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박 견디는 몰입·긍정적 자기대화… 마음이 승리 이끈다[북리뷰]

서종민 기자 2024. 8. 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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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든 이뤄 내는 강한 마음
노엘 브릭·스콧 더글러스 지음│송은혜 옮김│바다출판사
선수들 ‘마인드 전략’으로 대비
감정·신체 즉각반응 의존 대신
합리적 해결책 모색 균형 맞춰
역전의 순간 만들어내는 ‘클러치’
자신과 주변 어우러지는 ‘플로’
양궁 김제덕 몰입 사례 보여줘
게티이미지뱅크

“‘올림픽이다. 안 쏠 수가 없다’는 마음이 컸다.”

2024 파리올림픽에 나선 양궁 대표팀 김제덕(20·예천군청)의 ‘강한 마음’이 묻어난 답변이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양궁 단체전에서 활시위를 당긴 그의 입술에 벌 한 마리가 붙었다. 오른손등에 옮겨 앉더니 조준점을 얼쩡댔다. 그런데 벌 따위는 안 보인다는 듯, 김제덕은 심박수 80bpm(일반인의 휴식 상태)대를 유지한 채 시위를 놨고 화살은 과녁 한가운데 꽂혔다. 그는 “믿음을 갖고 쐈던 10점”이라며 경기 후 인터뷰에서 활짝 웃었다.

스포츠 선수의 마음에 박인 굳은살로 시선을 이끄는 책이다. 신체 훈련 이상의 강도로 마음을 단련하는 선수는 철저하게 ‘마인드 전략’을 짠다. 심리학 교수, 베스트셀러 작가로 각자 활동하는 두 저자는 일반인도 그 전략을 배운다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것이라고 권한다.

◇‘레드 시스템’과 ‘블루 시스템’, 균형 전략 = 세계 최강 ‘올 블랙스’(All Blacks·뉴질랜드 대표팀 별칭) 럭비팀이 부진을 겪었던 2007년, 코치진은 정신과 의사 등과 함께 한 가지의 은유를 개발했다. 위협에 대해 감정과 신체로 즉각 반응하는 레드 시스템, 합리와 논리로 냉철하게 해결책을 모색하는 블루 시스템으로 뇌 기능을 나눈 것이다. 레드 시스템만 작동했던 이 팀은 실수 한 번에 무너졌다고 분석됐다. 초조한 감정 상태에서 효율 없는 경기 운용으로 더 심하게 초조해지는 악순환. 해법은 짧은 시간에 감정을 다스리는 마음 훈련으로 블루 시스템을 습득하는 것.

마인드 전략의 우선은 감정 요동의 조짐을 다잡는 데 있다. 폐에 공기를 가득 채워 숨을 참은 채 전신의 긴장 상태로 정신 집중을 시도하는 ‘센터링(중심 잡기) 호흡’이 한 방법이다. 프리킥 직전 심호흡을 하는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이 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다섯 가지, 만질 수 있는 네 가지, 귀에 들리는 세 가지, 냄새 맡을 수 있는 두 가지, 맛볼 수 있는 한 가지까지 열다섯 개를 모두 찾고 소리 내어 말을 하는 ‘5-4-3-2-1 기법’도 있다. 응용과 시간 단축 등은 선수의 훈련 정도에 달렸다. 충분한 시간이 경기장에서 허용될 리 없기 때문이다. 올 블랙스는 블루 시스템 역량의 안착에 성공했고 2015년 월드컵 2연패를 달성했다. 정상급 팀과 그 선수들은 결승 상대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이겨 왔다.

◇‘플로’와 ‘클러치’, 몰입 전략 = 2024 파리올림픽 사격에 출전한 김예지(31·임실군청)가 표적지를 겨눈 모습을 두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영화 캐스팅해야 한다”고 했다. 이 책 용어로 표현한다면 김예지는 몰입 상태였다. 일순간 웃음기를 날리고 차가운 얼굴로 권총을 점검하는 그의 사진 한 장에 전 세계가 관심을 보였을 만큼 강한 몰입이었다. 플로, 클러치는 몰입에 들어서는 서로 다른 두 경로다. 역전을 해야 하는 상황 등에서 압박을 받는 선수가 만들어 내는 몰입을 클러치라고 한다. 반면 ‘최적 경험’이라고도 하는 플로는 최고 수준의 선수도 가끔 경험한다. 자기 상태와 주변 상황이 어우러져 발생하는 몰입이기 때문이다.

“이러면 어쩌지 하는 생각은 사라지고 완전히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모든 게 느려지고, 엄청난 자신감이 차오른다.” 농구의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는 “하고 있는 일 외에는 주변 어떤 일도 인식하지 못하게 돼버린다”며 몰입을 설명했다. 몰입 유지에는 평소 상당한 훈련량과 신체·정신 에너지가 필요하다. 김예지가 그 몰입 상태에 들어선 길이 플로였는지, 클러치였는지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상태를 경기 내내 보여준 선수의 강한 마음이다.

◇‘자기 대화’, 극기 전략 = “할 수 있다.” 펜싱 금메달리스트 박상영(29)이 2016 리우올림픽 에페 개인전 결승에서 했던 혼잣말이다. 9 대 13으로 밀린 상황에서 3라운드에 돌입했고, 그 직전 이 말을 목소리로 되뇌었다. 15 대 14 역전극을 만든 그를 보며 눈물 흘린 이들도 많았다. 스포츠맨십의 상징 장면으로 여전히 꼽힌다. 저자는 이 같은 자기 대화가 실제 효용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을 소개한다. 웨일스의 한 대학이 마라톤 선수 55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체력이 빠지는 32㎞ 위기 구간에서 자기 대화를 훈련받은 쪽과 아닌 쪽을 비교한 결과 후자의 기록이 더 빨랐다.

독일의 유명 테니스 선수 토미 하스도 자기 대화 기법을 썼다. 2007년 호주 오픈 테니스 8강전에서 패배 직전까지 몰렸던 그는 “이렇게 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부정 뉘앙스 독백을 쉬는 시간마다 했다. 그러나 자기 대화를 거듭할수록 그 내용은 “힘내자. 싸우자!” 등 긍정 어조로 바뀌었고 기량도 향상됐다. 박상영과 같이 긍정의 자기 대화가 더 큰 효용을 보였다는 것이 연구 결과였다. 핵심은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데 있다. 감정을 짚는 단어를 찾아내고, 부정적 감정에는 대처법을 구상한다. 그 반복으로 마음을 단련한다.

“멍청한 운동선수는 이제 은퇴할 때가 됐다.” 책의 첫 문장은 선수가 아니라 선수에 대한 선입견에 퇴장을 요구한다. 근육, 기록, 점수판 등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는 선수의 강한 마음을 보는 ‘심안’으로 스포츠를 응원해보면 어떨까. 332쪽, 1만7800원.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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