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한동훈 90분 회동 후 일시 휴전…갈등의 뇌관은 여전
‘채 상병·김건희 특검’ 뇌관 여전…홍준표 등 12명 시·도지사 韓에 견제구
(시사저널=박나영 기자)
#1. "한동훈 대표에게 제로콜라 좀 가져다줘라." 윤석열 대통령은 7월24일 여권 인사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소주잔에 물만 연거푸 부어 건배를 하던 한 대표를 배려해 대통령실 직원에게 제로콜라를 가져다 주라고 요청했다. 제로콜라는 한 대표가 좋아하는 음료수다.
#2. "윤석열 대통령은 내가 가장 잘 안다. 걱정하지 말라." 7월30일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의 비공개 회동을 위해 용산으로 떠나기 전에 주변인들의 우려에 이렇게 답했다.(신동욱 국민의힘 원내대변인, CBS 라디오 인터뷰)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20여 년간 검찰에서 맺어온 끈끈한 인연이 드러나는 장면들이다. 오랜 기간 신뢰를 쌓아온 관계이기에 오히려 갈등의 골은 더 깊었을 수 있다. 한 대표는 비대위원장을 맡은 지난 1월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사과 문제를 놓고 "국민 눈높이"를 언급하면서 대통령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총선 직후엔 윤 대통령의 회동 제안을 한 대표가 거절했고, 얼마 후 윤 대통령은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서 원희룡 후보를 물밑 지원했다. 이 과정에 두 사람 간 갈등의 골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깊어졌다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7월30일 90분가량의 용산 회동이 전격 성사됐다. 이에 7‧24 지도부 회동 형식을 두고 일었던 논란(단독 양자회동이 아니라는 점)과 '김옥균 프로젝트' 등 끊이지 않던 'n차' 충돌설을 어느 정도 잠재웠다는 해석이 나왔다. 김옥균 프로젝트는 갑신정변이 3일 만에 실패한 것처럼 한 대표가 조기에 축출되는 시나리오로 전당대회 과정에서 여의도에 돌던 루머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배석하긴 했지만 1시간 넘게 이어진 당정 논의로 두 사람은 사적인 관계를 넘어 대통령과 여당 대표로서 공동운명체임을 확인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지만 '살얼음판 허니문'이라는 이야기도 계속 흘러나온다. 정점식 정책위의장이 한 대표의 사퇴 요구에 버티는 모양새를 취하는 등 윤 대통령의 발언과 친윤계 움직임이 다른 양상을 보이면서 충돌 가능성을 점치는 언론보도들이 나왔다. 채 상병 특검법 등 갈등의 뇌관이 여전한 것 또한 완전한 화해가 불가능하다는 시각에 무게를 싣고 있다.
尹‧韓 전격 회동, '공동운명체' 라는 점은 확인
친윤(親윤석열)계 정점식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한 대표의 사퇴 촉구가 있은지 꼬박 하루가 지난 8월1일 정책위의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을 만나고 온 다음 날 임기 보장을 요구하며 버티는 정 정책위의장을 만나 사퇴를 요구했다. 최고위원회를 친한(親한동훈)계 다수로 재편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윤 대통령은 회동 때 당직 개편 얘기가 나오자 한 대표에게 "이 사람 저 사람 폭넓게 포용해 한 대표 사람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면서도 "당의 일은 당대표가 책임지고 알아서 하시라"고 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정책위의장 교체를 수용하는 듯한 신호를 주면서 한 대표의 인선 결정에 힘을 실어줬다는 해석이 바로 나왔다. 정책위의장 자리에 친한계 인사를 앉혀야만 새로 구성된 한동훈 체제의 안정성이 담보되기에 정책위의장 교체 여부는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정책위의장 교체를 두고 한 대표가 망설인 이유는 새 인선 과정에서 친윤계의 반발로 당내 분란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정 정책위의장의 사퇴로 한동훈 체제가 탄탄한 기반을 갖춰나가는 모양새다. 7·23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새 지도부는 한 대표와 장동혁·김재원·인요한·김민전 최고위원, 진종오 청년최고위원 등 6명이고,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은 당연직 최고위원이다. 여기에 대표가 지명하는 지명직 최고위원 1명을 더한 9명이 최고위원회의 구성원이다.
이 가운데 한 대표 본인과 장동혁·진종오 최고위원에 더해 지명직 최고위원 1명을 친한계로 본다면 지도부 내 친한계는 4명으로 소수였다. 정책위의장을 친한계 인사로 교체해야만 친한계가 5대 4로 과반을 차지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당대표가 알아서" 尹 발언과 다른 친윤 행보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을 만들 순 없어도 대통령이 안 되게는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권력의 속성상 미래권력인 당대표가 현재권력인 대통령을 이길 수는 없기에 한 대표는 대통령과의 갈등 봉합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한 대표는 두 차례 회동에서도 대통령과의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했다. 지도부 만찬에서는 "대통령 중심으로 뭉치자"고 했고, 사실상의 독대에서도 "대통령이 걱정 없게 잘해 내겠다"고 말했다. '분당대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난타전이 계속됐던 전당대회 과정에서 어수선해진 당을 재정비하는 차원에서도 실제 당정 화합, 대통령과의 화합은 시급한 과제다.
