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 테리 변호사 "대가로 국정원 명품백 받았다면 文 정부 비판했겠나"[인터뷰]
"한국 정부 대리인으로 활동하지 않아"
"싱크탱크 학자 활동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아"
"북한 분석 전문인 워싱턴의 학자로서 미국, 한국 정부 당국자들과 교류했습니다. 한국 정부를 대리한 사실이 없습니다."
미국 연방 검찰이 지난달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위반 혐의로 기소한 수미 테리 미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의 변호사가 한국일보에 입장을 밝혔다. 리 월러스키 변호사는 "테리 연구원의 활동은 싱크탱크 학자의 '활동 기준(standard activity)'에 준하며, 미 외교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어왔다"고 강조했다. 국가정보원의 이른바 '정보 협조자'라는 세간의 평가는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다. 인터뷰는 지난달 24~31일 수차례의 이메일 등으로 진행됐다.
공소장에는 테리 연구원이 2019년 11월 국정원 요원으로부터 명품백을 받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에 대해 월러스키 변호사는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해 달라는) 대가성 선물이었다면, 이틀 뒤 문재인 정부의 지소미아(GSOMIA) 파기 선언을 비판했겠느냐"고 반박했다. 생일을 앞두고 지인들에게서 받은 여러 선물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지소미아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의미하는데, 테리 연구원은 가방을 받은 이틀 뒤 미국 CBS 방송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지소미아는 중국과 북한에 맞서는 한미일 3국에 매우 중요하다"며 "문재인 정부의 결정으로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가 불편해 할 만한 내용이다. 이외에 토니 블링컨 당시 미 국무장관과의 면담 정보를 국정원에 제공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테리 연구원 측은 "본인이 할 이야기를 담은 메모"였다고 반박했다.
다만, 미 법조계는 이번 사건의 초점을 국정원 명품백이 아닌 FARA 위반 여부에 맞추고 있다. 그래서 FARA 전문가의 견해를 들어봤다. 미 샌들러 리프 로펌 소속 조쉬 로젠스타인 변호사는 본보 인터뷰에서 "금품이 오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한국 또는 다른 정부의 부탁으로 미국의 정책·입법가나 대중에 영향을 끼칠 활동을 한다면 외국대리인으로 등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테리 연구원은 2019년과 2022년 미 정계와 국정원 간 다리를 놓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주미한국대사관 명의로 테리 연구원이 소속된 미 싱크탱크에 지원한 3만7,000달러(약 5,000만 원)에 대해 로젠스타인 변호사는 "주미대사관으로 위장한 국정원의 돈을 받아 어떤 부탁을 들어줬는지가 쟁점"이라고 덧붙였다. 기업이 후원했다면 FARA 위반이 아니지만 정부가 관여했다면 법에 저촉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테리 연구원 측은 각종 행사들이 "싱크탱크 소속 간부로서 조율된 일상적 업무이며 청탁을 받아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공공외교 차원에서 열린 것"이라고 항변했다. 주미대사관 후원의 경우에도 "테리 연구원은 당시 한국 담당 국장으로서 자금조달 활동은 당연한 임무"라고 강조했다. 미 저명 헌법학자이자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법원개혁을 자문한 로렌스 트라이브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1일(현지시간) 엑스(X)계정에 "테리 연구원이 기소되지 않으려면 자신을 한국의 대리인으로 등록했어야 한다는 건데,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을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 검찰이 테리 연구원을 기소한 건 한미동맹에 충격적인 일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대해 로젠스타인 변호사는 "밥 메넨데즈 상원의원의 1심 유죄 판결과 같은 시점에 기소가 이뤄진 점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테리 연구원 사건은 메넨데즈 의원 사건과 유사한 점이 있는데, 메넨데즈 의원의 혐의들이 소명되면서 자신감을 얻은 미 연방수사국(FBI)이 기소를 결정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메넨데즈 의원이 받은 혐의에는 이집트 측으로부터 현금과 명품을 받고 고급 레스토랑 접대를 받은 내용도 포함됐다. '청탁' 입증여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지만, 표면상 테리 연구원이 받은 혐의와 유사하다.
메넨데즈 의원이 민주당 거물이라는 점, 테리 연구원은 민주당 출신의 오바마 행정부 소속 인사라는 점도 두 사례는 비슷한 부분이 있다. 로젠스타인 변호사는 "FARA 수사는 동맹국을 가리지 않는다"며 "테리 연구원이 오바마 정부 시절 인사라는 점에서, 미 대선을 앞두고 이뤄진 이번 기소가 특정 정당이나 정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미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정파적 이익과는 상관없다는 의미다.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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