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라서 가능한 것들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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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의 대형 경기장이 아닌 센강을 개막식의 무대로 삼은 2024 파리올림픽이 시작되었다.
100여년간의 대혁명 끝에 공화정이 탄생한 나라답게 자유·평등·박애가 주제였다.
대체 프랑스의 독서문화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프랑스에는 어린이부터 청소년이 책을 골라 읽고 토론하고 수상작을 선정하는 문학상이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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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할머니 이야기
수지 모건스턴 지음, 세르주 블로크 그림, 최윤정 옮김 l 비룡소(2005)
외곽의 대형 경기장이 아닌 센강을 개막식의 무대로 삼은 2024 파리올림픽이 시작되었다. 100여년간의 대혁명 끝에 공화정이 탄생한 나라답게 자유·평등·박애가 주제였다. 대혁명 당시 시민군이 쓴 빨간 모자를 의인화한 올림픽 마스코트도 색달랐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된 콩코르드 광장, 베르사유 궁전의 에투알 로얄 광장, 파리 만국박람회가 열렸던 그랑팔레 같은 장소가 경기장으로 탈바꿈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관습을 거부하는 올림픽이 아닐 수 없다.
지금껏 프랑스는 좀 불편한 나라라고 여겼다. 공무원과 상인은 불친절하고 뒷골목에 가면 개똥이 뒹굴지 않는가. 파리의 서점에 다녀온 후 이런 선입관을 거두었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 눈에 파리의 서점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진지한 책들이 대접받는다는 건 독서인구가 탄탄하다는 뜻이다. 대체 프랑스의 독서문화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아이들은 어떻게 베스트셀러를 만들었을까’(유유출판사)는 이 점에서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준다. 프랑스에는 어린이부터 청소년이 책을 골라 읽고 토론하고 수상작을 선정하는 문학상이 여럿 있다. 고등학생 공쿠르상, 크로노스 문학상, 앵코륍티블상이다. 이중 크로노스 문학상의 주제는 심지어 ‘늙음’이다. 참으로 프랑스다운 발상이다.
수지 모건스턴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어린이문학의 주인공으로 즐겨 삼아왔고 ‘조커’와 ‘0에서 10까지 사랑의 편지’로 크로노스 상을 받기도 했다. ‘어느 할머니 이야기’는 저학년 동화지만 오로지 늙어가는 할머니의 일상만을 보여준다. 가끔 “그런 작품을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좋은 어린이문학은 누구나 읽어도 좋은 책’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어느 할머니 이야기’가 이런 종류의 책이다.
할아버지가 죽은 후 할머니는 혼자 산다. 눈이 어두워 옛날에 즐기던 일은 모두 어려워졌고 할 수도 없다. 바느질도 뜨개질도 책도 잘 보지 못한다. 의사는 할머니가 좋아하던 바다와 산에 가는 일도 위험하다고 만류한다. 젊은 시절 할머니에게는 집이 전부였고 쉴 틈이 없었다. 이제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자식이 어리면 잠을 잘 수가 없고 자식이 다 크면 사는 게 힘들다.” 할머니는 더 이상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한다. 소파에 앉아 과거를 떠올리고, 추억들과 마주 앉아 아침 식사를 한다. 이런 할머니에게 손자들이 묻는다. “할머니, 다시 한 번 젊어지면 좋으시겠어요?” 할머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한다. “아니, 내 몫의 젊음을 살았으니 이젠 늙을 차례야. 내 몫의 케이크를 다 먹어서 나는 배가 불러.”
삶은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어린이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삶이라는 퍼즐을 완성하는 데 빼놓아도 되는 시기란 없다. 크로노스 상의 슬로건 역시 “성장하는 것은 늙는 것, 늙는 것은 성장하는 것”이다. 프랑스다운 생각을 담은 어린이문학이다. 초등 저학년부터.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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