상을 찾은 날도 자원봉사자가 함께했다.

정혜영 자원봉사자(79세)는 ‘친구를 만나러 온다는 마음’으로 봉사에 임한다. 무려 주에 3회나 봉사에 참여하는 우수봉사자다. 그는 “효도밥상에 와보니 다 얼굴을 아는 동네 사람들이더라고. 여기 와서 ‘형님’들과 얼굴 보고 인사하며 식사 시간을 보내니 활력이 돈다. 나를 위해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식구(食口). 함께 모여 밥을 먹는 사람들을 뜻한다. 주민들의 정성과 지지가 모여 어르신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어르신은 함께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 마포구 주민 모두가 식구가 되어가고 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신재은 기자 jenny091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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