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 이 여행] 대전 원도심 걷기

글 강은주·사진 신규철 2024. 8. 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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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글 강은주·사진 신규철)

돌아온 '0시 축제'의 주무대, 대전 원도심으로 간다. 큰길인 중앙로와 대전로, 골목으로 뻗어 난 원동 창조길과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를 누볐다.

대전은 철도 역사와 함께 태동한 도시다.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대전역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KTX매거진 신규철

이곳은 옛 충남도청사 1층 중앙 로비다. 견고한 기둥과 미려한 아치, 곱게 닳아 반들반들한 타일 바닥을 바라보며 건물에 깃든 역사와 공간의 위상을 짐작한다. 이제 천천히 시선을 돌려 현관 포치 너머 수직으로 탁 트인 중앙로와 마주설 차례다. 거침없이 뻗어 난 길 저편에 대전역이 있다. 이 장면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바로 여기서 대전의 모든 것이 비롯했음을 되새기면서.

철도가 열어젖힌 근대 도시

대전이란 도시를 영화화한다면 첫 장면엔 기차가 등장해야 마땅하겠다. 지금으로부터 꼭 120년 전인 1904년, 충남 회덕군 산내면의 작고 조용한 마을 대전리에 경부선 철도가 놓인다. 본래 철도는 청주 혹은 충주를 지나갈 계획이었으나, 한반도의 도시 체계 전통과 지리적 특수성을 고려하기보다 효율과 편의를 좇기로 한다. 인적 드문 '한밭'을 질러 가는 노선이 최종 채택된 이유다. 철도 개통 당시 설치한 대전정거장은 이듬해인 1905년 어엿한 대전역 건물로 거듭난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새였다. 대전역은 한반도 교통과 물류의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했고, 역사가 위치한 촌락 대전리는 불과 수년 만에 도시로 급성장한다. 물론 도시화의 이면엔 일제의 책략이 있었다. 회덕군청은 1910년 대전역 인근으로 자리를 옮겨 왔는데, 1914년엔 일제의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회덕군이 폐지된다. 그 대신 진잠현 일부와 공주군 현내면을 합친 새로운 행정구역, 대전군이 탄생한다. 식민 통치를 위해 대전에 이주한 일본인 거류민은 시가지 조성을 목적으로 은행, 우체국, 경찰서, 병원과 각종 기관을 불러들였다.

도시계획을 완성한 건 토목공사였다. 대전천 지류를 정비해 제방을 쌓았고, 매립한 소제호 자리엔 철도 종사자를 위한 관사촌이 들어섰다. 오늘날 관사촌은 도시 재생 사업을 통해 소제동 카페 거리로 부활하기도 했다. 한편 도심 교통망은 대전역과 세 개 대로, 춘일정통·본정통·영정통을 주축으로 조성됐다. 역 정면에서 수직 방향으로 흐르는 큰길이 춘일정통, 역에서 인동 방향으로 난 길이 본정통, 반대편인 삼성동 방향으로 뻗은 길이 영정통이다. 이 구획은 여전히 유효하다. 춘일정통이 중앙로, 본정통과 영정통이 대전로로 잔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여정 또한 중앙로에서 대전로, 다시 대전로에서 원동과 은행동의 문화 거리로 이어져 원도심 곳곳을 아우를 것이다.

0시 축제가 열리는 8월 9일부터 17일까지, 중앙로와 옛 충남도청사 일대에서 다양한 행사와 퍼레이드가 펼쳐질 예정이다. ⓒKTX매거진 신규철

대전 원도심의 기둥, 옛 충남도청사

시간을 거스른 이야기는 비로소 발 딛고 선 이곳에 다다른다.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한다. 조선 시대부터 충청감영을 거느린 공주는 오랜 세월 충남의 중심이었다. 도청사가 유서 깊은 고도를 떠나 신도시에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했다. 무엇보다 화려하면서도 위압적인 당대 관청 건축양식이 도시의 위용을 드높였을 것이다. 밝은 갈색 스크래치 타일로 에워싼 외벽과 주 출입구의 웅장한 포치, 가로로 긴 반타원 형태의 결원 아치를 사용한 중앙 로비, 샹들리에를 떠받치는 듯 우아하게 펼쳐진 중앙 계단···. 수십 년, 수백 년이 흘러도 그대로일 듯 단단한 격조가 느껴진다.

