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 나던 녹지가 꽃향기 가득한 산책길로 변신

대구=명민준 기자 2024. 8. 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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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통한 더 나은 일상/우리들의 공간 복지]
〈4〉 대구 서구 ‘그린웨이’
서대구공단-주택가 사이 완충녹지… 오래 방치되면서 우범지대로 변해
죽은 나무 걷어내고 꽃나무 심어… 계절꽃-야생화 만발한 길 조성
편백나무 ‘테라피원’ 주민들 호평… 조각상 ‘그리팅맨’도 주요 볼거리
최근 대구 서구 그린웨이를 찾은 주민들이 만개한 장미꽃밭 사이로 난 산책길을 걷고 있다. 대구 서구 제공

“동네 미관을 해치고 악취까지 풍기던 곳이 꽃 내음 가득한 산책길로 변했으니 얼마나 좋겠어요.”

25일 대구 서구 중리동 산책로 그린웨이에서 만난 김성만 씨(69)는 형형색색의 장미꽃으로 둘러싸인 길을 걸으며 이렇게 말했다. 4년 전 고혈압, 고지혈증 진단을 받은 김 씨는 의사의 권유로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마침 그즈음에 집 근처에 그린웨이가 조성됐는데 금세 매력에 빠져 매일 찾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오르내리는 길을 숨 가쁘게 걷고 나면 온몸에서 땀이 나 개운한 기분이 최고다. 전체 둘레길(왕복 7km)을 걸으면 1시간 40분 정도 걸리는데 구간별로 계절 꽃과 야생화를 만날 수 있고 피톤치드 샤워까지 할 수 있어 혼자 걸어도 전혀 지겹지가 않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 사는 김 씨의 아들 김정현 씨(39) 가족도 나들이 코스로 그린웨이를 자주 찾고 있다. 정현 씨는 “세계적인 조각가의 작품을 볼 수 있고 여름철에는 어린이 물놀이장도 운영해 웬만한 놀이공원 못지않다”고 말했다.

● 우범지대가 명품 산책 공원으로 대변신

서구는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섬유 및 염색산업 발달로 사람과 돈이 모여들고 기계 소리가 끊이지 않던 대구 산업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섬유 등 주력 산업이 쇠락의 길을 걸으며 차츰 역동성을 잃었다. 서대구공단과 주택가 사이에 놓여 있던 완충녹지도 자연스레 방치됐고 죽은 나무와 잡초가 뒤엉켜 흉물스럽게 변해갔다. 주민들로부터 외면받은 완충녹지는 청소년들의 탈선 행각이 이뤄지는 우범지대로 변해 밤낮 가릴 것 없이 다니기 무서운 길이 됐다.

서구는 완충녹지가 가진 공간적 가치에 주목했다. 류한국 서구청장은 “훼손된 풀과 나무를 걷어내고 산책길을 다듬으면 도심 속에서 찾기 힘든 녹음이 가득한 산책길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서구는 공간복지 실현을 목표로 완충녹지를 다듬어 도심 숲 산책길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3년 동안 총사업비 55억 원을 투입해 중리동과 이현동 일대 서대구공단 완충녹지를 그린웨이로 탈바꿈시켰다.

서구는 각 구간에 특색 있는 주제를 구상해 그린웨이를 완성시켰다. 놀이공원 등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계절 꽃밭을 조성했고, 도심 속에서도 짙은 녹음을 만끽할 수 있는 숲속 산책길을 만들었다.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구간마다 화장실을 설치했고 벤치와 팔각정 등 휴식공간도 만들었다. 주민들이 밤낮으로 안심하고 걸을 수 있도록 곳곳에 폐쇄회로(CC)TV도 설치했다.

● 지겨울 틈 없이 다채로운 산책길

그린웨이 내 장미원에서 방문객들이 만개한 장미꽃에 둘러싸인 벤치에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대구 서구 제공
그린웨이에는 모두 10가지 주제별 산책길이 있어서 전체 둘레길을 거닐며 구간마다 사진을 찍고 다양한 꽃과 나무를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상파 인기 드라마 촬영지로 이용될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그린웨이를 대표하는 장미원에서는 요즘 여름을 맞아 다채롭게 피어난 여러 종류의 장미꽃을 감상할 수 있다. 160m 길이의 장미원에는 메모이레와 핑크퍼퓸, 블루리버 등 22종, 1만5000여 그루의 장미가 식재돼 있어 대구 최고의 사진 명소로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각양각색의 야생화들이 가득한 야생화원과 백합이 장관을 이루는 백합원도 계절마다 그린웨이 산책길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목서와 아그배, 매화, 수수꽃다리 등 향기가 나는 수종들로 가득한 향기원에서는 향긋한 꽃내음을 맡으며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다.

소나무와 향나무가 식재된 상록수원과 테라피원도 인기가 많은 구간이다. 특히 피톤치드 성분이 풍부한 편백나무 수백 그루가 식재돼 있는 테라피원에서는 그린웨이를 찾은 주민들이 맑은 공기를 마시며 심신 안정을 취할 수 있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단풍나무로 가득 찬 낙엽원에서는 가을철 붉은 빛으로 물든 단풍잎을 바라보며 정취를 즐길 수 있다.

● 조각가 유영호와 협업한 ‘그리팅맨’도

그린웨이 이현공원 구간에 놓인 ‘그리팅맨’도 주요 볼거리다. 근육질 거인이 인사하는 형상의 조각상이다. 서구는 2021년 세계적인 조각가 유영호 작가와 협업해 그리팅맨을 세웠다. 유 작가는 존중과 배려,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전 세계 1000곳에 그리팅맨을 세우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우루과이에 1호를 세웠고 파나마, 에콰도르, 미국, 브라질 등에 그리팅맨을 세웠다.

그린웨이에는 여름철 어린이들이 즐겨 찾는 어린이 물놀이장도 있다. 총면적 1000m²로 테마형 조합놀이대를 비롯해 대형 버킷, 미끄럼틀 등 각종 물놀이 시설을 갖췄다. 간이 탈의실과 샤워시설 등 편의시설도 있다. 주변에 녹지공간도 갖추고 있어 주민들의 쉼터이자 피서지로 각광 받고 있다.

서구는 최근 그린웨이에 1억2000만 원을 투입해 다채로운 조명과 조형물을 추가로 설치했다. 반딧불 조명을 비롯해 숲속 동물과 식물을 형상화한 조명을 설치해 야간에도 주민들이 그린웨이를 즐겨 찾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류 구청장은 “공간복지는 낙후된 공간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현대 사회의 필수 정책이다. 앞으로도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공간복지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늘려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구=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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