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사이클 2부는 '2027년'…비싼 선박 공략한 K-조선 웃는 이유
[편집자주] 선박 건조 가격이 사상 최고였던 2008년 수준으로 뛴다. 고부가 선박으로 이미 도크를 채운 조선소가 가격을 주도한다. 이제 급한쪽은 선박을 구해야 할 선주다. 공급자 우위인 '셀러스 마켓(Seller's Market)'의 도래는 2분기 조선소들의 실적 도약으로 확인됐다. 3년 뒤에 해운 탄소세가 부과되면 조선소가 '갑'인 '슈퍼사이클' 기간은 더 길어진다. 조선업이 천정부지인 뱃값에 건조물량을 쓸어 담아 '달러박스'로 통하던 시기가 15년 만에 재현된다.
"IMO(국제해사기구)가 2025년에는 탄소세 책정에 합의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현재 20개의 다양한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있다."
아르세니오 도밍게스 IMO 사무총장이 지난 4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2030년까지 선박 탄소 배출량 20% 감축,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 제로 달성에 대한 의지를 보이면서 동시에 '탄소세 책정'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IMO는 오는 2025년 10월 탄소세 최종안을 채택하고, 2027년 발효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1톤당 150~300달러 수준의 탄소세 부과가 거론된다. 해양수산부는 1톤당 150달러의 탄소세가 부과될 시 국내 해운사들이 연 4조8916억원을 탄소세로 지불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K-조선에는 기회다.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수요 급증의 수혜를 받아왔다. 3~4년치 일감을 확보하고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는데 2027년 탄소세라는 규정까지 생긴다면, 고부가 친환경 선박 수주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 선박 교체 주기도 맞아떨어진다. 현재 운항 중인 선박의 절반 이상은 2000년대 초에 건조된 것으로 파악된다. 선박 교체 주기의 경우 보통 25년 정도다. 탄소세를 피하기 위한 친환경 선박 도입 시점과 노후 선박 교체 타이밍이 내년 이후 맞물리는 셈이다. 화석연료를 활용하다가, 개조를 통해 친환경 연료 선박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선박의 발주가 늘 것으로 예상된다.
궁극적인 무탄소 에너지원은 수소이지만, 중간 단계로 LNG·메탄올·암모니아가 선박 연료로 활용될 수 있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 상반기 LNG와 메탄올 추진선 발주량은 각각 50척, 49척이었다. LNG는 경유에 비해 탄소배출이 적지만 고압력·극저온 탱크가 필요하다. 메탄올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과 운송·저장이 편리하다는 장점이 상존한다.
게임 체인저는 암모니아 추진선이다. K-조선 기업들은 2025년쯤 상용화를 목표로 잡고 있다. 암모니아는 질소와 수소로 만들어졌기에, 연소 시 탄소가 발생하지 않는다. 수소와 달리 저장과 운송도 편리하다. IEA(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2050년 암모니아가 전체 선박 연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6%에 달할 전망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해 10월 세계 최초로 중형 암모니아 추진선 2척을 수주했다. 현재 수주잔량은 4척이다. 지난해 7월 HD현대중공업 메탄올 엔진이 탑재된 세계 첫 메탄올 추진선의 인도도 완료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지난 3월 그리스 선사 넵튠과 자동차 운반선에 대한 'ELO(엔진 부하 최적화) 서비스'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친환경 선박 개조 시장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암모니아 연료전지 추진 VLAC(암모니아 운반선) 개발에 나섰다. 영국 로이드선급으로부터 설계에 대한 AIP(기본인증)를 획득했다. 국책과제 '선박용 액체수소 실증 설비 구축'의 수요 기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한화오션은 100% 암모니아만으로 가동하는 가스터빈을 개발하고 있다. 선박 보조 발전 장치로 수소연료전지와 ESS(에너지저장시스템)을 장착해, 무탄소 전동화를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초호황을 맞은 한국 조선업계의 사실상 유일한 아킬레스건은 '인력난'이었다. 조선업은 현장 근로자들의 일이 고되지만 임금, 복지 등 처우가 타업종 대비 좋은 편이 아니다. 그동안 인력은 반도체, 전기·전자, 자동차 등 상대적으로 처우가 좋은 산업으로 향했다. 그 결과 지난해 국내 조선업 종사자 수는 9만3038명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던 2014년(20만3400명)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 상황에서 2027년 국내 조선업에 약 13만명의 인력이 필요하단 관측까지 나왔다. 이미 인력난에 시달리는데, 인력은 지금보다 4만명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계약을 많이 따내도 배 만드는 인력이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단 우려가 커졌다.
국내 조선업계는 외국인을 고용해 인력난에 대응했다. 지난 6월 말 기준 국내 조선 3사의 외국인 근로자는 총 1만7900명이다. 국내 조선업 종사자의 19% 수준이다. 외국인 근로자 비중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조선업에 신규 채용된 생산인력의 86%가 외국인이다. 하지만 일부는 외국인 근로자의 작업 숙련도를 끌어올리기 쉽지 않고, 현장에서 소통문제가 벌어질 수 있단 점에서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외국인 인력 고용'은 국내 조선소가 인력난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단기간 내 인간이 하는 일을 기계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고난이도 용접 등 로봇이 인력을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도 있다.
조선사들은 외국인 인력의 빠른 안착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HD한국조선해양은 8개 국어 통역사가 상주하는 외국인지원센터를 2022년부터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조선업 맞춤형 'AI 번역 기술'을 개발했다. 업계 전문용어를 일반 번역기가 해석하지 못하면서 업무효율성 관련 고충이 생기자, 직접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이 기술을 연말까지 모든 현장에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또 외국인 근로자의 음성을 실시간으로 번역하는 기술도 추가 개발하기로 했다. 한화오션은 전문 통번역이 가능한 코디네이터를 통해 외국인 근로자에 안전교육, 전문용어 이해 제고 등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용접 작업을 할 때 지켜야하는 필수 10가지 항목에 대해 그림문자를 만들었다. 삼성중공업은 외국인 근로자에 국가별로 맞춤 식단, 종교활동 공간 등을 제공하고 있다.
조선 3사의 노력을 바탕으로 외국인 근로자들도 현장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는 모습이다. 최근 HD현대중공업에서 첫 외국인 현장반장이 탄생한 게 상징적이다. 주인공은 스리랑카 출신 쿠마라씨다. 쿠마라씨는 한국인 9명을 포함해 총 28명의 작업자를 이끌고 있다. 그만큼 한국어 실력이 출중하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는 숙련도에 따라 직종이 구분돼 있고 직무교육 등을 통해 대부분 기본적인 역량을 갖추고 있다"며 "최근 조선업계의 호실적은 외국인 근로자를 포함해 현장 인력들이 안정적으로 야드를 운영해준 영향도 크다"고 말했다.
최경민 기자 brown@mt.co.kr 박미리 기자 mil0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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