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일본 관학자, 조선 지식인…한국학 계보의 지식-권력 [책&생각]

최원형 기자 2024. 8. 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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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적 관점 한국학 계보 분석
서양 선교사가 일으킨 물결에
일본 관학자·조선 지식인 올라타
“앎과 지식의 식민성” 극복해야
서양 선교사들이 1892년부터 발행한 월간지 ‘코리안 리포지터리’는 “‘조선(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총체적인 지식-권력을 생산하는 공장인 동시에 국제적 보급 센터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근대한국학의 뿌리와 갈래
서양 선교사, 일본 관학자, 조선 지식인을 연결하기 또는 다시 뒤섞기
육영수 지음 l 돌베개 l 2만3000원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낸 학술용어사전은 ‘한국학’을 “한국이라는 공간적 특성을 전제로 ‘한국다움’에 대한 것, ‘한국에 관한 연구’라는 의미로 한국 안팎에서 통용”되는 개념이라 설명한다. 지식과 권력은 상호작용하는 복합체라 본 미셸 푸코를 참고한다면, 한국학이 무엇이냐는 질문보다는 ‘한국학이라는 지식-권력은 무슨 의도와 쓸모로 만들어져 어떻게 쓰여왔는가’ 묻는 것이 훨씬 더 적절할 것이다. 역사학자 육영수(중앙대 교수)의 ‘근대한국학의 뿌리와 갈래’는 바로 이런 물음을 담은, ‘탈식민주의적 지식의 역사사회학’으로 한국학의 계보를 그려보는 책이다.

서양 선교사, 일본 관학자, 조선 지식인이 이 계보의 주요 주체들인데, 서양 선교사가 일본 관학자에게, 일본 관학자가 조선 지식인에게 단지 바통을 넘겨준 것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책은 기원과 발전을 따지는 단선적·순수적 흐름이 아닌, 여러 주체들의 행위가 복선적·혼종적으로 뒤얽힌 결과물로서 파동(물결)을 좇는다. 지은이는 “‘계보학’은 기원의 망령이라는 미로에서 빠져나오는 해독제”라 말하며, 세 주체가 얽히고설켜 오늘날까지 축적해온 지식-권력에 담긴 식민성 자체를 직시하는 것을 이 계보 탐구의 주된 과제로 삼는다.

19세기 조선에 관심을 가진 서양 선교사들이 근대한국학의 ‘제1물결’을 일으켰다. 서양 언어로 저술된 근대 최초의 한국 입문서 ‘한국천주교회사’(1874) 등 프랑스 가톨릭 선교사들이 조선에 대한 지식 생산·유통의 첫 물결을 일으켰고, ‘한국사’(1879)를 쓴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 등 영미권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들이 그 뒤 주류를 이뤘다. ‘한국천주교회사’는 “‘조선은 매우 착취적인 사회 구조와 분열적인 지역주의에 병들고, 미신적이고 야만적인 가치관에 의존하며, 남녀 불평등이 심각하고, 과거 지향적인 역사관을 신봉하는 국가’라고 설파”함으로써, ‘기독교 문명’이 문명화시켜야 할 대상으로서 한국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인식 틀을 만들었다.

‘코리안 리포지터리’의 편집 책임자이자 주요 필자였던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1863~1949). 헐버트기념사업회 누리집 갈무리

미국 감리교 선교사들이 주도해 1892년 간행한 영문 월간지 ‘코리안 리포지터리’는 이를 뒤이은 ‘코리아 리뷰’와 함께 전문적인 수준의 작업과 국제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조선(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총체적인 지식-권력을 생산하는 공장인 동시에 국제적 보급 센터”로 구실했다. 1900년 창립된 영국왕립아세아학회 한국지부는 “순수 한국학 연구를 표방하며 한국에 설립된 최초의 근대적 학술단체”로, ‘코리안 리포지터리’나 ‘코리아 리뷰’보다도 깊이 있는 한국학 매체인 ‘트랜잭션’을 발행했다. 예컨대 ‘코리안 리포지터리’나 ‘코리아 리뷰’에도 한국의 민담을 소개하는 흥미 위주의 글들이 간헐적으로 게재됐으나,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가 ‘트랜잭션’에 게재한 ‘한국의 설화’(1902)는 한국 민담의 종류, 특징, 역사적 성격 등을 본격적으로 추적·분석하는 성취를 보여준다. 헐버트는 ‘한국의 문화예술은 중국의 아류’라는 주류 주장을 반박하고, 세부적인 것을 중시하는 “현미경적 세계관” 등 한국의 독창적인 특징을 발굴해내기도 했다.