용산도 한 대표 측에 일정한 성의 표시를 했다. 두 사람의 회동 당일 대통령실이 김건희 여사의 활동을 공식 보좌할 '제2부속실'을 설치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제2부속실은 대통령 배우자를 보좌하는 공식 조직으로, 일정과 메시지 등을 챙기는 역할을 한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대통령실 축소 등을 이유로 이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했고, 취임 후 실제 제2부속실을 설치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 여사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자 총선 과정에 설치 검토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한 대표도 제2부속실 설치를 용산에 건의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정 결속 의지가 수면 위로 떠오른 순간이다.
여권 내에서는 계파를 불문하고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불화는 곧 공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공유되고 있다. 그럼에도 당정 갈등이 완벽하게 해소돼, 이제 본격적인 해빙 무드에 들어섰다고 하기엔 여전히 애매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한 대표로서는 정 정책위의장이 사퇴에 응하지 않고 버티는 상황이 딜레마였다. 한 대표가 친윤계의 반발을 감수하고 정책위의장 인사를 강행하더라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지 못하면 취임 초기에 리더십 문제가 도마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상 정책위의장은 당대표가 원내대표와 협의를 거쳐 임명하되 의원총회의 추인을 받게 돼있다.
한 대표는 8월1일 국회 출근길에 기자들이 '당직자 일괄사퇴 요구와 관련해 정 정책위의장에게 연락이 온 게 없느냐'고 묻자 "우리 당의 변화와 민심을 받들어서 차분히 잘 진행하겠다"면서 "더 상세히 말씀드리기가 (어렵다)"라고 밝혔다. 정 정책위의장은 이날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밤중에 고민을 좀 하셨나'란 질문을 받고 "고민할 게 있나"라고 반문했고, 이날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들어간다"고 답하면서 윤 대통령의 의중과 친윤계 행보가 다르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초기 당대표에 선출됐다가 친윤계에 의해 축출된 경험이 있는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매끄럽지 않은 인선과정에 대해 "윤 대통령은 앞에서 하시는 말씀과 뒤에서 하시는 말씀이 굉장히 다르다"면서 "정 정책위의장의 사퇴와 상관없이 한 대표가 누구를 신임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할지 밝히면 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홍준표, 윤심 등에 업고 韓에 본격 각 세우나
이례적인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12명의 시‧도지사는 최근 '국민의힘 시·도지사 협의회'를 발족하면서 "당 최고위와 대통령 간담회 등에 참석하겠다"고 나섰다. 윤 대통령이 충남도청에서 열린 제7차 중앙지방협력회의에 참석한 직후 나온 움직임이어서 윤심을 등에 업은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오세훈 서울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박형준 부산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이장우 대전시장, 김두겸 울산시장, 최민호 세종시장, 김진태 강원지사, 김영환 충북지사, 김태흠 충남지사, 이철우 경북지사, 박완수 경남지사 등 12명이 협의회 멤버인데, 이 중 홍준표 시장과 김태흠‧이철우 지사 등은 노골적으로 '한동훈 지도부'를 비판해온 인물들이다.
가장 큰 갈등의 뇌관들도 그대로다. 채 상병 특검법과 관련해 한 대표는 퇴로가 없는 상황이다. 특검법과 관련해 한 대표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며 민주적 토론을 거치겠다고 했지만 당내 반대론을 뚫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채 상병 특검법에 찬성 의사를 밝히며 당대표에 당선됐기에 특검법을 거부하면 말 바꾸기가 되고, 정치 생명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특검법도 한 대표로서는 넘어야 할 큰 산이라는 분석이다.
과연 여권 내 두 개의 태양은 공존이 가능할까. 휴전과 확전 사이에서 전운은 여전히 감돌고 있다. 친윤계 권성동 의원은 7월30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두 분 사이가 20여 년간 신뢰관계가 있다가 총선 직전에 여러 가지 이유로 금이 많이 갔다. 한 대표 입장에서는 신뢰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서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까 한다"며 "사람 마음이 한번 감정이 상하면 쉽게 회복이 안 되지 않나. 한 번의 만남으로는 부족하고 여러 차례 만남을 통해 허심탄회한 감정 교환이 있어야 그러한 문제가 극복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당은 108석의 소수파이고 거야는 대통령 탄핵 공세에 시동을 거는 상황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지지율이 지지부진한 윤 대통령이 한 대표에게 길을 내줘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공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수직적 당정 관계를 끝내고 화합의 길을 열지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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