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한 편을 구축하는 ‘드라마투르기’의 전모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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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작법이나 극작술, 혹은 희곡 연출법"까지 포괄하는 드라마투르기(dramaturgie)는 국내 연극계에 도입된 지 20년 가까이 흘렀지만,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다.
연출가 손진책은 추천사에서 '햄릿'의 드라마투르기 작업을 계기로 이 시스템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한국 연극이 훨씬 견고하고 풍요로워지는 바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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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투르기 맡은 박철호의 노트
연극이 탄생하고 진화하는 과정
잇단 질문 속에 확장되는 세계
햄릿 스쿨
드라마투르기 노트
박철호 지음 l 알마 l 2만4500원
“희곡작법이나 극작술, 혹은 희곡 연출법”까지 포괄하는 드라마투르기(dramaturgie)는 국내 연극계에 도입된 지 20년 가까이 흘렀지만,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다. 18세기 중반 독일의 극작가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이 처음 선보인 드라마투르기는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 그리고 사회문화·역사적 배경이 망라된 자료를 분석, 제공함으로써 창작진이 캐릭터를 깊이 이해하여 새롭게 창조하고 체현해내는 토대를 마련하는 작업”이다.
‘햄릿 스쿨’은 2016년과 2022년, 그리고 올해 6월, 배삼식 극작가와 손진책 연출가가 함께 작업한 연극 ‘햄릿’이 탄생하고 진화하는 전 과정을 담은 드라마투르기다. 연출가이자 드라마투르크(dramaturg)인 박철호 작가는 ‘햄릿 스쿨’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 그리고 초월의 세계에 대한 해석까지, 인류가 연극을 하는 한 무대에 올려질 ‘햄릿’의 지경을 한층 넓혀놓는다.
2016년 첫 번째 공연 노트 서문 “등대 안의 햄릿”에서 지은이는 먼저 삶과 죽음을 논한다. “인생에서 빈 무대는 무엇인가? 삶과 죽음이다. 태어나는 순간에도, 죽어가는 순간에도 빈 몸이다. 죽음을 모르고 삶을 어찌 논하랴?” 배우들은 연기에 몰두했고, 드라마투르크는 인물에 관한 자료와 캐릭터 분석을 제공해주었다.
그 과정에서 배우들은 인물에 대한 의문을 자유롭게 드라마투르크에게 질문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저 단순한 질문만으로도 배우들의 캐릭터 이해는 높아졌고, 연기는 단단해졌다. 거트루드 역을 맡은 배우 길해연은 “드라마투르크와 함께 보물찾기를 한 느낌”이라는 명쾌한 평을 남겼고, 배우 손숙은 “박철호 드라마투르크는 우리 연습의 일부”였다는 말로 드라마투르크와 드라마투르기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햄릿’의 원래 제목은 ‘덴마크 왕자, 햄릿의 비극’이지만 흔히 줄여서 ‘햄릿’이라고 부른다. 지은이는 “후대에 임의로 제목을 바꿀 수 있다면” 오히려 ‘햄릿 대 클로디어스’로 바꾸고 싶다는 욕망을 표출한다. 햄릿의 독백과 대사가 많아 오직 ‘햄릿’만 각인되지만, 클로디어스의 대사도 만만찮을 뿐 아니라 “우리 연극도 클로디어스가 대사를 열면서 시작”한다.
연극 내내 햄릿을 괴롭히는 숙적 클로디어스가 없다면 햄릿도 없다. 이어지는 선과 악에 대한, 그 경계선을 걸을 수밖에 없는 모든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이 남다르다. “악은 선과의 인과성을 가지고 이뤄지기 때문에 항상 그 경계가 모호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햄릿의 절친한 친구 호레이쇼는 “소설의 내레이터처럼 복잡한 상황들을 설명하고 풀어나가면서 연극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는 “모든 이의 존경과 신임을 받아야 하는” 인물로 “존재감으로 연극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캐릭터”이다. 당연히 “가장 소화하기 어려운 캐릭터”이다. 호레이쇼는 햄릿의 신세타령을 귀 기울여 듣는 섬세한 사람이면서도, 유령과 대면해서 이성을 놓지 않는 담대한 사람이다.
그런 호레이쇼에 대해 지은이는 “목격자이자 증인”으로서, 오늘날 우리가 햄릿을 대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인물 자리에 올려놓는다. 연출가 손진책은 추천사에서 ‘햄릿’의 드라마투르기 작업을 계기로 이 시스템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한국 연극이 훨씬 견고하고 풍요로워지는 바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햄릿 스쿨’은 희곡으로 읽고 연극으로 관람한 그간의 ‘햄릿’의 넓이와 깊이를 한층 확장해 줄 것이 분명하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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