일본의 인류학자로서 조선을 비롯한 식민 지역 조사를 주도했던 도리이 류조(1870~1953). 위키미디어 코먼스
조선 식민지 통치 25주년 기념으로 조선총독부가 스에마쓰 야스카즈에게 출간 의뢰한 ‘조선사 길잡이’. 이 책은 해방 뒤 유네스코가 해방국가 한국을 전세계에 알리겠다며 만든 ‘짧은 한국사’(1963)로 부활하기도 했다. 예스24 누리집 갈무리

어쨌든 서양 선교사들의 지식 생산은 기본적으로 ‘전근대적 비서양 문명을 문명화’시키는 목적 아래 있었다. 일본의 관학자들은 서양 선교사들의 작업을 발판 또는 가늠자로 삼아 ‘일본제국’에 맞춤한 한국학을 다시 만들었다. 지은이는 ‘제1물결’ 뒤에 ‘제2물결’이 아닌 ‘제1.5물결’을 놓는데, 이는 서양 선교사-일본 관학자-조선 지식인이 함께 만들어낸 ‘입체적 지형학’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새내기 제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일본 지배층은 서구제국이 미리 닦아놓은 식민지에 대한 지식-권력을 배우며 ‘제1물결’ 위에 올라타 ‘제1.5물결’을 이뤘다.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사편찬위원회’와 ‘조선사편수회’, 일본 관학자들이 주도한 ‘조선사학회’ 등 국가가 주도하거나 후원하는 ‘관학 아카데미즘’의 형태를 취했다. 다카하시 도루가 조선총독부의 의뢰를 받아 ‘비밀리’에 출간한 ‘조선인’(1921), 스에마쓰 야스카즈가 조선 식민지 통치 25주년을 기념해 조선총독부 의뢰를 받아 ‘익명으로’ 펴낸 ‘조선사 길잡이’(1936)는 일본제국 학자들이 서양 선교사들이 축적한 지식-권력을 “참조하거나 모방하여 식민지에 응용”한 대표적인 작업들이다.

1920~30년대 조선 지식인이 일으킨 ‘제2물결’ 역시 이전 물결과 뚜렷이 분리될 수 없다. 조선 지식인은 “한편으로 중화 문명권으로부터 이탈하여 조선의 고유성을 재발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 학자들이 설치해놓은 ‘식민지 한국학’의 굴레를 벗어나야 한다는 이중적 딜레마에 시달렸다.” 지은이는 이능화·최남선·안확 등 초기 지식인으로부터 이후 일본제국이 설립한 경성제국대학에서 전문적으로 단련된 지식인들에 이르는 궤적을 톺는다. 과거 단순한 ‘토착 정보원’의 지위에 있던 조선 지식인은 일본제국이 생산한 지식-권력의 위계적 생산 시스템 아래에 ‘조선학’ 전문가로 육성됐다. 그러나 경성제국대학의 ‘조선’ 연구가 ‘동양’ 연구의 하위 분야였다는 사실에서 보듯 조선 연구는 “중국 및 일본 문화와의 비교사적 관점에서만 유용성을 지”녔다. 한마디로 일본제국이 서구와는 다른 경로로 ‘근대화’에 성공했다는 본보기였을 뿐이다. 전문가로서 단련된 조선 지식인은 객관적 사실과 가치중립적 진리탐구를 명분으로 삼아 이런 식민주의 ‘관학 아카데미즘’에 안주했다. 일본 관학자와 조선 지식인의 ‘2인 1각’ 속에서 근대한국학이 벼려진 것이다.

‘조선미술사’의 저자 고유섭은 ‘독창적인 실패’로 “근대한국학 제2물결”의 맨 앞에 선 이로 평가받는다. 열화당 제공

지은이는 조선 식민지 통치 25주년을 기념해 출간됐던 ‘조선사 길잡이’가 해방 뒤 유네스코에서 해방국가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짧은 한국사’(1963)로 다시 살아났던 사례를 든다. 여기에 아무런 비판도 없던 한국 지식인들의 모습은 일본 스승들의 제1.5물결이 “순풍에 돛 단 듯” 조선인 제자들이 기획하는 제2물결에 흡수, 연장된 것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한국학의 제작 공정에 개입한 주체의 서열 매기기/순서 따지기”보다 중요한 것은 지식-권력 자체에 담긴 제국-식민의 구도를 바로 보는 것이라 강조한다. ‘조선 미술의 개척자’로 불리는 고유섭(1905~1944)에, 그런 계보 위에서 독자적 길을 모색했던 “근대한국학 물결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예언자”란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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