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영부인, 차라리 공직 임명은 어떤가
그들이 혹시 클린턴 부부를 벤치마킹하는 걸까? 궁금하다. 특히 힐러리처럼 그도 킹메이커이자 정치파트너로서 국민들이 그들 부부에게 권력을 위임해 줬다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브이제로, 막후 대통령이란 풍문마저 들려서… 마음속으로 공동대통령의 1인이라고 자부하는지는 진짜 궁금하다.
미국에선 대통령의 부인을 퍼스트레이디(first lady)로 부른다. 비공식 칭호이다. 1877년 헤이스 대통령 취임식 때 한 언론사가 사용하면서 대중화됐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퍼스트레이디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다. 힐러리는 힘이 아주 셌다. 클린턴과 더불어 공동대통령(co-president)으로 불릴 정도였다. 클린턴 부부가 처음 공직을 시작할 때부터 그들은 권력을 공유했다. 아칸소 주지사 시절 힐러리는 교육과 건강보험 파트를 책임졌다. 남편에게 대통령 출마를 권유한 이도, 선거운동을 사실상 주관한 이도, 국정운영이 초반 난맥상을 보이며 헤맬 때 중심을 잡아주는 이도 힐러리였다. 주지사에서 낙선했을 때, 대통령이 되고 2년 뒤에 치른 중간선거에서 패하고 단임 대통령으로 끝날 위기에 빠졌을 때 ‘고용된 총잡이’ 딕 모리스를 불러들여 재선에 성공하도록 한 이도 힐러리였다. 그는 유능한 해결사였다. 오죽하면 대통령 당선 후 언론에 이렇게 말했으랴. “이 나라는 클린턴 부부에게 투표했다.” 그는 선출된 부부 대통령의 일원이라고 생각했다. 힐러리는 일부 역할만 맡은 게 아니라 행정부와 한몸이었다.
기존의 퍼스트레이디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다. 존 로버츠에 따르면, 힐러리는 백악관 서관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백악관 정책회의에 참석했다. 내각과 백악관 참모진 구성을 주도했고, 대통령을 비롯해 그의 참모들과 함께 정책이나 전략을 논의했다. 대통령에 맞서기도 했고, 참모들에게 질문도 하고, 제안도 하고, 거부권도 행사했다. 그는 명실공히 공동대통령으로 일했다.(‘Rating The First Ladies’) 처음엔 정책수석비서관을 맡을 생각도 했으나 여론조사에서 반응이 나쁘게 나와 접었다. 대신 클린턴 대통령의 시그니처 공약인 건강보험개혁의 책임을 공식적으로 떠맡았다. 취임 초 우왕좌왕할 때 참모진들을 모아놓고 호통을 치고, 기강을 잡는 역할도 힐러리의 몫이었다. 그는 사실상(de facto)의 비서실장이었다. 밥 우드워드의 책(‘The Agenda’)에 나오는 내용이다.
힐러리는 클린턴의 대들보였다. 국정의 거버넌스는 클린턴과 힐러리의 공동지도체제였다. “내가 아는 클린턴은 매일매일 부인의 감성적인 동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힐러리에게 의지했으며, 그녀에 관해 얘기했고, 마치 그녀가 지브롤터의 바위라도 되는 양 행동했다. (…) 힐러리가 닻이면, 클린턴은 돛이었다. 그녀는 전략가였고, 그는 전술가였다. 그는 외향적이었고, 그녀는 내향적이었다. 그녀는 클린턴에게 백악관을 얻게 해주었고, 그는 힐러리에게 권력을 주었다.”(데이비드 거겐) 이런 대통령 부부가 우리보다 미국에 먼저 있었다.
논란은 불가피했다. 힐러리에게 쏟아진 비판은 거칠고 드셌다. 누군가 힐러리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내 딸이 당신처럼 자랐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내 마누라가 그렇게 되는 것은 정말이지 싫습니다.” 터닝이 필요했다. 건강보험개혁 실패, 중간선거 패배 후 힐러리도 생각을 바꿨다. 공개적 개입을 자제하고, 전통적으로 퍼스트레이디들이 해오던 롤모델을 받아들였다. 아이들 영양 문제, 세계 인권 문제에 집중했다. 힐러리에 대한 비난은 수그러들었고, 1996년 클린턴은 재선에 성공했다.
그들이 혹시 클린턴 부부를 벤치마킹하는 걸까? 궁금하다. 특히 힐러리처럼 그도 킹메이커이자 정치파트너로서 국민들이 그들 부부에게 권력을 위임해 줬다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브이제로(VIP0), 막후대통령이란 풍문마저 들려서… 마음속으로 공동대통령의 1인이라고 자부하는지는 진짜 궁금하다. 그렇다면 많은 것이 설명되기 때문이다. 아닐 거라 믿는다. 그럼에도 노파심에서 충고하건대 행여 그런 생각이 1이라도 있다면 당장 접어야 한다. 그건 헌법위반이다. 우리 헌법 어디에도 공동대통령에 관한 조항은 없다.
