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경쟁·포화가 키운 예정된 부실… ‘제2의 티메프’ 터질 수도[Deep Read]

2024. 8. 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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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남훈의 Deep Read - ‘티메프 사태’ 일파만파
기업 키우기 ‘한 방 역전’ 노린 고의적 유용 의심… 제도 보완 없인 유사 일탈행위 이어질 것
소비자 피해 최소화하되 규제 신중해야… 정산자금 분할관리·제3자 계약체결 유도 등 바람직

티몬과 위메프(티메프)는 거래 금액 기준 국내 5위와 7위의 e커머스 업체다. 티메프가 상품 거래대금을 정산하지 못하고 소비자 환불도 중단하면서 시작된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판매분까지 확인된 미정산액은 2134억 원이지만 6·7월 판매분까지 포함하면 피해액은 1조 원이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정부의 5600억 원 긴급자금 지원 대책에도 불구하고 소상공인 판매자들의 연쇄 부도 우려도 제기된다.

◇왜 피해가 커졌나

기업이 판매가 부진하고 이익이 안 나도 한동안은 버틸 수 있지만,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한계가 온다. 티메프는 오랜 영업 적자에 시달려 왔다. 이들은 뒤늦게 기업회생을 신청했는데, 정상적인 경로로 그런 결과에 도달했다면 일부 손해를 보는 이들은 있어도 사태가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상이 다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티메프 모기업인 큐텐이 나스닥 상장이라는 ‘한방 역전’을 노리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티메프는 소비자와 판매업체를 연결하는 오픈마켓형 플랫폼이어서 소비자에게 받은 대금은 판매업체로 가기 전에 잠시 맡아만 두는 돈이다. 그런데 이 돈을 제때 지급하지 않고 유용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여행상품처럼 결제액이 크고 몇 달 전부터 예약 결제를 해서 정산 기간이 긴 상품에서 집중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도 ‘고의성’을 의심하게 한다. 소비자에게 상품권을 ‘깡’해서 대금 돌려막기를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번 사태는 사기나 횡령에 가깝다. 안타깝게도 빈틈을 노린 이런 일탈행위는 주기적으로 일어나며 사전에 완벽히 막기는 어렵다.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제도적 결함을 메꾸어 갈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큐텐의 구영배 대표는 과거 지마켓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다. 그는 국내 최초의 오픈마켓인 지마켓을 만들어 성장시켰고, 이를 미국 이베이에 3억5000만 달러에 매각해 화제가 됐었다. 티몬과 위메프는 원래 쿠팡과 더불어 소셜커머스 열풍을 선도하는 기업들이었다. 소셜커머스는 인터넷상에서 소비자를 묶어 공동구매를 해서 가격을 낮춘다는 아이디어로 2010년대 초에 한동안 큰 인기를 끌었다.

◇경쟁과 포화

하지만 오늘날 국내 e커머스 시장에서 지마켓은 이베이와 합치고 SSG에 인수된 후에도 더 이상 강자라고 보기 어려운 상태다. 티몬과 위메프는 이미 소셜커머스 기업도 아니며, 일반 오픈마켓으로 명맥만 유지해 왔다.

이렇게 된 원인에는 국내 e커머스 시장의 극심한 경쟁이 있다. 아마존의 독주체제가 일찌감치 굳어진 해외시장과 달리 국내에서는 한동안 절대 강자가 없는 경쟁이 이어졌으며, 이베이·네이버·쿠팡 등이 돌아가며 점유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쿠팡이 14년 만에 영업흑자로 전환하며 주도권을 잡았으나, 알리와 테무 등 중국 업체들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e커머스의 이용 비율이 전체 소매시장의 절반에 달하는 등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몇 가지 성공모델도 정립되고 있다. 쿠팡은 아마존식 전략을 따르면서도 직매입과 PB상품 비중을 90% 이상 가져가고 배송 경쟁력을 극대화해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여 왔다. 오픈마켓에서는 네이버 쇼핑이 포털형 플랫폼의 강점을 살려서 검색 및 결제서비스와의 시너지를 높이고 입점 업체와의 협력을 강화해 왔다. 알리와 테무는 중국발 초저가 상품을 앞세워 틈새를 파고들었다. 이들 이외의 나머지 업체들은 앞으로 생존 테스트를 겪어야 한다. 확실히 차별성을 갖든지, SSG·롯데온처럼 기존 대기업을 배후로 둔 경우가 아니라면 생존이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인터넷 사업에서는 손해가 나더라도 규모를 키우면 성공한다는 믿음이 있어 왔다. 이용자가 많을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네트워크 효과와 함께 데이터 축적과 물류 인프라 구축 과정의 ‘규모의 경제’ 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큐텐도 그래서 부실한 업체들을 수집하는 전략을 추구했을 수 있다.

