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전 고려 모자합에 홀려… 나도 작품 통해 1000년 살것”[M 인터뷰]

박성훈 기자 2024. 8. 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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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인터뷰 - 대한민국 1호 나전칠기 명장 손대현
고려때부터 우리나라 기술 상징
대통령의 외국정상 선물로 인기
BMW 이어 까르띠에·구찌까지
세계 명품사 컬래버 요청 쇄도
‘쿠키런’ 모바일 게임과도 합작
칠기로 주인공 제작…전시회도
실용적 가치 지닌 공예품 넘어
예술로서의 오브제로 인식되길
손대현 장인이 지난달 31일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 수곡공방 2층 전시설에서 달항아리와 가구 등 자신이 만든 나전칠기 작품 사이에 앉아 있다.작은 사진은 1층 공방에서 나전 칠기 표면을 연마하는 모습. 백동현 기자

광주(경기)=박성훈 기자 pshoon@munhwa.com

“나전칠기는 이미 세계 속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의 상징이 됐습니다. 저는 나전칠기가 단순한 공예품(craftwork)을 넘어 미술품(artwork)으로 인식되는 시대를 열고자 합니다.”

지난달 31일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 만선리 수곡공방 2층 전시실. 한 항아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른 허리만치 오는 키, 밤하늘에서 보름달을 따다 놓은 듯 둥근 형상…. 달항아리다. 하지만 여느 달항아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천장에서 내려온 조명이 항아리 표면에서 어지러운 무지갯빛으로 부서졌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이글거리는 빛깔을 만들어 내는 것은 표면에 무수히 붙은 미세한 크기의 자개(전복 등 조개 속껍데기)와 그 위에 얇게 칠해진 투명한 옻이었다.

이 작품은 도자기가 아닌 나전칠기다. 작품을 만든 이는 대한민국 제1호 나전칠기 명장인 손대현(75) 장인이다. 나전칠기는 예로부터 공예품으로 인식돼 왔다. 장롱이나 서랍장, 화장대 등 가구는 물론 각종 나무상자와 그릇, 수저 등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물건에 주로 자개 장식과 옻칠이 사용돼 왔다. 손 장인은 나전칠기가 실용적 가치를 넘어 아름다움만을 위해 존재하는 오브제(objet·사물)로 인정받는 시대를 꿈꾸고 있다.

손 장인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인물이다. 그가 참여한 전시는 일본·중국 등 아시아는 물론 미국·독일·호주 등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그와 협업을 하고자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 2011년 BMW와 7시리즈 승용차 실내 나전 옻칠 작업을 시작으로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함, 까르띠에 나전칠기함, 구찌 나전칠기 장식장 제작에 참여하는 등 세계에서 손꼽히는 명품 제작사들이 그와 함께 일하길 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독일의 유명 자동차 제조사로부터 최상급 시리즈 신차 실내 작업에 동참할 것을 요청받기도 했다.

손 장인을 인터뷰하러 수곡공방에 들어가니, 200㎡ 남짓한 공방 한구석에서 민소매 속옷만 걸친 그가 차분히 작업하고 있었다. 손 장인이 속옷만 입은 이유는 옷에서 나올 먼지조차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다. 먼지가 옻칠 작업에 있어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옻칠이 발전한 일본에서는 완성된 기물에 먼지가 두 톨 이상 붙어 있으면 작품으로 치지 않았고, 에도시대에는 먼지를 피하기 위해 호수 한복판으로 배를 타고 들어가 칠 작업을 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그는 “공방에는 늘 불필요한 물건을 최대한 치우고, 옷가지같이 먼지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들여선 안 된다”며 “항상 일정 수준의 습기를 유지해 먼지를 가라앉혀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위해 공방을 나선 그는 상의를 갖춰 입은 뒤 건물 2층 전시장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그가 검은색 리모컨을 누르자 출입구 셔터가 올라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그가 피땀 흘려 제작해 온 나전칠기 작품들이 보관돼 있었다. 원색의 달항아리와 고풍스러운 자개장 등 화려한 모습과 옻칠로 범벅이 된 그의 허름한 옷차림이 대조를 이뤘다. 그의 손톱과 손가락 지문에는 옻과 자개 가루가 깊이 배어 있었다.