대전군은 청사 이전 3년 만인 1935년 광역시 단위인 대전부로 승격된다. 한반도 중원의 대표 도시로 우뚝 선 대전은 충남도청사의 존재감을 뒷배 삼아 눈부신 발전을 이룬다. 그렇다고 곡절이 없진 않았다. 1950년 6월 27일, 북한군을 피해 남하한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은 충남도청사에 전시 내각을 꾸린다. 육군 본부와 미군 전방 지휘사령부도 이곳에 입주해 전황을 관장했다. 끝내 북한군의 승리로 이어진 대전전투는 도시 곳곳에 상흔을 남겼다. 그럼에도 대전 시민들은 쓰러질 줄 몰랐다. 경부고속도로 개통, 대덕연구단지 건설, 대전 엑스포 개막, 대전도시철도 1호선 준공, 2009년 첫 개최 후 14년 만에 부활한 0시 축제까지. 굵직한 역사적 결절점을 거치며 앞으로, 더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다큐멘터리 필름같이 역동적인 도시의 이야기가 이 건물 1층, 대전근현대사전시관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시간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대전의 사회상과 생활상을 연표와 도표, 영상과 조형물 등 감각적인 시각 자료로 맞닥뜨리니 감흥과 여운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특히 거리의 정취가 고스란한 흑백사진과 도시계획이 한눈에 드러나는 여러 판본의 지도, 미카형 증기기관차 129호가 그려진 '대전 블루스' LP처럼 생생한 전시물이 감상의 해상도를 한층 높여 준다.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지점 건물에 들어선 복합 문화 공간 헤레디움은 9월 1일부터 독일 신표현주의를 엿볼 수 있는 전을 개최한다. ⓒKTX매거진 신규철

대전로에서 만난 재생 건축, 헤레디움

중앙로에 옛 충남도청사가 있다면 대전로에는 1922년 준공한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지점이 있다. 붉은 외벽 타일과 화려한 정면 파사드가 시선을 끄는 절충주의 양식의 건축물이다. 해방 이후 체신청과 전화국이 들어서기도 했으나, 1984년 민간에 넘어가 한동안 상업 시설로 활용된 내력을 지녔다. 주인과 주 사용자가 거듭 바뀌면서 곳곳이 원형을 잃었음에도 2004년 9월 등록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을 만큼 근대 건축물로서 고유한 개성과 가치를 지켜 왔다.

벽체와 전면 출입구, 목재 창문과 금고 문, 계단과 천장 등을 약 2년간 고증·발견하고 복원한 끝에 이곳은 2023년 복합 문화 공간 '헤레디움'으로 근사한 부활을 알린다. 소유 및 운영 주체인 재단법인 씨엔씨티(CNCITY)마음에너지재단은 3월 16일 개관전 를 개최해 건물의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 마침 3월 16일은 헤레디움이 위치한 인동에서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날이다.

라틴어로 '물려받은 토지'를 뜻하는 헤레디움. 문화유산으로서 의의를 계승하고 동시대 예술을 후대에 전하려는 의지와 정체성이 깃든 작명이다. 독일 출신 미술계 거장 안젤름 키퍼의 초대전이 이곳에서 열리면서 헤레디움이란 이름이 널리 알려졌는데, 미술 전시뿐 아니라 클래식 음악 공연과 뮤지션을 초청하는 마스터 클래스 등 분야를 넘나드는 무대도 꾸민다. 옛 건축물과 오늘날의 예술이 이루는 웅숭깊은 멋. 이곳에서 벌어지는 무대와 전시가 더 큰 희열을 안기는 이유다.

원동 청년마을 단체 철부지와 문화공감 철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철공소 골목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어 갈 예정이다. 최근에는 원동 동사무소 옛 건물을 단장한 뮤직 펍 '원동 락공소'까지 가세해 마을이 한층 풍요로워졌다. ⓒKTX매거진 신규철

덜컹거리는 쇳소리가 묘한 리듬감을 자아내며 활기를 불어넣는다. 한편엔 기차가, 다른 한편엔 금속 기계가 퍼커션처럼 움직이는 곳. 여기는 원동 창조길이다. 대전역 앞 역전시장을 따라 죽 들어가면 철공소 수십 곳이 나란한 골목에 다다르는데, 톱니바퀴와 나사 등 기계 부품을 다닥다닥 붙여 만든 '창조길 예술 지도'가 낯선 방문객을 맞이한다. 지도는 기용주물부터 태성금속에 이르는 철공소 30여 곳의 상호와 위치를 가리키고 있다.