◇초점 벗어난 대책

하지만 e커머스는 결국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파는 게 핵심이므로 네트워크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 쿠팡처럼 과감한 투자로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달성하고자 하는 지향점이 확실해야 의미가 있다.

국내 e커머스 시장은 극심한 경쟁 속에 시장은 포화 상태로 접어들었고 앞으로 생존기업이 가려지는 과정이 이어질 것이다. 이번 티메프 사태는 그 신호탄이라 볼 수 있고, 앞으로 망하는 기업은 더 나올 것이다. 경쟁으로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것은 막기도 어렵고 막아서도 안 된다. 그러나 사기나 횡령이 난무하고 소비자와 소상공인이 피해를 뒤집어쓰는 상황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지금까지 제시된 대책들은 새로 드러난 사각지대를 막는 것도 있지만, 이번 사태와 관련이 적어 보이는 것들도 있다.

먼저 e커머스 업체들의 대금 정산 주기를 법으로 규제하자는 제안이다. 티몬과 위메프는 매출 발생 이후 거의 70일이 지나서 대금을 정산했는데, 이는 경쟁업체들에 비해서도 비정상적으로 긴 기간이다. 대규모유통업법은 오프라인 대형 유통점의 정산 주기를 40∼60일로 규제하고 있으니 e커머스 업체에도 이런 규제를 도입하자는 제안이다. 이렇게 하면 정산이 너무 늦는 건 막겠지만, 이번 같은 사태를 막는 근본적 방법론이 되기는 어렵다. 이번 사태는 정산이 늦어서가 아니라 정산이 안 돼서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법을 고쳐 플랫폼의 소비자 환불 책임을 강화하고 논란이 많았던 ‘온플법’ 제정을 재추진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티메프에 환불 책임이 없어서 환불이 안 된 것은 아니고, 플랫폼의 연대 책임을 지나치게 높이면 신용이 부족한 소상공인의 입점이 어려워질 우려가 있다. 온플법의 취지도 플랫폼의 갑질을 막겠다는 것이어서 이번 사태와는 초점이 다르다.

◇근본적 방안

전자금융거래법을 고쳐, 정산을 위해 유입된 자금을 분할 관리하고 에스크로 등 제삼자 계약을 체결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은 자금의 유용을 막는 근본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이번 사태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지급결제를 대행하는 PG사들이 손해를 뒤집어쓰지 않으려고 소비자의 거래 취소를 막는 일이 있었다. e커머스 기업들의 취소대금 지급을 위한 보증보험 가입 의무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물론 이런 규제들이 e커머스 사업자들의 부담을 늘려 결과적으로 대형 업체가 유리해진다는 점은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사회연구원 원장

■ 용어 설명

‘온플법’은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의 별칭인 ‘온라인 플랫폼법’ 줄임말. 독점적 플랫폼 사업자를 사전 지정하고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을 벌이지 않도록 감시를 강화하는 방안을 담고 있음.

‘PB상품’ 즉 ‘private brand goods’는 백화점·슈퍼마켓 등 대형소매업체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자체 브랜드 상품. 제조업체에 생산을 위탁한 뒤 유통업체의 고유 상표를 붙여 판매함.

■ 세줄 요약

왜 피해가 커졌나 : 티메프 모기업 큐텐이 나스닥 상장이란 ‘한방 역전’을 노리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듯. 소비자로부터 맡아둔 돈을 고의적으로 유용했다는 의심도 들어. 제도적 결함 보완 없인 일탈행위 계속될 것.

경쟁과 포화 : 사태를 키운 배경엔 국내 e커머스 시장의 극심한 경쟁과 포화가 자리함. 손해가 나더라도 규모를 키우면 성공한다는 ‘규모의 경제’ 믿음이 있어 왔고, 큐텐도 부실업체들을 수집하는 전략을 추구한 듯.

근본적 방안 : 소비자 피해는 최소화하되 규제는 신중해야 함. 온플법 제정이 온전한 해결방안이 될 수는 없어. 정산 유입 자금의 분할관리, 에스크로 등 제삼자 계약 체결 유도 등이 제2 티메프 사태 방지의 유효한 방법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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