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으로 쌓은 도쿄 탑…AI와 일본인의 언어가 같아서 [책&생각]

임인택 기자 2024. 8. 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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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상반기 아쿠타가와상 수상
신예 구단 리에 ‘도쿄도 동정탑’
범죄자 행복 위한 도심타워 세워
관념·언어·현실의 불일치 통렬히
일본의 신예 작가 구단 리에(34). 데뷔 3년 만의 소설 ‘도쿄도 동정탑’으로 2024년 상반기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사진 ©SHINCHOSHA, 문학동네 제공

도쿄도 동정탑
구단 리에 지음, 김영주 옮김 l 문학동네 l 1만5000원

이 소설은 생성형 에이아이(AI)가 내놓은 문장을 인용했다고 작가가 밝혀 논란이 되었다. 올초 일본 권위의 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면서다. 실제 소설엔 ‘AI-built’(에이아이 빌트)라는 인공지능이 등장해 주인공의 질문에 답하고, 인물간 대화를 매개한다.

이번 주 국내 소개되어 막상 보니, 그 점만 부각되어 소설의 알짬은 가려진 듯하다. 2023년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헌치백’에서도 장애 여성의 ‘섹스’는 알레고리일 뿐, 수면 아래 인간의 총천연색 욕망은 적나라했고 적실했다. 2024년 수상작 ‘도쿄도 동정탑’에서도 에이아이는 일본인·사회 관념과 언어와 현실의 불일치, 그러한 말들의 범람을 꼬집는 기호라서, ‘에이아이 인용’은 다분히 변죽의 논쟁 같다. 가령 소설의 이런 쟁점에 견주면 말이다.

언어로 실체를 기만하는, “예쁜 거짓말을 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자각조차 없”는, “안쓰러울 정도로 열심히 문장을 쌓”는 에이아이마냥 그러나 본질을 회피하는 쭉정이 말들로 거대한 탑이 ‘빌트’되고 마는 저자와 작중 인물의 사회는 또렷이 “일본어를 말하는 일본인이 모두 한 덩어리”로 보인다는 일본을 가리키고 있다.

좁혀 말하자면, 오에 겐자부로(1935~2023)가 노벨문학상 수상(1994) 때 비판했던 “애매모호한 일본의 나” 속 ‘모호성’을 향한 90년생 작가의 거침없는 도발을 이 소설은 감추지 않는다. 때는 ‘도쿄도 동정탑’이 논란 속 도심 복판에 완공 개시된 2030년, 작중 도조 다쿠토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쓴다. “모호한 것은 단순한 기억력 때문이 아니다. 어느 쪽이 외부이고 내부이며, 어느 쪽이 과거이고 미래인지, 내가 예전에 어떤 말을 썼는지조차 잊어버리려 하는 것 같다.” ‘모호함’의 맥락이 이처럼 닮아, 40년 가까운 시차가 허무해질 법하다. 그 일본의 근미래를 더 들어본다.

“전성기 시절의 비티에스(BTS) 멤버와 혼동할 만한 꽃미남”인 20대 다쿠토의 연인은 40대초 해외파 여성 건축가 마키나 사라다. 2026년, 신주쿠에 예정된 ‘심퍼시 타워 도쿄’의 설계자로 뽑힌 실력자. 다만 “Sympathy Tower Tokyo”는 물론 “도쿄토 도조토~”로 리듬감 있게 발음되는 일본어 별칭(도쿄도 동정탑)도 그 자체로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어렵다. 아니 실은 무척 교묘하다. 출생 환경이 범죄를 양산하므로, 범죄자 역시 “최초 피해자”로서 교화 대신 ‘관용’과 ‘동정’이, 즉 수감 대신 이제라도 행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요구된다는 행복학자 마사키 세토의 오랜 지론이 71층짜리 거대한 원형 타워 구조물로 구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행정 용어 “수감자”는 ‘비참한 존재’를 뜻하는 “호모 미세라빌리스”라는 관념의 언어로 재정의된다. 원인과 대책, 사유와 사태를 휘젓는 말잔치 같달까.