전시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매끄러운 윤이 번쩍이는 서안(좌식 책상)이었다. 검은색 바탕에 국화 다발과 그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가 밝은 빛깔의 자개로 수놓아져 있었다.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윤석열 대통령이 선물했던 ‘나비국화당초’ 서안과 똑같은 제품이다. 손 장인은 “옛날 선비들이 책을 볼 때 사용하던 가구인데, 입식 생활이 익숙한 바이든 대통령에게 같은 용도로 쓰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나라의 전통 생활문화를 알리는 데는 딱 맞는 선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 장인은 자신의 작품이 미국 대통령 선물로 전달된 기념으로 같은 서안을 하나 더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받은 서안의 사진을 검색해 보니 약간 불그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색이 다른 이유를 묻자 그는 “전에 만들어 놓은 것인데, 옻이 피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옻칠은 건조를 마치고 완성된 지 3년은 지나야 비로소 제 빛깔을 내는 특성이 있는데, 장인들 사이에서는 이를 ‘옻이 핀다’고 한다. 손 장인은 “세월이 지나면 옻은 색이 맑고 투명해지며 그윽한 색을 발한다”면서 “옻칠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시간이 완성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유럽 방문 때 정상들에게 선물한 ‘나비당초문서류함’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 왕에게 선물한 ‘쌍휘문보석함’, 방한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선물한 ‘십장생도보석함’도 손 장인의 작품이다. 그는 우리나라 정상이 해외 정상에게 주는 선물로 나전칠기가 자주 선택되는 이유를 묻자 고려 시대에 제작된 경함(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상자)을 거론했다. 일각에서는 옻칠을 세계에 널리 전파한 나라가 일본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경우 이미 1000년 전부터 칠기를 세계에 수출하고 있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고려의 장인들이 만든 경함은 세계 각 나라의 박물관에 소장돼 있거든요. 미국이나 일본, 네덜란드 등지에도 경함이 전시돼 있을 만큼 나전칠기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 최고의 전통공예이자, 우리나라 기술력의 상징이었죠.”

손 장인에게 나전칠기의 예술성을 일깨워 준 건 미국 보스턴미술관에 소장된 고려 시대 ‘대모국당초문모자합’이다. 그는 40대 무렵 서울 인사동의 한 고서점에서 구입한 책에서 이 유물 사진을 보고는 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겼다. 화장품을 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유물은 육릉형(六陵形)의 합과 이를 둘러싼 네 개의 합이 일습(한 벌)을 이룬다. 아이의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자개와 거북 등 껍데기 조각 등으로 당초 문양 등을 새긴 이 작품은 고려 장인의 뛰어난 세공기술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경이, 그 자체였어요. 고려 시대에 어떻게 이렇게 깨알 같은 수천 개의 나전을 다듬고, 또 그 조그마한 모자합에 새겨 넣었을까 상상하니 그저 감탄만 나왔지요. 1000년 전에 그 합을 만든 이름 모를 장인을 가슴에 스승으로 삼고 걸작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제 작품이 1000년이 지나 당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만 있다면 저 역시 1000년을 사는 것이겠지요.” 그의 전시실에는 그가 책을 보고 재현한 모자합이 놓여 있었다.

삶의 한복판에 옻칠 하나만을 두고 살아온 그에게 전통의 참다운 의미와 한국 공예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계기가 다시 찾아왔다. 성남의 한 공방에서 일하던 중 덴마크에서 한 여성 큐레이터가 불쑥 찾아와 “나전칠기를 배우고 싶다”며 1주일간 옻칠 체험을 자청한 것이었다. 오로지 기술 연마와 작업에만 몰두하다 한국의 공예 문화에 대해 객관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계기였다고 손 장인은 회상했다.

