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비 올 때 배달 하래?" 기후실업급여 비웃는 사람들 [그림자 밟기]
폭우 속 배달일 하던 노동자 사망
배달 노동자, ‘기후실업급여’ 촉구
기상 악화 탓에 일하지 못하면
급여 70% 수준 보장하는 정책
기후 재난 취약한 배달 노동자
위험한 작업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 등 사회적 개입 필요해
정부 차원의 논의 서둘러야 할 때
# 얼마 전, 폭우 속에 배달 일을 하던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배달 노동자들은 '기후실업급여'의 시행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기상 악화 탓에 일을 못 하면 급여의 70% 수준을 보장하자는 게 이 급여의 골자입니다.
#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심합니다. 누군가는 '일을 하지 않는데 왜 급여를 달라고 하느냐'고 따져 묻습니다. 하지만 기후실업급여 속엔 우리가 보듬어야 할 특수노동자의 애환이 들어있습니다. 홍기자의 '그림자 밟기' 에서 이 문제를 해부해봤습니다.
![배달 노동자들이 '기후실업급여' 시행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정부 차원의 논의는 아직 없다.[사진=연합뉴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08/02/thescoop1/20240802095822993vejf.jpg)
"3건 하면 3만원을 추가로 드려요." 눈이 무릎까지 쌓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배달기사 성동영(54)씨의 휴대전화로 날아온 건 '위험하니 배달을 멈추라'는 메시지가 아니었습니다. 3만원을 '미끼'로 배달을 종용하는 프로모션 문자였죠. 위험을 감수하고 '배달길'에 나서면 사고 확률이 높아지지만, 돈은 벌 수 있습니다. 만약 일을 하지 않는다면? 한 푼도 벌지 못합니다.
30년차 배달기사 성씨는 "배달일을 10년 이상 한 사람 중 몸에 철심 안 박은 사람이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저 역시 눈이 오는 날 오토바이를 타다 넘어져 양쪽 복숭아뼈가 깨지고 전치 14주가 나왔어요. 우리는 쉬면 돈을 못 받으니 깁스를 한 상태로 다시 도로로 나왔습니다. 아직도 오른쪽 발에는 철심이 박혀 있어요."
지난 7월 22일 밤, 서울에는 그야말로 '물폭탄'이 쏟아졌습니다. 창문과 지붕을 거세게 때리는 빗소리에 많은 이들이 밤잠을 이루지 못했죠. 14년차 배달기사 윤근모(65)씨는 당시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고 있었습니다.
윤씨는 "쏟아지는 비에 앞이 분간되지 않고 바람이 많이 불어 도로를 운행할 때 오토바이가 양쪽으로 거칠게 흔들렸다"면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비가 극한으로 쏟아질 때 작업을 중단하고도 급여를 받을 수 있다면, 기사들도 안전하고 부담 없이 쉴 수 있겠죠. 우린 그럴 만한 사정이 안 돼요. 휴~."
누군가는 '위험하면 쉬면 그만 아니냐'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생계형 노동자가 많은 배달기사들은 '미쳐버린' 날씨에도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수행한 건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기 때문이죠. 그날의 돈을 벌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고 폭우 속에서 오토바이를 몰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합니다.[※참고: 물론 배달 노동자도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적 근로자가 아니어서 한계점이 숱합니다. 이 이야기는 후술했습니다.]
이렇게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지만 배달 노동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기후 재난에 취약합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이 지난 7월 16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특수고용직ㆍ플랫폼 노동에 종사하는 이동 노동자 1198명 중 85.1%인 1019명이 '최근 2년간 여름철 폭염 시 온열질환 및 건강 이상을 겪은 적 있다'고 답했습니다.

96.1 %(1152명)에 달하는 노동자는 '근무 중 기습ㆍ집중 호우가 발생했을 때 위협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위협을 느꼈는데도 작업을 중단하지 못했던 이유로는 '이후 누적될 물량이나 실적'(37.8%)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수익 감소'(35.5%)가 뒤를 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배달 노동자 노조 라이더 유니온은 '기후실업급여'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근로자가 실직할 경우 일정 금액을 지급받는 실업급여는 익숙해도 기후실업급여는 우리에게 아직은 낯선 개념입니다. 기후실업급여란 기상 악화로 배달을 할 수 없는 상황을 '일시적 실업상태'로 간주하고 이 기간에 통상 수입의 70%가량을 제공하는 겁니다.
배달 노동자가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건 2022년 1월 1일입니다. 하지만 정규직에 맞춰진 고용보험 체계를 그대로 이식하다 보니 배달 노동자들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근로기준법, 노동법 등을 적용받는 것도 아닙니다. 배달 노동자는 여전히 '법적 근로자'가 아닙니다. 그렇다 보니, 배달 노동자가 실업급여를 수급한 사례가 극히 드뭅니다. 배달 노동자가 내고 있는 고용보험료를 기후실업급여에 활용하자는 것이죠.
김지수 라이더 유니온 사무국장은 "배달 노동자의 경우 '실업'과 '종사'의 경계가 모호하다"며 "라이더들이 내고 있는 고용보험 재원을 쌓아두기만 할 게 아니라 기후실업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사고율이 충분히 높아질 수 있는 상황에서는 위험한 작업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국가의 사회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동구 변호사(참여연대 경제정의센터 실행위원)는 "노동자들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고 사회구성원으로서 활동을 하게 해줘야 사회안정성이 보장된다"며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국가가 나서서 도와줘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엔 신유정 변호사(법무법인 지향)의 말을 들어볼까요? "기후 위기가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기후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기후취약계층이 기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 등 대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후로 인해 '일시적 실업 상태'에 놓이고, 생계위협을 받는 이들을 위해 앞으로 노동정책을 설계할 때 기후 취약성을 지닌 노동자들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기후 변화로 폭염ㆍ폭우 등 기상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08/02/thescoop1/20240802095825739kxlt.jpg)

이렇게 갈 길이 먼데도, 정부와 국회에서 기후실업급여 문제는 아예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기후실업급여 시행을 주장하고 있는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지부장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기후실업급여를 시행했을 때 어떤 문제가 있을지 또 대안이 필요하진 않은지 등을 다양하게 논의해야 합니다. 고용보험에서 새로운 실업의 개념을 인정해야 하는데 고용노동부에서는 저희 요구에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행정기관이 변화와 제도를 받아들일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폭염 대책이 물 많이 먹고 쉬라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닐까요?"
기후실업급여가 마냥 허황된 얘기는 아닙니다. 내년 초, 경기도에서 전국 최초로 '기후 보험'을 시행할 예정입니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기후 변화로 고통받는 기후취약계층을 위해 기후 보험을 마련하고 있으며 자세한 내용을 설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후실업급여, 이래도 과한 주장일까요? 어쩌면 지금도 늦었을지 모릅니다. 정부 차원의 논의를 서둘러야 할 때입니다.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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