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매체범람 시대, 공동체의 형성과 위기
뉴스는 내가 직접 보거나 경험하지 않은 사건에 대한 소식이다. 그만큼 믿을 수 있어야 하고 확실해야 한다. 그런데 정보의 정확도뿐 아니라 그 파급력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다. 매체가 다변화되고 개인채널들도 늘면서 신속히 이슈를 선점하려는 경쟁이 통제 불가능할 정도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영상의 형태로 매개되는 정보는 동시대의 인식과 정서를 뒤흔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정보가 신뢰를 잃으면 공동체는 방향을 잃고 무너진다.
주체가 자기와 동떨어진 세계를 인식할 수 있게 하는 매체의 공간확장 효과는 근대적 공동체 성립의 중요한 조건이었다. '비슷한 생각을 가졌고, 비슷한 일상을 가진 사람들이 멀리 어딘가 살고 있다.' 내 주변에만 국한되지 않는 공동체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이후 20세기에는 통신과 영상기술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시간적 근접성과 감각의 다중성이 중요한 요건으로 등장한다. 영상에 기반한 방송체계는 정제된 텍스트에 연연하기보다 즉각적 상호교류가 가능한 동시감각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20세기 말 TV화면 상단에 자주 등장한 실시간이라는 뜻의 'LIVE'는 사전조작이나 더빙이 아닌 '진실된' 방송이라는 자랑스러운 표식이었다. 편집은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만들 수 있지만 편집이 불가하다는 것은 그 이미지가 그냥 사실이라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매체에 의해 포착된 사건의 한순간은 동시대가 그것을 목도하며 역사가 된다. 역사적 영상의 힘은 그 기록의 수명처럼 거의 영구적이다.
영화이론가 앙드레 바쟁은 영상이 가진 사실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마놀레테'라는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언급한 적이 있다. 1940년대 당시 유명한 투우사 마놀레테는 투우 중 황소의 뿔에 찔려 죽고 마는데 그 결정적 순간이 영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햇빛이 쏟아지는 오후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된 투우장에서 그가 쓰러진다. 그 순간을 화면에서 봤을 때 관객이 느끼는 충격과 공포는 투우장에 있던 관중의 감정보다 거짓되지 않다. 또한 그 감정은 그 장면이 상영되는 모든 순간 모든 장소에서 반복된다.
영상의 힘은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정서의 진실성에서만이 아니라 그것이 여러 번 반복되며 증폭될 수 있다는 데서 온다. 방송은 영상의 힘을 가장 잘 드러낸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차례로 무너지던 그 영상을 떠올려보자. 보는 이의 말을 잃게 만드는 이미지였지만 뉴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여러 스토리를 불러왔다. 보는 이의 충격을 계속 배가하면서 2014년 봄 가라앉는 유람선의 이미지를 목격한 우리의 트라우마도 비슷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고통은 애도라 부르기도 힘들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닥친 비극은 쉽게 타자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상매체가 관람자에게 전하는 경험이 대체불가한 실존과 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반복 가능성 때문에 더욱 강렬히 지속된다는 깨달음 때문일까. 20세기에 그렇게 선호된 생방송도 변화했다. 시청자가 방송사고나 원하지 않는 폭력에 노출되지 않도록 약간의 시차를 두고 전파를 송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공적 방송은 '오래된 매체'(legacy media)로 불릴 정도로 그 영향력이 축소됐다. 언젠가부터 뉴스보다 '뉴스 쇼'가 더 많아졌고 소셜미디어나 뉴미디어 플랫폼의 1인채널이 퍼나르는 정보가 범람한다. 뉴스의 정확성이나 보도의 윤리란 고루한 잔소리처럼 들릴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폭로와 조작을 통해 이윤을 얻는 선정적 유사언론들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해선 안 된다. 언론에 대한 신뢰는 공동체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매체가 대중의 삶에 스며들어 있는 요즘 공적 방송과 뉴미디어 채널들의 이상적인 조화와 역할분담에 대한 해법이 절실하다.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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