공공 건축이야말로 가장 거대하게 양각화한 활자다. 사라는 특히 “말해선 안 되는 것을 말할 순 없”다는 언어 강박의 소유자다. 건축의 오류는 곧 미래의 오류가 된다고 믿는다. 게다 성폭행 피해자 경험까지 있질 않던가. 그럼에도 현실 지배와 성공 욕구에 휘둘려 확신할 수 없는 취지의 도쿄도 동정탑을 직접 완공했으니, 사라는 이후 잠적하고 만다.

다쿠토의 처지는 다르다. 전형적 흙수저. 15살 연상의 남자와 교제하다 임신해 버림받은 여중생이 그의 엄마다. 23번의 낙태를 거부당하고 낳은 아이를 엄마는 홀로 키우고자 범죄를 일삼았다. 엄마의 잦은 말마따나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다쿠토는 건축물로 치자면 “언빌트”되어야 할 인물이지만, 건축가 사라의 빼어난 심미안에 부합하리만큼 “아름다운 청년”이다. 다쿠토는 동정탑의 내부 서포터(말하자면 교도관)가 되어 대외 홍보까지 담당하게 된다.

‘심퍼시 타워 도쿄’가 문을 열고 호모 미세라빌리스들이 첫 입주한 2030년 4월, 행복학자 세토는 이렇게 축사한다. “타인도 자신도 행복하지 않은 말은 모두 잊어버려야 합니다.” 상처 준 말, 부정의 말, 해서 불행을 부르는 말을 망각하고 차단함으로써 행복이 구가되고 타워 안의 행복을 지킬 수 있다는 논리다.

언어가 현실을 기만하고, 현실이 언어를 강박할 때의 결과는 뭘까. 치장의 말들로 구축되는 건축물의 운명은? 소설은 지독한 삽화 두 컷으로 독자를 붙들고, 흔든다.

행복학자의 말로가 첫 번째다. 축사 뒤 귀가하는 세토. 봄기운 가득하고 노을빛 수려한 오후다. 나무 잎사귀가 아름다워 집 안마당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이방인과 마주치기 전까지. 학자는 그를 내쫓고자 한다. 결국 다툰다. ‘사건’ 뒤 이방인은 주장했다. “나는 마지막까지 그가 하는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었어요.” 이방인은 벽돌로 학자를 때려죽인다. “이윽고 그가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자 나는 진심으로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빔 벤더스 감독의 최근 일본 배경 영화 ‘퍼펙트 데이즈’와 실로 대비되어 더 흥미로운 대목이다. 언어를 최소화한 가운데 나뭇잎 사이 볕이 쏟아지는 매 순간(‘고모레비’라 부름)의 행복을 찬미하는 영화에선 또한 위로를 주는 건축물로 도쿄의 ‘스카이트리’(전파송출탑)가 등장한다. 2030년 소설엔 또 다른 언어를 꿈꾸는 ‘도쿄도 동정탑’이 필적해 들어선 셈이다.

두 번째 삽화는 미국 기자의 타워 개관 6개월 르포 초고다. 호명하길 “교도소 타워”, “나아가 일본인의 어둠”을 까발리겠다는 기자는 가식과 몰개성의 언어, 혼네(속내)와 다테마에(겉)로 복층화된 언어를 꼬집으며, 그토록 여럿을 인터뷰해도 “일본인을 어떻게 언어화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너희가 쓰는 말 그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을 하기 위해 쌓아 올린 것 아닌가?” 따져 묻는 비아냥 그대로의 기사 초안에, 홍보 담당 다쿠토는 “확실히 인간이 쓴 글인 건 분명”하다 평한다. 말인즉, 에이아이로부터는 들을 수 없는, 어쩌면 일본인이 일본인으로부터도 들을 수 없는 날것의 진심이란 얘기 아닐까.

현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언어가 나에겐 피할 수 없는 테마”라고 강조해온 작가 구단 리에는 일본 사이타마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졸업한 뒤 2021년 데뷔했다. 고서점 아르바이트 등의 경력이 있다. 상징과 은유 가득한 지난해 수상작에 이어, 아쿠타가와상이 독려하는 ‘사회적 감수성’의 수준을 확인시키는 작품이다. 단행본으로 나오며 당초 에이아이 5%가량 인용은 2%가량으로 바뀌었다. 국내 번역서에선 일본식 한자 직역으로 다소 어색한 대목들 눈에 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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