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파리올림픽 유감

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 2024. 8. 2.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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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교수)


올림픽은 전쟁의 재현이다. 전쟁을 부드러운 형식으로 다시 드러낸다. 선수들은 국가의 이름을 걸고 몸과 도구를 써서 이 전쟁에 참여한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보상과 명예를 얻는다. 근대 올림픽을 창안한 쿠베르탱은 1870년 프랑스가 프로이센과 벌인 전쟁에서 패배한 뒤 군인이 강인한 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해 고대 올림픽을 연구했다.

물론 근대 올림픽은 민족주의를 벗어나 세계의 젊은이가 스포츠를 통해 우의를 다지고 신체와 정신의 자질을 키우며 국제 친선을 도모한다는 이념을 내세웠다. 그러나 국가-선수단-선수-우승-수상이라는 구조는 국가-군대-군인-승리-보상이라는 구조를 빼닮았다. 올림픽은 국가 사이에 전쟁을 치르지 말고 스포츠경기로 이를 대신하자고 외친다.

그래서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면 올림픽은 열리지 못한다. 제6회 베를린올림픽(1916년)은 1차대전 때문에, 제12회 도쿄올림픽(1940년)과 제13회 런던올림픽(1944년)은 2차대전 때문에 취소됐다. 도쿄올림픽은 헬싱키로 개최지가 변경됐지만 끝내 중단됐다. 또는 실제 전쟁에 참여하거나 심각한 갈등에 휘말린 국가는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한다. 제23회 로스앤젤레스올림픽(1984년)은 소련을 위시한 2세계 국가가 보이콧을 선언했고 제24회 서울올림픽(1988년)에는 북한과 쿠바 등 공산국가가 불참했다. 이번 파리올림픽에는 전쟁을 수행 중인 러시아가 참가하지 못했다.

올림픽은 전쟁의 대체재다. 전쟁과 유사한 '놀이'를 통해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러나 올림픽은 전쟁의 재현이지만 곧 전쟁 자체는 아니므로 유사성을 숨기기 위해 여러 담론으로 분칠된다.

국가주의 담론은 가장 강력하다. 근대 국가를 위해 창안된 올림픽은 특정 도시에서 개최되지만 선수들은 국가의 이름으로 참가한다. 언론은 경기결과 획득한 금·은·동메달의 수를 따져 나라별로 순위를 매긴다. 금메달을 많이 받으면 훌륭한 나라가 된다. 역사가 짧고 문화가 빈약한 나라일수록 올림픽의 성과를 통해 '위대한 국가' 이념을 국민에게 주입한다. 올림픽은 강력한 스포츠 민족주의의 표상이다.

개인의 성취담론도 힘이 세다. 우승을 이뤄낸 선수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언론은 선수가 금메달을 거머쥐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성취를 이뤄냈는지 홍보한다. 누구든 환경 탓하지 말고 개인이 열심히 도전하면 성취할 수 있다는 신화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메달을 놓친 선수는 실패한 셈이 된다.

산업주의 담론도 만만치 않다. 올림픽을 통해 다양한 스포츠산업이 빛을 발한다. 올림픽경기장은 글로벌 기업의 홍보와 광고마당으로 탈바꿈한다. 거액의 방송중계 수수료는 국제올림픽위원회를 살찌우는 양분이 된다. 스포츠는 산업이 되고 산업은 스포츠를 지원한다. 비판적으로 보면 이는 결국 자본의 논리가 스포츠를 장악해가는 과정이다.

국가, 개인, 산업을 뛰어넘는 문화주의 담론도 있다. 올림픽이야말로 개최지의 문화적 역량을 통해 세계 문화가 한자리에 모여 축제를 펼치는 장이라는 생각이다. 문화는 순수한 이름으로 올림픽에 불려나온다. 그러나 그 절정이라 할 수 있는 개막식과 폐막식의 퍼포먼스도 깊이 따지고 들면 국가주의나 산업주의와 깊이 연결돼 있다.

파리올림픽은 개막식에서 대한민국 국호를 북한으로 잘못 호명하고 펜싱선수 오상욱의 이름을 잘못 표기하고 태극기만 유독 흐릿한 사진을 홍보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모두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올림픽이 근대 국가의 완성을 위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더욱 유감스럽다. 파리올림픽이 이제라도 메달은 놓쳤지만 잘 싸운 선수들, 순위에 들지 않았지만 큰 힘을 낸 나라들, 자본을 쏟아붓지 못하지만 여전히 스포츠를 사랑하는 기업들, 국가주의에 물들지 않은 문화와 예술의 축제가 되길 희망한다.(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

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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