원동 철문화공동체 사람들

대전 최초의 공업사인 남선기공은 원동 철문화공동체 역사의 시작점이다. 1950년에 설립한 남선기공 옛 건물에 카페 겸 복합 문화 공간 '문화공감 철'을 가꾼 조미자 대표, 원동 철문화공동체 청년마을 '철부지'의 조영래 대표가 골목 구석구석을 안내해 주었다.

"동네 어르신들께 여쭈어 보니 1950년대 이전엔 이 근방에 철도 부품 수리소가 있었답니다. 남선기공이 영업을 시작한 후 이곳 출신 기술자들이 주변에 자리를 잡으면서 원동 철공소 골목이 형성된 거죠." 조미자 대표는 옛 건물에 깃든 독특한 정취가 좋아서 건물을 매입해 활용 방안을 고민했다고 한다. "목조 트러스 구조를 지닌 건물이라 음악회를 열면 적당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래된 악기가 좋은 소리를 내듯, 세월이 깃든 이곳 건물이 부드럽고 곱게 공명할 테니까요." 문화공감 철에서 커뮤니티 활동을 벌여 온 조영래 대표도 거들었다. "여기서 플리마켓을 열어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때 청년마을의 가능성을 엿봤습니다. 이 동네만이 간직한 이야기를 잘 발굴한다면 더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요." 그는 동료 구성원과 함께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철공소 부산물을 사용해 오감을 자극하는 철문화 체험학교, 지역 작가들과 상생하는 플리마켓, 철공소 골목과 역전시장 주변 구제 거리를 탐방하는 투어 코스···. 흥미로운 소재를 찾아서 지속 가능한 청년마을로 만들어 가는 게 우리의 목표예요."

골목을 돌아 나서는 길, 돌연 기시감이 든다. 서울 문래동과 성수동의 10여 년 전 풍경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낡고 녹슨 거리 곳곳 멋스러운 벽화와 정크 아트 조형물이 혼재하는 풍경, 그 위에 원동의 내일을 포개어 본다.

바이닐042는 카페, 공연장, 여행자 라운지를 겸하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음료를 주문하면 카세트 플레이어를 대여해 준다. 대전의 새로운 모습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KTX매거진 신규철

어둠이 내리자 별빛 총총한 밤하늘이 나타난다. 도심에서 은하수가 웬 말인가 싶지만 은행동의 랜드마크, 대전 스카이로드가 쏟아내는 LED 영상을 통해 휘황한 천체 쇼를 감상한다. 은행동 상점가는 대전 원도심을 대표하는 상권으로, 별칭은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다. 으능정이라는 이름은 먼 옛날 이곳에 살았던 커다란 은행나무에서 온 것이다.

바이닐과 레트로를 사랑하는 청년들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 뒤꼍에 가면 스케이트보드, LP, 카세트 플레이어가 빼곡한 가게 하나를 마주친다. 이곳은 카페이자 공연장이자 로컬 청년 활동의 거점 '바이닐042'다. 입구에 붙은 명패, '로컬크리에이터'와 '오버나잇 대전트래블라운지'가 공간의 정체성을 부연하는 듯하다. 바이닐042는 2021년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로컬크리에이터로서 원도심의 문화를 알렸고, 대전트래블라운지와 협력해 여행자 사랑방 역할까지 도맡아 왔다.

"어느 도시든 '진짜'는 원도심에 있잖아요. 둔산동이 신도시라 많은 사람이 몰려 가지만, 저는 레트로 분위기를 간직한 이 동네가 좋아요. 식당, 카페, 상점, 골목골목에 자연스레 묻어 있는 예스러운 느낌과 감수성이 다 무형의 자산이라 생각하거든요." 바이닐042의 고진성 대표는 팬데믹 이후 새로운 삶을 도모하기 위해 대전에 정착했다. "'노잼'이라고들 하는데, 저는 대전 그대로의 모습에 끌렸어요. 은행동의 독립 서점 '다다르다'가 대흥동 '도시여행자'로 영업하던 시절부터 벌여 온 로컬 기반 활동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고 대표 역시 지역 자원을 녹여 낸 공간을 마련해 이 일대에 문화적 활기를 더했다. 그는 일곱 명의 크루 구성원과 함께 공연, 플로깅, 러닝, 매거진 제작 등 다채로운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바이닐042'식 여행 코스를 추천해 달라는 질문에 고 대표가 말을 잇는다. "이곳이 대전 여행의 시작이었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슬로건이 'Feel the New Thing', 즉 '새로운 걸 느끼자'예요. 바이닐042가 운영하는 원데이 클래스나 플로깅에 참여하고, 대전만의 문화를 담은 굿즈도 만나 보세요. 색다른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의 여행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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