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선의 쥐, 외딴 섬 토착종들에게 ‘저승사자’가 되다[멸종열전]
1788년 2월17일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시드니 북동쪽 700㎞ 떨어진 곳을 항해하던 HMS 서플라이호는 섬 하나를 발견하였다. 너비 1.6㎞, 길이 11㎞에 불과하지만 높이 900m의 험준한 산이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선장은 당시 해군성 제1제독이었던 리처드 하우의 이름을 따서 로드 하우(Lord Howe)라고 섬 이름을 정했다. 로드 하우섬 남서쪽에는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엘리자베스 리프와 미들턴 리프라고 하는 세계 최남단 대산호초가 있어서 해양생물이 아주 다양한 곳이다. 1982년 유네스코는 로드 하우섬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현재는 주민 약 300명이 살고 있으며 스노클링과 다이빙을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관광지로 유명하다. 하지만 처음 발견된 후 한참 동안 섬은 보급항로에 위치한 외딴섬에 불과했다.
1918년 보급선 SS 마캄보호는 로드 하우섬 주변 암초에서 좌초했다. 난파선에서 가장 먼저 도망치는 놈들이 있으니 바로 쥐다. 마캄보호에 숨어들었던 검은쥐(Rattus rattus)들은 배에서 탈출하여 섬으로 들어왔다. 다른 외딴섬과 마찬가지로 로드 하우섬에는 토착 포유류 포식자가 없었다. 섬에도 조류가 있었지만 침입한 쥐를 통제하는 데는 적응하지 못했다. 파충류 역시 효과적인 포식자가 아니었다.
반대로 이 섬의 토종 동물들은 갑자기 나타난 쥐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개체수를 억제할 천적이 없는 쥐들은 섬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여 번식하기 시작했다. 쥐의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쥐들은 로드 하우섬의 딱새와 다양한 바닷새의 알, 새끼, 심지어 성체도 잡아먹었다. 씨앗과 묘목도 먹어치워서 섬의 식생구조를 변화시켰다. 쥐가 들어온 후 섬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면서 여러 토착종이 감소하거나 멸종했다.
천적 없는 섬에서 급속 번식한 쥐에
로드 하우섬 대벌레 절멸 위기 겪어
날지 못하는 하와이 레이산 뜸부기
유입된 굴토끼가 식생 파괴해 멸종
‘남극 펭귄의 원조’ 큰바다쇠오리
인간과 함께 들어온 쥐들에 멸종
로드 하우섬은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을 정도로 고립된 곳이라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생명이 진화하였다. 로드 하우섬의 무성한 초목에서 번성하던 로드 하우섬 대벌레(Dryococelus australis)도 그 가운데 하나다. 로드 하우섬 대벌레는 나무가재라고 불릴 정도로 가장 큰 대벌레로 암컷은 15㎝, 수컷은 12㎝까지 자란다. 몸은 커다랗고 견고한 원통형인데, 짙은 갈색 또는 검은색으로 나뭇가지나 나무껍질 모양이어서 서식지에서 쉽게 위장할 수 있다. 포식자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로드 하우섬 대벌레는 낮에는 바위 틈이나 나무 아래 같은 은신처에서 시간을 보낸다. 새 같은 포식자와 낮의 높은 온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어두운 밤에 더듬이로 정보를 얻어 길고 가늘지만 강인한 다리로 나뭇가지와 나뭇잎 사이를 이동한다. 이런 야행성 로드 하우섬 대벌레도 쥐의 위협만큼은 피하지 못했다. 덩치가 큰 데다 날지 못한다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드 하우섬 대벌레 수는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섬에 쥐가 유입된 지 불과 2년밖에 안 된 1920년 초부터 더 이상 관찰되지 않았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로드 하우섬 대벌레가 쥐들에게 멸종되었다고 추정하였다.