“처음부터 그들은 서로에게 전부인 존재로 친구이고 연인이자 사업 파트너였고, 나중에는 정치적 파트너가 되었다.”(마튼) 대통령 카터와 그의 부인 로절린 얘기다. 카터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도왔던 측근에 의하면 로절린은 남편보다 더 타고난 정치인이었다. 카터는 그런 부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다. 사교적이지 않아 친구가 거의 없는 데다, 누군가 ‘정치적으로 가장 좋은 일’이라고 권하면 가장 멀리할 정도로 도덕주의자적인 카터에게 로절린은 모든 계획을 터놓고 상의하는 베스트 파트너였다.
놀랍게도 1978년 6월 로절린은 대통령 특사로서 해외 순방에 나섰다. 본인은 방대한 보고서를 읽는 등 의욕적으로 준비했으나 내각과 국회는 못마땅해했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쏘아붙였다. “나는 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미국 대통령과 더 가까워요.” 카터와 로절린은 주중에 점심을 정기적으로 같이 하며 중국이나 중동과의 관계 정상화나 파나마 운하 문제 등 외교현안들을 논의했다. 도대체 왜 카터는 그렇게 했을까? 그의 대답이다. “내가 몹시 풀이 죽어 귀가했을 때, 아내는 내가 하는 말을 그저 한두 마디만 듣고도 날 빤히 바라보며 내가 이런저런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해요. 문제의 배경에 대해 그녀는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두어 시간씩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왠지 다른 나라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로절린은 국무회의도 참석했다. 회의실 뒷자리에 앉아 토의 내용을 조용히 메모했다. 전례 없는 행동이었으니 논란이 따르는 건 당연했다. “내가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않으면 모든 일에 대해 남편과 현명하게 토론할 방법이 없잖아요.” 그에게 국무회의 참석은 그저 대통령을 돕고자 하는 선의에서 비롯된 충정이었을 뿐이다. 거센 비판이 일어났지만 로절린은 태연했다.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난 그깟 비난 때문에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일을 그만둘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어요. 10년 넘는 정치활동을 통해서 난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비난받게 된다는 걸 알았죠. 그럴 바에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비난받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만약 하루종일 ‘차를 따르며’ 보낸다면, 난 그것 때문에 또 비난받게 될 거예요.”(‘숨은 권력자, 퍼스트레이디’)
우리나라에서 영부인을 국무회의에 참석하게 하거나 대통령 특사로 삼아 해외순방에 나서게 할 만큼 대통령이 용감해지긴 어렵다. 당장 언론이 난리를 피울 테고, 탄핵 얘기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주 마음이 놓이는 건 아니다. 근래 대통령보다 영부인의 정치감각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가 심심찮게 들린다. 사실이든 아니든 무슨 문제랴. 세간에는 대통령이 영부인에게 깊이 의존한다는 소문이 횡행하다. 설사 클린턴이나 카터 부부 못지 않은들 이 또한 무슨 문제랴. 만약 영부인이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조언하고, 대통령을 통해 자기 생각과 판단을 관철한다면 무슨 수로 막나. 게다가 그건 그들의 부부권이다. 카터도 자신의 빛나는 업적으로 꼽는 캠프데이비드 평화협상을 자신과 부인의 공동업적으로 여겼다.
대통령 부부의 유니버스는 참 오묘하단 생각이 절로 든다. 상상 그 이상이다. 지금 우리가 너무 호들갑 떠는 건 아닌가 하는 자책마저 하게 된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이 있다. 대통령은 하나다. 영부인이 국정에 직접 개입할 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위험한 사실도 있다. 그가 누구든 선출 또는 임명되지 않은 사인의 국정개입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근거의 일부였다. 당시 헌재는 ‘사인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했다’고 판시했다. 그래도 국정참여를 꼭 원한다면 방법이 전혀 없진 않다. 영부인을 힐러리처럼 공직에 정식 임명하는 방안이다. 강추한다.
이철희 | 방송에서 정치평론을 하다 정치에 나서 20대 국회의원, 문재인 정부 마지막 정무수석을 지냈다. 2020년 ‘대통령 탄핵 결정요인 분석: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 비교’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인자를 만든 참모들’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등의 책을 냈고,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 등의 역서가 있다. 우리 정치가 어쩌다 이렇게 나빠졌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나아질 것인지 등에 대해 터놓고 얘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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