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3년, 쾌속항해 막을 암초 없다…달러 쓸어 담는 '초호황' K-조선

안정준 기자, 최경민 기자, 박미리 기자 2024. 8. 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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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달러박스의 귀환 (上)
[편집자주] 선박 건조 가격이 사상 최고였던 2008년 수준으로 뛴다. 고부가 선박으로 이미 도크를 채운 조선소가 가격을 주도한다. 이제 급한쪽은 선박을 구해야 할 선주다. 공급자 우위인 '셀러스 마켓(Seller's Market)'의 도래는 2분기 조선소들의 실적 도약으로 확인됐다. 3년 뒤에 해운 탄소세가 부과되면 조선소가 '갑'인 '슈퍼사이클' 기간은 더 길어진다. 조선업이 천정부지인 뱃값에 건조물량을 쓸어 담아 '달러박스'로 통하던 시기가 15년 만에 재현된다.

조선 슈퍼사이클 진입…15년만에 돌아온 달러박스
조선 '빅3' 합산 영업이익 추이/그래픽=이지혜

조선 슈퍼사이클(초호황)이 돌아왔다. 앞으로 최소 3년간 이익 규모는 매년 계단식으로 불어난다. 전 세계적 저탄소 해운 규제가 시작돼 친환경 선박 수요까지 가세한다. 그래서 이번 슈퍼사이클은 15년 전, 5년간 이어진 초호황 보다도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장기 침체에 고전하던 대표 수출업종 조선업이 다시 달러를 흡입한다.

1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증권가의 조선사 실적 평균 추정치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의 합산 영업이익은 올해 2조122억원, 2025년 3조6401억원, 2026년 5조1818억원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다소 먼 미래의 실적 추정이지만 업계와 시장에선 '헤비테일 계약(선수금을 적게 받고 추후 인도 대금을 많이 받는 형태의 계약)' 방식의 조선업 특성을 감안하면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 미래라는 시각이다. 선박 건조가격 지표인 '클락슨 신조선가지수'는 3년 전인 2021년 1월 127을 저점으로 지속적으로 올라 현재 187.98이다. 조선업계는 지수 저점 시점부터 선박 수주를 늘려 현재 3년치를 웃도는 일감을 확보해 도크(선박 건조장)를 가득 채웠다. 수주부터 인도까지 통상 2~3년의 시차를 고려하면 헤비테일 계약 방식에 따라 앞으로 최소 3년은 실적이 우상향하는 게 기정 사실이었다.

관건은 이익이 어느 시점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나느냐였는데, 업계 안팎에선 신조선가 지수 130 지점에서의 수주물량을 손익분기점으로 봤고 올해부터 조단위 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관측했다. 하지만 불확실했다. 지난해부터 연간 수주가 감소하는 추세가 나타난데다 조선업계 인력난이 발생한 때문이다. 이 같은 불확실성은 최근 2분기 업계 실적발표를 통해 상당 부분 걷혔다. HD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의 2분기 영업이익은 각각 3764억원, 1307억원으로 전년보다 428.7%, 121.9%씩 급증했다. 한화오션은 96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지만 이는 2년 전 대우조선해양 시절 하청 노동자 파업에 따른 1400억원 규모 일회성 비용 때문이다. JP모건은 "2분기 성과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대표적 불확실성으로 꼽힌 수주 감소세는 오히려 공급자인 조선사 우위의 시장 환경을 반영한 현상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선주들의 발주 동력 자체가 떨어진 게 아니라 이미 3년 이상 일감을 따낸 조선사들이 고가의 선박만 골라서 수주한 결과라는 것. 올해 상반기에도 전체 수주물량은 전년보다 5% 감소했지만 수주 금액은 20% 늘어난 이유다. 인력 문제도 정상화 단계에 접어든다. 현장 소통이 어려운 외국인 노동자의 대규모 투입으로 생산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단 우려가 있었지만 지난 3월부터 정상화 단계에 들어섰다는 게 업계 공통된 목소리다.

이처럼 앞으로 최소 3년간 이어질 초호황의 바통은 친환경 선박 수요가 이어받게 된다. 2027년 국제해사기구(IMO)의 해운 탄소세 부과가 시작되면 노후선박 해체 후 신규발주, 노후선박 보수 등의 수요가 새로 창출된다. A 조선사 관계자는 "공급자 우위의 시장 환경에 친환경 선박 수요가 더해진다는 게 지난 슈퍼사이클과 다른 점"이라며 "이번 슈퍼사이클 기간이 앞선 초호황보다 길어질 가능성이 높은 이유"라고 말했다.