뜻밖의 발견
멸종 선언이 내려진 지 40여년이 지난 1960년대에 로드 하우섬에서 남동쪽으로 23㎞ 떨어진 가파른 화산섬인 볼스 피라미드에서 소시지처럼 생긴 벌레를 봤다는 소문이 돌았다. 다시 41년이 지난 2001년 과학자들이 볼스 피라미드에서 로드 하우섬 대벌레 3마리를 발견했다. 놀랄 정도로 혹독하고 고립된 환경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새로 발견된 대벌레가 멸종했다고 알려진 바로 그 로드 하우섬의 대벌레와 같은 종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박물관 표본과 똑같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1년에야 볼스 피라미드의 대벌레가 로드 하우섬 대벌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DNA를 비교한 결과 같은 두 곤충은 단일 종에 대한 오차 범위인 1%보다 훨씬 작은 차이만 보였던 것이다. 박물관 표본이 겉보기에 더 견고하고 두 곤충 표본의 대퇴골 형태와 색깔이 조금 달랐지만 이것은 노화에 따른 변화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 19세기 동물학자들이 가능한 한 크고 육중한 곤충을 골라 표본으로 남기는 식으로 선택적으로 수집한 결과이기도 하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이 벌레를 레드리스트에 올렸는데 1986~1990년까지는 절멸종, 1994년에는 자생지 절멸종, 1996년에는 절멸종으로 분류했고 2001년 재발견 이후 2002년에는 심각한 위기종(CR)으로 분류했다.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논문을 발표한 연구진은 사이언스지와 인터뷰하면서 자신들의 발견은 로드 하우섬에 대벌레를 재도입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로드 하우섬 대벌레 보전 노력이 시작되었다. 멜버른 동물원에서는 사육에 성공하였으며 로드 하우섬에 쥐를 박멸한 후 다시 서식지를 조성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그런데 쥐를 도대체 어떻게 박멸한다는 말인가!)
쥐를 피하니 토끼가 왔다
레이산(Laysan)섬은 하와이 열도에서 두 번째로 커다란 섬이다. 외딴섬은 독자적인 진화의 경로를 겪는다. 여기에는 레이산 뜸부기(Porzana palmeri)라는 매력적인 새가 살았다. 길이 15㎝로 딱히 작다고만은 할 수 없는 크기지만 꼬리와 날개는 각각 2.5㎝와 5.4㎝에 불과했다. 당연히 날지 못한다. 날지 못하는 새가 살았다는 것은 거기에는 별다른 포식자가 없다는 뜻이다. 나방과 여러 곤충의 애벌레 등 무척추동물을 주로 잡아먹었으며 잎과 씨앗, 바닷새의 알과 사체를 먹었다.
19세기 말 이곳을 방문한 배에는 항상 불청객이 타고 있었다. 바로 검은쥐다. 전 세계 모든 환경에 잘 적응하는 쥐에게 외딴섬은 신세계이기 마련이다. 자신을 잡아먹을 포식자는 없고 자신이 잡아먹을 동물들은 방어할 줄을 모른다. 레이산 뜸부기도 그 가운데 좋은 먹잇감이었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알과 새끼는 맘대로 잡아먹었지만 성체를 잡아먹기는 쉽지 않았다. 레이산 뜸부기는 짧은 날개로 하늘을 날 수는 없었지만 잘 발달한 다리로 빠르게 달리고 (소문에 따르면 치타보다도 더 빨랐다고 한다) 날개로 균형을 잡아 1m 이상 점프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레이산 뜸부기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1903년 굴토끼(Oryctolagus cuniculus)가 들어왔다. 유럽토끼라고도 하는 굴토끼는 낯선 곳으로 진출하는 인간이 흔히 의도적으로 도입하는 육류 공급원이다. 키우기 쉽고 번식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현재는 남극과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곳에 도입되어 있다.
초식동물인 토끼가 뜸부기를 먹을 리는 없다. 문제는 토끼의 천적이 없다는 것. 날지 못하는 레이산 뜸부기를 잡아먹을 동물도 없는데 누가 토끼를 잡아먹겠는가. 토끼들은 천적이 없는 섬에서 대량으로 번식했다. 섬의 식생을 파괴했다. 섬은 모래 투성이의 황무지로 변했다. 토끼가 레이산섬에 처음 왔을 때는 적어도 2000마리 이상의 레이산 뜸부기가 있었다. 하지만 토끼 때문에 둥지를 지을 수 있는 서식지가 줄자 1910년부터 레이산 뜸부기 수가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날 수 있던 레이산 꿀빨이새(Himatione fraithii) 역시 같은 처지였다.
