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개혁파 대통령 페제시키안, `벼랑 끝` 이란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박영서 2024. 8. 2.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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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치러진 이란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마수드 페제시키안이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확인된 국민적 바람에 부응해야 할 과제를 안고 4년 임기를 시작했다. 새 대통령이 벼랑 끝에 몰려있는 이란을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개혁파 대통령이 등장한 이란의 미래를 내다본다.

◇취임 일성 "제재 해제 협상 준비돼 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오후 의회(마즐리스) 의사당에서 열린 제14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슬람 경전 쿠란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했다.

그는 연설에서 "우리는 세계와 건설적이고 효과적인 교류를 추구할 것"이라며 "이란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기 위해 세계 주요 강대국과 협상을 계속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압박과 제재는 효과가 없다"며 "이란은 핵 합의에 따른 약속을 지켜왔다"고 강조했다.

10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해선 "팔레스타인 어린이의 꿈이 잔해에 깔리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며 "역내 국가들은 가치있는 자원을 갈등과 소모전에 낭비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극단주의자 등 소수의 급진적 목소리가 20억명 무슬림의 사상을 대변해서는 안 된다"며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강조했다.

온건 개혁 성향의 페제시키안은 지난달 5일 치러진 대선 결선투표에서 54.8%의 득표율로 보수 강경파 사이드 잘릴리 후보를 누르고 최종 당선됐다. '높아진 투표율'이 승리를 가져왔다. 1차선거 투표율은 40%로 전국 단위 선거 사상 최저치였다. 투표한다고 해서 권력체제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 분위기'가 팽배해 투표율이 기록적으로 낮았다.

그런데 결선투표에서는 투표율이 49.8%로 올랐다. 어쩌면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1차투표에서 기권했던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대거 향한 것이었다.

여성과 젊은이들이 표를 몰아 주었다. 이번 대선에선 여성의 히잡 강제 착용 문제가 이슈였다. 페제시키안은 선거 운동 기간 동안 히잡 강요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것이 많은 여성과 젊은이들에게 반향을 일으켜 투표율을 높인 것으로 분석된다.

헤어날 길이 안 보이는 경제난에 지친 민심도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이란 경제는 미국과 유럽의 경제 제재로 피폐한 상태다. 물가상승률도 40% 안팎으로 민생고를 가중시키고 있다. 페제시키안은 서방과의 관계 개선, 그리고 이를 통한 이란 핵합의(JCPOA) 복원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민생을 살리겠다고 공약했다.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던 국민들은 '최소한의 변화'를 바라며 무명에 가까운 페제시키안에게 표를 던졌다.

◇안팍으로 과제 산적

보수파는 대중의 불만과 분노가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을 과소평가해 패배했다. 이로써 이란에선 2021년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 3년 만에 다시 개혁 성향 행정부가 들어섰다. 이제 새 대통령 치하에서 이란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 것인가 초미의 관심사다.

'신의 대리자'인 최고지도자가 최종 정책 결정권을 갖는 이란의 통치구조상 대통령 교체가 전향적 변화를 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란 수뇌부도 체제의 안정성을 위해선 이번 선거로 확인된 민심의 불만과 불신을 해소해야 하는 일이 급선무가 된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일단 경제난 해소가 최우선 현안이다. 이를 위해선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제재를 해제·완화해야 한다. 이는 적극적으로 서방과 대화해야함을 의미한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지난 2015년 이란핵합의 타결 때 대외정책을 이끈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전 외무장관에게 대통령직 인수 조직을 맡긴 것을 보면 서방을 향한 대화의 문은 열어둔 셈이다.

따라서 대중에게 별로 인기 없는 외교 정책에 변화가 올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대다수 이란 국민들은 이제 이란 정부가 군사·해외 원조보다는 국내 문제에 보다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믿고 있다. 국내 문제에 전념한다면 서방과의 관계는 지금보다 좋아질 것이다. 관계 개선으로 제재가 완화 또는 해제된다면 이는 선순환 경제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변수가 많다. 우선 이스라엘의 도발을 꼽을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신임 대통령 취임식 날에 맞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1인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했다. '발사체'가 새벽 2시께 하니예가 머물던 숙소를 타격했다. 그는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이란을 방문했다가 경호원과 함께 폭살됐다. 같은 날 이스라엘은 골란고원 축구장 폭격에 대한 보복으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도 공습, 헤즈볼라 최고위 지휘관인 푸아드 슈크르도 제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슈크르 제거 뒤 단 몇 시간 만에 하니예까지 암살된 것을 두고 "대담한 도발행위"라고 평가했다. 이에따라 중동 정세는 크게 요동칠 전망이다. 확전 위기 속에서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 지 주목된다.

미국 대선도 변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한다면 핵합의 복원은 고사하고 새로운 제재가 가해질 가능성이 높다. 현실화된다면 서방과의 화해 노선은 날아가고 미국과의 대결은 심화될 수 밖에 없다.

◇앞길은 온통 '지뢰밭'

한마디로 개혁파 대통령 페제시키안이 가야 할 길은 험난하다. 당장 이란은 이스라엘에 보복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NYT는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자국에서 하니예가 암살된 것과 관련, 이스라엘을 직접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게다가 새 대통령은 종교계·혁명수비대·바시즈 민병대로 대표되는 거대한 보수 진영, 보수파가 압도한 의회의 강력한 제동도 넘어서야 한다.

중동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서방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개혁파 대통령이 등장했다. 이란의 미래는 밝아질 것인가, 아니면 더 어두워질 것인가. 기대와 우려가 중첩된 복잡한 감정 속에서 전 세계가 페제시키안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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