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역사상 유일한 김일성 비판은 어떻게 개인숭배로 굳어졌나 [책&생각]

최원형 기자 2024. 8. 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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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8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일성 위원장 등 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북한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당 지도부가 비판받았던, 이른바 '8월 종파사건'이다.

북한은 스탈린 개인숭배를 모방해 김일성의 지도자 이미지를 가공했는데, 소련은 스탈린 사후인 1956년 흐루쇼프가 당대회에서 개인숭배 비판을 제기하는 등 노선 변경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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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쿠데타, 8월 종파사건
김재웅 지음 l 푸른역사 l 3만3000원

1956년 8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일성 위원장 등 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북한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당 지도부가 비판받았던, 이른바 ‘8월 종파사건’이다. 북한사 연구자 김재웅은 ‘예고된 쿠데타, 8월 종파사건’에서 소련 쪽 문서들을 바탕으로 이 사건의 실체와 의미를 깊숙하게 짚는다. 당시 주소 북한대사로서 비판세력의 일원이던 이상조가 남긴 자료를 중심으로 삼았다.

‘8월 종파사건’에는 당시 당 지도부의 경제적 실정 등 국내외의 복합적인 여러 원인들이 뒤얽혀 있다. 다만 지은이는 북한 내부에서 굳어진 김일성 개인숭배에 맞서 당내 민주주의와 집단지도체제를 회복하려던 움직임이란 의미에 주목했다. 북한은 스탈린 개인숭배를 모방해 김일성의 지도자 이미지를 가공했는데, 소련은 스탈린 사후인 1956년 흐루쇼프가 당대회에서 개인숭배 비판을 제기하는 등 노선 변경을 시도했다. 이는 북한에서도 비판세력이 집결하는 계기가 됐고, 그간 알려진 최창익·박창옥 등 거물급 인사들보단 서휘·윤공흠·이필규·고봉기·이상조 등 40대 초반 소장인사들이 소련·중국과의 외교를 동원해가며 이런 흐름을 주도했다.

그러나 1956년 8월 김일성은 이들의 움직임을 ‘반당종파행위’로 몰아 제압하는 데 성공한다. 당시 사회주의권의 분열, 폴란드·헝가리에서 벌어진 소련의 ‘내정간섭’ 등은 북한이 소련·중국의 입김에서 자유로워지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북한이 ‘주체’란 이름으로 이젠 그 어디에도 없는 자신들만의 스탈린주의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배경이다. 지은이는 이 ‘8월 사건’이 남한의 ‘4월 혁명’과 대조를 이룬다고 말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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