1923년에 레이산 뜸부기와 레이산 꿀빨이새는 레이산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나마 레이산 뜸부기는 레이산섬의 심각한 상황을 인식한 환경보호론자들이 여덟 마리를 미드웨이 환초로 옮겨놔서 멸종은 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1944년 여기에도 검은쥐가 들어왔다. 쥐들이 도입되면서 그해 6월에 이스턴섬에서 발견된 것이 이들의 마지막 기록이 되었다.
검은쥐와 굴토끼가 도입된 후 식물 26종이 섬에서 사라졌다. 현재까지 레이산섬에 남아 있는 토종 육상 조류는 레이산 핀치(Telespiza cantans)와 레이산 오리(Anas laysanensis)뿐이다. 레이산 오리는 하와이 제도의 나머지 섬에서는 인간에 의해 이미 멸종되고 레이산섬에만 남아 있다.
진짜 펭귄의 멸종
원래 펭귄은 남극이 아니라 북극에 살았다. 큰바다쇠오리(Pinguinus impennis)를 말한다. 큰바다쇠오리는 몸길이 80㎝, 체중 5㎏에 이르는 대형 바다새다. 딱 봐도 펭귄처럼 생겼다. 칼 폰 린네가 핑귀누스라는 학명을 붙였지만 우리가 아는 남극의 펭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새다. 한참 후에 남극에서 큰바다쇠오리와 닮은 새를 본 선원들이 그 새들을 펭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큰바다쇠오리는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스칸디나비아반도 북해안에 주로 살았다. 육상에서는 펭귄처럼 걸었고 바닷속에서는 펭귄처럼 빨리 헤엄칠 수 있었다.
큰바다쇠오리 천적이라고는 북극곰뿐이었다. 19세기 초 이들 앞에 인간이 나타났다. 제법 큰 새라 사람들은 고기와 기름을 얻기 위해 사냥했다. 깃털은 외투와 이불에 사용되었다. 육지에서는 느려터진 동물이라 사냥하기 좋았다. 게다가 인간과 함께 들어온 쥐들은 알과 새끼를 잡아먹었다. 1820년 남은 번식지는 아이슬란드 앞바다의 화산섬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1830년 화산이 분출하면서 섬이 바다에 가라앉아버렸다. 살아남은 50여마리가 다행히 암초로 옮겨갔다. 하지만 멸종 직전이라는 사실은 보호는커녕 오히려 사냥을 부추겼다. 고기로 먹히는 대신 박제가 되어 수집가와 박물관으로 팔려갔다(현재 전 세계에 박제 78개와 알 껍데기 70여개만 남아 있다). 1844년 6월3일 알을 품던 마지막 한 쌍이 박제가 되었다. 알은 부서졌다. 1852년에도 한 마리를 봤다는 소문이 있지만 그게 끝이었다. 아름다운 큰바다쇠오리를 보려면 경상북도 상주시에 있는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에 가면 된다. 여기에는 큰바다쇠오리를 비롯한 중요한 멸종 조류가 훌륭하게 전시되어 있다.
쥐는 농작물, 씨앗, 알, 파충류와 새 등 다양한 먹이를 취하는 기회주의적인 동물이다. 게다가 쥐와 토끼 모두 번식 속도가 빠르다. 토착 포식종이 없기 마련인 섬에서 먹이와 서식지를 놓고 쥐 또는 토끼와 겨룰 수 있는 토착종은 많지 않다. 침입자 쥐와 토끼는 섬의 생명다양성을 급격히 떨어뜨렸다. 우리는 쥐와 토끼 핑계를 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쥐와 토끼가 스스로 외딴섬에 간 것은 아니다. 모두 새로운 영토를 탐험하고 식민지를 건설하려던 인간에 의해 새로운 환경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필자 이정모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고 있는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하려면 지난 멸종 사건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과학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살아 보니, 진화>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등을 썼다.
이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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