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체들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아침햇발]

곽정수 기자 2024. 8. 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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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9일 경총, 대한상의, 한국경제인협회, 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6단체가 국회에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긴급 간담회를 갖고, 노동조합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경제계 의견을 전달한 뒤 손을 맞잡고 있다. 경총 제공

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3년 새 전기료 63% 폭증, 기업들 탈한국.”
최근 한 보수언론의 기사 제목이다. 한전이 2021년부터 3년간 산업용 전기요금을 63%나 올리면서, 미국·중국보다 저렴했던 전기료가 이제 30% 이상 높아져, 기업의 탈한국을 부르고 있다는 내용이다. 전형적으로 팩트(사실)와 진실이 모두 틀린 기사다.

한전이 밝힌 3년간 전기요금 인상률은 43.2%로, 큰 차이를 보인다. 미국·중국보다 30% 이상 비싸다는 대목은 실소를 낳게 한다. 미국은 전기요금이 싼 대표적인 나라이다. 중국은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도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국제비교 대상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년 평균 인상률(달러 기준)은 38.1%로, 한국의 29.5%보다 높다. 기업의 탈한국 사례로 삼성전자 미 텍사스 테일러 공장 등을 꼽은 것은 왜곡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테일러 공장 건립에는 미 정부 보조금, 반도체 수요처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삼성도 “전기요금 때문이라는 것은 침소봉대”라고 선을 긋는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발전원료인 액화천연가스의 국제가격이 크게 오르며 각국의 전기요금도 덩달아 급등한 것은 대다수 국민이 아는 일이다. 한국은 에너지 위기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기와 가스를 원가에 못 미치는 싼 가격으로 공급하고. 단계적 요금인상으로 대처했다. 한전의 43조원 누적적자와 200조원의 부채, 가스공사의 미수금(사실상 영업손실) 13조5천억원은 두 기업이 에너지 위기의 방파제 역할을 한 결과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만 떼어내서, 과장과 왜곡된 기사로 국민을 현혹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보수언론의 보도는 경제단체인 한국경제인협회(옛 전경련)의 분석을 토대로 했다. 한경헙은 “전기요금 인상률만 제공했을 뿐”이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경제단체들의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반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0여년 전 경제단체에 출입하던 때의 일이다. 전경련 주도로 경제단체들이 공동으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광고를 신문에 실었는데, 대한상의만 빠졌다. 기름 한방울도 안나는 나라인데 전기료가 세계에서 가장 싸고, 오랫동안 산업용을 주택용보다 싸게 공급받아 혜택을 누렸는데, 인상 반대는 명분이 약하다는 이유였다. 당시 상의는 박용만 회장의 주도로 회원기업의 이익 대변이라는 고정틀을 깨고, 국가경제 발전과 국민의 이익도 함께 고려하는 새로운 ‘상의 역할론’을 내세워 신선함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박 회장 퇴임 이후 원칙은 흐지부지됐다.

요즘 경제단체의 공동성명이 줄을 잇는다. 하청기업 노조가 원청사업자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을 여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 반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의무화 2029년까지 연기 요구,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를 포함하는 상법 개정 반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을 종업원 50명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반대가 대표적이다. 기업 부담이 늘어나는 고충은 이해된다. 하지만 회원 기업의 단기 이익에만 메몰되어, 국가경제나 국민은 뒷전이고, 국제흐름과 시대정신에도 역행하는 것 같아 걱정된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전기요금 정상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존중을 통한 산재공화국의 오명 탈피, 노사관계 정상화, 글로벌 스탠다드인 ESG 경영,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후진적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언제까지 외면만 할 것인가? 무엇보다 차분한 논리와 설득 대신 집단행동으로 힘을 과시하려는 행태가 우려된다.

경제단체는 지난 1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을 종업원 50명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하는 것에 반대하며 무려 세차례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5개월 뒤 아리셀 화재사고로 23명의 노동자가 생명을 잃었다. 아리엘은 상시종업원이 50명 미만으로 중처법 확대 적용 사업장이다. 2021년 이후 4차례나 화재가 발생하는 등 위험이 상존했다고 하니, 예고된 참사였던 셈이다. 경제단체들이 최소한의 양식이나 책임감이 있었다면, 국민에게 자신들의 오판에 대한 사과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신들의 반대가 혹시나 법적용 유예 연장이라는 헛된 기대감을 낳아 사고예방 소홀로 이어지지는 않았는지 반성할 일 아닌가? 하지만 경총 등은 모두 꿀먹은 벙어리처럼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했다.

상의 근거법인 상공회의소법 1조(목적)는 “상공업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상공업의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경총도 비전에 ‘노사관계 선진화’와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함께 ‘국민경제 발전 기여’를 명시하고 있다. 경제단체의 고위 임원은 “모든 경제단체가 정관 등에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경제단체들의 이기적인 행태는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경제단체에는 최저임금위원회 등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참가해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주어진다. 한경협이 과거 재계의 맏형으로 불리며 전성기를 구가할 때는 당연직으로 따라오는 직함이 50개가 넘는다는 얘기가 있었을 정도다. 정책 관련 주요한 이해관계자이기도 하지만, 경제단체를 국가경제의 중요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단체가 국민이나 국가경제는 뒷전이고, 회원 기업 이익만 추구한다면 그런 특혜를 줄 이유가 있을까?

일본의 경제단체인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경제동우회, 상공회의소는 연초 공동으로 올해 핵심과제로 물가상승률을 웃도는 임금인상을 제시했다. 경제를 살리려면 실질임금 인상을 통한 소비진작이 필수라는 데 일본 정부와 인식을 같이한 것이다. 임금인상이라는 말만 나오면 경기를 보이며 반대하는 한국의 경제단체와 대비된다. 경제단체의 한 임원은 “사무국 임직원들 월급을 주려면, 회비 내는 기업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고 털어놓는다.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경단련도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압력단체로 출발했다. 하지만 국가경제와 국민의 이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경단련이 일본에서 영향력이 큰 이유다. 한국의 경제단체는 경단련을 부러워만 할 게 아니라 그 원인을 성찰해야 한다.

경제단체는 스스로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물어야 한다. 경제단체는 이익단체 속성을 부정할 수 없지만, 국가경제 발전이나 국민의 이익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 나라와 국민이 없으면 기업도 존재할 수 없는 게 상식이다. 국가경제와 국민의 이익에 배치되는데도, 회원 기업의 이익만 대변한다면 정부나 국민이 경제단체의 의견을 존중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기업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며, 정책 혼선까지 낳는다면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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