“‘벽안의 이방인’이었던 그녀는 옷을 갈아입을 곳도 마땅찮은 곳에서 화장실에 들어가 스스로 옷을 갈아입고는 저와 동료들이 하는 작업을 똑같이 했어요. 그때 우리 기술을 배우고 싶다며 먼 타국에서 날아온 사람에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안 되는가’ 하는 생각에 정말 부끄러웠어요.”

그는 늘 치열한 고민, 거기서 비롯된 새로운 영감 속에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였다. 까르띠에 등 명품 회사와 설화수 등 국내 주요 화장품 브랜드와의 협업은 물론 로마 교황청에 납품한 나전칠화 작업은 그에게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남았다. 2021년에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기도 했다. 강원 원주에 있는 한솔종이박물관을 설계한 세계적인 노출 콘크리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에게 선물을 제작한 일도 그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손 장인에게 후진 양성은 나전칠기의 미래를 보장할 중차대한 과제이기도 하다. 다행히 그의 자제인 손문규(43)·은채(여·40) 남매도 옻칠에 투신해 전승자의 반열에 오르고 있고, 오랫동안 기능을 전수해 온 장용준·김경진·박세원·안준 등의 제자가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1994년부터는 한국문화재재단(현 국가유산진흥원)의 한국전통건축공예학교에서 옻칠 수업을 진행하고 있고, 서울대와 청주대, 공주대, 배재대 등의 강단에도 선 바 있다.

지난달 들어서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랩 1층 쇼룸에서 게임 제작사 데브시스터즈와 손잡고 전시 ‘다크카카오 쿠키, 나전칠기로 깨어나다’ 전을 열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모바일 게임 ‘쿠키런:킹덤’의 주인공 캐릭터 ‘다크카카오 쿠키’ 일러스트를 소재로 한 손 장인의 나전칠기 작품이 주인공인데, 나전의 백색과 바탕의 흑칠이 상당한 박력과 신비감을 자아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손 장인은 “나전칠기 하면 할머니 장롱이나 떠올리는 시대인데, 그런 고리타분한 존재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세계에 나전칠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작품 제작에 임했다”며 “앞으로도 나전칠기를 미술품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활동에 더욱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 60년 맞은‘옻칠 외길’

10월 예술의전당 전시회

“저 좀 일하게 해 주세요.”

1964년 서울역의 작은 무역회사에서 잔심부름으로 푼돈을 벌던 15세 소년의 눈이 반짝였다. 시선이 향한 곳은 옆 건물의 한 공방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포장하던 쟁반이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윤기와 황홀한 나전 빛깔에 홀린 소년은 그 길로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그 공방으로 가서 일을 배우게 됐다. 이 소년은 대한민국 제1호 나전칠기 명장인 손대현 장인이다. 그 길로 옻칠에 빠져 산 지 어느덧 60년이 흘렀다.

오는 10월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개인전 ‘수곡 손대현 60주년 전시회’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손 장인의 ‘옻칠 외길’ 인생이 환갑을 맞은 것을 기념해 그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고 나전칠기의 미래를 가늠해 보고자 마련됐다. 개인전으로는 1994년 신라호텔에서 연 전시 이후로 여섯 번째다.

손 장인의 호는 ‘수곡(守谷)’이다. 나전칠기 작품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새긴 작가인 전성규(1880∼1940) 선생과 그의 제자이자 우리나라 현대 나전의 초석을 이뤘다고 평가되는 민종태(1915∼1998) 선생의 호와 같다. 민 선생이 스승의 호를 손 장인에게 물려줬으니, 손 장인이 3대 수곡인 셈이다. 그의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 공방에는 전 선생과 민 선생의 사진이 걸려 있다.

손 장인은 “수곡은 ‘지킬 수’와 ‘골짜기 곡’ 두 자로 이뤄졌는데, 골짜기에 바로 우리가 지켜야 할 불변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늘 ‘보이지 않는 것에 충실하라’고 하신 스승님의 가르침을 새기며 앞으로도 전통공예 장인으로서 무형의 유산을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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