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리포트] ‘더 뉴 룩’ 프랑스 파리 패션의 자부심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레이디 가가는 분홍색 깃털 장식을 흔들며 프랑스 센 강변의 계단을 내려왔다. 지지 장메르의 ‘깃털로 만든 내 것’을 부르며 카바레 형식의 퍼포먼스를 펼친 레이디 가가가 입은 의상은 ‘디올’ 하우스가 맞춤 제작했다. 에펠탑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로 다시 없을 벅찬 감동을 선사한 셀린 디옹의 진주와 은색 구슬 프린지가 빛나는 드레스 역시 ‘디올’ 오뜨 꾸띄르이다.
2024 파리 올림픽이 ‘크리스찬 디올’을 선택한 이유는 프랑스의 역사적 배경을 반영한다. 수 많은 패션 아이콘들 중에서 디올이 왜 ‘프랑스 파리 패션의 자부심’인지를 보여주는 드라마가 애플 오리지널 10부작 ‘더 뉴 룩’이다. 2차 세계 대전의 공포가 휘몰아친 파리를 배경으로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나치 점령기 프랑스에서 어떻게 전쟁의 공포 속에 생존하며 현대 패션을 세상에 선보였는지를 보여준다.
성공한 패션 사업가로 그려지는 70세의 코코 샤넬과 자신의 미학 세계를 고집해 ‘뉴 룩’을 개척한 50세의 크리스찬 디올을 교차 편집하며 시작된다. 1947년 뉴 룩의 시대를 연 크리스찬 디올(벤 멘델슨)과 나치 점령기 4년 독일군 장교의 애인으로 나치 스파이 활동을 했던 코코 샤넬(줄리엣 비노쉬)에 초점을 맞추고 피에르 발망(토마스 푸아테뱅),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누노 로페스), 피에르 가르댕(엘리엇 마그롱)을 등장시킨다.
“독일의 파리 점령기 코코 샤넬은 아틀리에를 닫았고 나치 아내들을 위한 드레스를 디자인하기를 거부했던 반면에 당신은 디자인을 지속하며 돈을 벌었다. 사실인지 묻고 싶다.”
뉴 룩 8주년을 맞이한 1955년 파리 소르본 대학이 주최한 크리스찬 디올 헌정 패션쇼와 강연회장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게 만든 한 학생의 질문이었다. 패션에 관한 주제를 고수하자는 진행자의 만류에도 크리스찬 디올은 중요한 질문이라며 답을 자청한다. “마드모아젤 샤넬은 자신의 비즈니스였기에 스스로 폐쇄 결정을 내렸다. 나는 그냥 뤼새잉 를롱 밑에서 일하는 누군가에 불과했다. 전쟁의 혼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치 점령 4년은 인생의 가장 암울한 나날들이었다. 맞다. 우리는 나치 아내들과 여자친구들에게 우리의 디자인을 팔았다. 진실은 존재하지만 그 이면에는 항상 또 다른 진실이 존재한다”고 언급한다.
파리가 나치 독일 치하 3년이 된 1943년으로 화면이 바뀌고 빵 배급을 받는 크리스찬 디올과 레지스탕스 운동을 했던 여동생 카트린이 등장한다. 카트린은 훗날 ‘미스 디올’이라는 향수를 탄생시킨 영감의 원천이다. 나치 경찰에게 끌려다 고문을 당하고 강제수용소에서 비참한 시간을 보냈던 카트린의 트라우마를 보살피는 그만의 위로였다. 꽃이 만발했던 정원을 정성껏 가꾸었던 어머니의 기억을 되살려 전쟁 이전을 회상하게 만든 바로 향기다.
그 시절 코코 샤넬 역시 조카 앙드레가 포로로 잡혀가는 유사한 상황이었다. 샤넬의 선택을 달랐다. 나치에게 협력하고 독일장교 슈파츠와 관계를 맺는 대가로 처벌을 받았다. 60대 후반이 된 코코 샤넬은 절박한 마음에 자신의 가장 유명한 향수를 두고 동업자들과 싸우고 돌아온 슈파트에 의해 자유를 협박당한다.
시즌 2를 기대하게 만드는 애플 오리지널 ‘더 뉴 룩’은 패션 드라마가 아니다. 전쟁의 참혹함과 그 안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각자도생을 이야기하는 시대극이다. 전쟁이 끝나고 무명의 패션 디자이너가 프랑스 희망의 아이콘으로 부상하며 “크리에이션이 세상에 영혼과 생명을 되찾는데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를 고찰한다. 60대의 코코 샤넬을 강단있게 묘사하는 줄레잇 비노쉬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크리스찬 디올의 생전 사진과 흡사한 분위기를 표현하는 벤 멘델슨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몰입감을 더한다. 연합군에 의해 전쟁이 종식되고 디올 하우스에서 일자리를 얻는 젊은 피에르 가르댕의 활력이 좋다. 자만심이 강한 발망, 자신감에 넘치는 발렌시아가의 등장, 패션 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잡지 ‘하퍼스 바자’ 편집장 카멜 스노우역을 맡은 글렌 클로스의 마지막 대사도 좋다. 단지 꾸띄르의 미래를 위해 디올을 용서하는 뤼시앵 를롱의 존재감이 존 말코비치의 빛바랜 답습으로 아쉬움을 안긴다.
/하은선 기자·골든글로브협회(GGA)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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