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척조차 안 하는 이 특권체제를 어찌할 것인가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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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원제: 민주주의와 자치의 한계)은 미국 정치학자 애덤 셰보르스키(84)의 민주주의관이 집약된 2010년 저작이다.
이 책에서 셰보르스키는 "민주주의가 달성할 수 있는 것과 달성할 수 없는 것"을 확인하고 민주주의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선을 긋는 것"이 자신의 관심사라고 밝히는데, 한국어판 제목은 여기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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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애덤 셰보르스키 지음, 이기훈·이지윤 옮김 l 후마니타스 l 2만3000원
‘민주주의,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원제: 민주주의와 자치의 한계)은 미국 정치학자 애덤 셰보르스키(84)의 민주주의관이 집약된 2010년 저작이다. 이 책에서 셰보르스키는 “민주주의가 달성할 수 있는 것과 달성할 수 없는 것”을 확인하고 민주주의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선을 긋는 것”이 자신의 관심사라고 밝히는데, 한국어판 제목은 여기에서 가져왔다.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셰보르스키는 민주주의를 최소주의적으로 정의해 왔는데, 이 책에서도 그 정의는 일관성 있게 유지된다. 셰보르스키가 말하는 최소한의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에게 참여가 개방된 선거 경쟁으로 통치자가 선출되고 그 과정을 통해 인민주권이 작동하는 체제’다. 이 최소한의 규정을 통과하면 그 통치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반면에 민주주의에 대한 최대주의적 정의는 민주주의 절차만이 아니라 평등·참여·정의·존엄·안전 같은 가치와 이상을 구성 요소로 삼는다.
그렇다면 왜 최소주의적 관점이 중요할까? 셰보르스키는 근대 민주주의 형성 과정을 살핌으로써 이 물음의 답을 찾는다. 민주주의는 인민이 스스로 통치해야 한다는 18세기 후반의 혁명적 사상에서 비롯했다. 문제는 ‘인민이 스스로 통치한다’고 할 때의 그 인민이 단수형 이념이라는 사실이다. 현실에서 인민은 서로 다른 생각과 관심과 정서를 지닌 복수형이다. 인민은 갈등을 내장한 복합체다.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여기서 셰보르스키는 ‘인민의 자기 통치’ 곧 자치의 의미를 최소주의적으로 정의함으로써 민주주의를 구해낼 수 있다고 본다.
셰보르스키의 최소주의를 따르면, 자치는 “개인의 선호를 가장 잘 반영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이 가능한 한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집단적 의사 결정 체제”로 규정된다. 이런 자치 체제로서 민주 정부는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지만 최대한 많은 이를 대표한다. 또 다수가 원하면 정부가 바뀐다. 그러나 이렇게 정의된 민주주의는 경제적 평등, 효과적 참여, 완벽한 대리인, 개인의 자유라는 이상에 비추어 모두 한계를 지닌다. 셰보르스키는 이런 한계가 민주주의만의 한계가 아니라 모든 정치체제의 한계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주목할 것은 평등·참여·대표·자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현실을 무조건 긍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질을 높이는 것인데, 그러려면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 먼저 잘 식별해야 한다는 것이 셰보르스키의 주장이다. 셰보르스키는 이 책에서 현실의 민주주의가 “치졸한 야심가들, 진실을 숨기고 왜곡하는 번지르르한 말들, 권력과 자본 사이의 부정한 관계, 정의로운 척조차 안 하는 법, 특권을 더 공고하게 만들 뿐인 정책”으로 뒤범벅이 돼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책을 쓰고 9년 뒤에 펴낸 ‘민주주의의 위기들’에서 셰보르스키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무너진다는 명백한 징후도 없이 합법적으로 은밀하게 전복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민주주의의 최소주의적 정의를 통해 민주주의의 한계를 명확히 하면서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들에 맞서 민주주의를 살리고 그 질을 높이는 길을 찾는 것이 셰보르스키의 작업인 셈이다. 정치학자 이언 샤피로는 이 책에 셰보르스키가 수십년 동안 발전시킨 주장이 종합돼 있다면서 “민주주의에 관한 책을 단 한 권만 읽을 시간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평했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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