"2027년 일감도 만선"…뛰는 뱃값, 이제 조선소가 갑

클락슨 신조선가 지수 추이/그래픽=이지혜

조선 슈퍼사이클(초호황)의 원동력은 '가격'이다. 2021년부터 지속적으로 오른 뱃값이 올해부터 조선사 이익으로 실현되기 시작하며 구조적 호황 단계에 접어들었다. 선박 가격의 흐름은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이 전 세계 조선업 통계를 분석해 내놓는 '신조선가지수(Newbuilding Price Index)'로 가늠한다. 조선업 시황을 판단하는 대표 지표인 신조선가지수는 오를 수록 해당 시점의 선박 가격이 높다는 뜻이다. 역대 최고점은 2008년 9월의 '191.6'이었고 현재(2024년 7월) 수치는 '187.98'이다. 이 지표는 우하향하다가 2021년 127부터 상승세가 시작돼 역대 최고점에 근접한 현재에 이르렀다.

신조선가지수를 근거로 업계는 지금까지 총 2번의 슈퍼사이클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글로벌 무역 급증과 컨테이너선의 개발이 맞물린 1960년대가 1차 슈퍼사이클이었고 중국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한 2002~2007년이 2차 슈퍼사이클이었다. 선박 수주와 인도 사이의 시차를 반영하면 조선사들이 실제로 돈을 벌어들이는 시점은 이 같은 신조선가지수 급등기 이후다. 2차 슈퍼사이클 구간에서 업계 실적은 2002~2007년이 아닌 2008~2012년 급증했다.

지난 3년 간의 신조선가지수 상승에 이어 조선사들의 실적이 큰 폭으로 뛰기 시작한 지금을 3차 슈퍼사이클 진입 구간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3년간 수주물량으로 도크(선박 건조장)를 가득 채운 조선사들의 앞으로 3년 이익 고공행진이 보장된 이유다. 업계에 따르면 이익이 급증하기 시작한 올해 HD한국조선해양과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의 대표적 고수익 선종인 LNG선(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인도 가격은 1억9550만~2억1800만달러다. 이 가격은 내년엔 2억1530만~2억1690만달러로 뛰며 2026년엔 2억2730만~2억3680만 달러로 재차 오른다.

조선 '빅3' 합산 영업이익 추이/그래픽=이지혜


업계에선 2024~2026년의 이익 급증 전망도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현재 역대 최고점 수준에 근접한 신조선가지수가 앞으로도 더 뛰어 2027년에도 시차를 둔 조선사 이익으로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근거는 사상 처음으로 도래한 공급자(조선사) 우위의 시장이다. 앞선 2차 슈퍼사이클 기간엔 폭증하는 선박 수요와 함께 공급도 급증했다. 중국에선 신규 조선소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고 한국 조선소들도 선박 수요를 소화하기 위해 도크를 늘렸다. 이내 경기 둔화로 수요가 줄자 공급 과잉이 발생해 신조선가지수가 급락하며 15년 장기 불황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번 3차 슈퍼사이클은 2차 때와 다르다. 장기 불황을 거치며 중국은 대규모 조선소 구조조정을 마쳤고 한국도 대부분의 중소 조선소가 문을 닫았다. 2021년부터 수요가 늘기 시작했지만, 2차 슈퍼사이클의 후폭풍을 경험한 업계는 도크를 늘리지 않았다. 조선사가 비싼 가격을 부르는 선주의 물량을 골라담는 '갑'이 된 셈이다.

A 조선사 관계자는 "이미 우리 조선사는 2026년을 넘어 2027년 일감도 가득 찬 상태"라며 "선박 가격은 우리가 이끌고 있으며 가격은 앞으로도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조선 '빅3' 수주잔고 추이/그래픽=윤선정


공급자 우위 시장의 지속 가능성 관련, 업계는 미국의 신규 LNG 터미널 개발 프로젝트 재개 여부에도 주목한다. 미국에서 2027~2028년 허가 승인이 필요한 LNG 프로젝트는 6800만톤 규모로 개발에 돌입할 경우 100척 이상의 LNG선 신규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프로젝트는 연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지시로 승인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 신속한 승인을 언급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11월 대선에서 당선되면 개발 재개 가능성이 높아진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도 승인 속도가 늦춰질 뿐 개발이 중단되진 않을 거라는 게 중론이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027년 인도 가능한 선박 건조공간이 감소하면서 선주들은 더욱 서둘러 발주를 진행하고 있다"며 "주요 원자재인 강재 가격이 하락하고, 외주비 상승이 둔화됨에도 신조선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정준 기자 7up@mt.co.kr 최경민 기자 brown@mt.co.kr 박미리 기자 mil0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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