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스로드] "발사체 기술 둘러싼 갈등 조정, 결국 정부가 해야"(하)
국내 우주개발 상황은 민간기업 중심의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한 뉴스페이스 전환 과도기다.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지식재산권(IP) 소유 갈등, 체계종합기업이 발사체 부품 단가 책정이나 사업 수행자 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불거지는 문제 등 크고 작은 성장통이 예고된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뉴스페이스 시대에 성공적으로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항공우주산업을 어디까지 '공공 영역'으로 볼지 토론하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지속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항우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IP 소유권 갈등과 유사한 논란은 더욱 잦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손수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은 방위산업과 우주산업을 비교했다. 그동안 방산 업계에서 개발된 기술의 경우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상황은 물론 기술 구매 주체가 정부이거나 정부가 외교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의 정부이기 때문에 IP 소유권 갈등이 있더라도 민간이 아닌 정부에 힘이 실리는 경우가 많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손 선임연구위원은 "항공우주산업의 경우 기술을 구매하는 주체가 정부가 아닌 민간이 주도하는 시장이 될 수 있어 민간이 소유권을 더욱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뉴스페이스 시대가 열리면서 개발한 발사체, 인공위성 등 기술을 정부가 아닌 민간 기업이나 해외 정부에 판매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문제는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해법이 나올 수 있어 복잡하다. 기술료 이전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법 중 하나는 '국가연구개발 혁신법'이다. 국가연구개발 혁신법에 따르면 우주발사체처럼 국가 안보, 외교, 국방 등과 관련된 특수성을 띤 기술은 제조 용역을 맡은 곳이 아닌 의뢰 주체인 국가가 단독 소유한다는 사실을 명시한다.
하지만 특정 기술이 국가 이익과 관련된 특수성을 얼마나 갖는지는 해석하는 주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특수성이 약하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민간에게 더 소유권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어서다.
정부가 민간에 기술을 이전하는 데 개방적인 해외 사례를 무작정 따르는 것도 쉽지 않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미국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인력과 기술 지원을 등에 업고 성장했다. 지금은 막대한 자산을 토대로 우주발사체 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했고 전 세계 뉴스페이스를 주도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 NASA처럼 한국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해도 스페이스X 수준의 혁신기술을 통해 파격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기업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다는 점이다. 정부기관을 중심으로 국가 예산이 들어간 항공우주산업은 여전히 공공영역이라고 보는 보수적인 시선도 강하다.
전문가들은 항공우주산업을 보는 시각이 이처럼 첨예하기 다르기 때문에 우주항공청 등 정부가 현재 국내 사정에 최적화한 뉴스페이스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장기적인 계획과 비전을 제시하면서 민간기업의 우주개발 분야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시시각각 변화하는 우주산업 생태계에 맞춰 새로운 전략을 '실시간'으로 제시하고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공학과 명예교수는 "일본의 경우 내각부 산하 '우주정책위원회'가 매년 산업계와 연구계에 항공우주산업 로드맵과 방향성을 제시해준다"며 "정부가 어떠한 기술에 투자하는지, 이러한 기술이 장기적인 목표에 어떻게 기여할지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기업은 이러한 청사진을 바탕으로 투자 전략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손수정 선임연구위원도 "우주 관련 법을 따로 만들기보다는 정부가 범부처, 범국민 등 사회적으로 항공우주산업 중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공공영역으로 보고 보호할 것인지 합의해서 가이드라인을 줘야한다"면서 "미국은 현재 정부의 투자로 개발된 '양자기술'에 대해 국가가 어느 정도까지 소유권을 주장할 것인지 활발히 논의 중이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구체적으로 발사체 기술 중 어떤 영역의 기술이 공공영역인지 등을 합의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민간기업 활성화에 무게중심을 옮기는 방향의 혁신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 대학교수는 "항공우주산업을 공공영역에서 너무 관리하려고 하면 세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실패를 줄이기 위해 혁신적인 도전을 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서 "나로호의 경우 발사에 실패할 때마다 사고조사위원회가 꾸려져 실패 원인을 찾는 동안 스페이스X 같은 기업은 실패를 빨리 털고 다음 기술을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고 했다.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이었던 김승조 서울대 항공우주학과 명예교수는 "현재 한국의 항공우주산업 기술은 선진국 기술에 비해 매우 뒤처진 상황"이라면서 "정부와 기업이 앞으로 뉴스페이스 시대에 맞는 좋은 선례를 만들어 함께 발빠르게 혁신적인 기술 개발을 하는 데 집중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이채린 기자,박정연 기자 rini113@donga.com,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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