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방송서 “히토리 사카바데~♪”… K팝 시대에 뭐 어때

최보윤 기자 2024. 8. 2. 00: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日 음악 ‘금단의 벽’이 무너졌다

“히토리 사카바데 노무 사케와 와카레나미다노 아지가 스루(홀로 술집에서 마시는 술은 이별의 눈물의 맛이 난다)~.”

지난달 19일 방송된 TV조선 예능 ‘미스터 로또’. 가수 진해성이 짙은 중저음으로 노래를 부르자 방청석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졌다. 눈물을 글썽이는 이도 카메라에 잡혔다. 방송 화면에는 일본어 가사와 한국어 해석을 자막으로 달았다. 이날 진해성이 부른 노래는 일본의 ‘국민 가수’ 미소라 히바리(1937~1989)의 ‘슬픈 술(悲しい酒·가나시이 사케·1966)’. 나훈아가 2002년 한일문화교류 기념 특별 앨범에 수록할 정도로 한국에서도 알려진 노래다.

◇한국 TV에 등장한 ‘긴기라기니’

이날 방송은 일본에서도 활동했던 가수 김연자의 후예를 발굴한다는 콘셉트로 꾸며진 무대. 김연자는 사이조 히데키의 1983년 곡 ‘갸란두(ギャランドゥー)’를 열창하는 등 50년 노래 인생 처음으로 국내 방송에서 일본 노래를 불렀다. 김연자는 “일본 대중 음악의 불모지와도 같았던 한국 방송에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감회가 들었다”고 말했다. 시청자 반응은 뜨거웠다. 방송 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감성에 반했다” “신선하다”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일본 노래가 방송에 왜 나오느냐 같은 반응은 거의 찾기 어려웠다.

앞서 지난 4월부터 MBN이 방송한 ‘한일가왕전’은 아예 일본 가수들이 한국 프로그램 무대를 누볐다. 일본 대표로 등장한 스미다 아이코(18)가 부른 곤도 마사히코의 1981년 곡 ‘긴기라기니 사리게나쿠’는 국내 유튜브에서 600만뷰를 넘어서며 큰 인기를 누렸다.

MBN 예능 '한일가왕전'에서 일본 가수 스미다 아이코(18)가 일본 노래를 부르고 있다. /대원씨아이

지난 2004년 일본 문화 전면 개방 이후 영화·애니메이션·게임·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본 문화가 쏟아져 들어왔지만, 방송가에서 일본어 노래는 마지막까지 넘을 수 없는 금기(禁忌)처럼 여겨져 왔다. 2018년에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48을 통해 선발된 한·일 합작 아이돌 그룹 아이즈원의 노래 ‘반해버리잖아?’가 일본어 가사가 일부 들어있다는 이유로 KBS와 SBS의 방송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방송 불가 판정을 받은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금기는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젊은 세대가 주도하는 일본 문화 소비

1020 젊은 세대가 일본 문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 주제곡인 ‘아이돌’ 등을 부른 일본 그룹 ‘요아소비’는 지난해 음악 전문채널 엠넷(Mnet)의 대표 프로그램 ‘엠카운트다운’에 등장해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이들이 부른 노래는 유튜브에서 단 몇 주 만에 1000만뷰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최애의 아이’ 캐릭터를 따라하는 챌린지엔 국내 유명 아이돌 그룹 아이브의 장원영·르세라핌 홍은채 등이 참여할 정도로 인기였다.

최근 1020세대에서 큰 인기를 누린 일본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왼쪽) 캐릭터 모습을 연출한 아이돌 그룹 '아이브'의 장원영. /장원영 인스타그램

젊은 세대가 주로 사용하는 틱톡, 애플 뮤직 등을 통해 다양한 음악을 접하면서 지난해엔 일본 가수 이마세가 국내 최대 음원 차트 멜론에서 17위에 오르는 등 일본 가수로선 처음으로 톱 100에 진입하기도 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젊은 층이 소비하는 대중문화는 서브컬처(하위 문화)로 주류 층에 반항하며 성장하기 마련”이라면서 “그동안 국민 정서적으로 스스로 수위를 조절했던 것이 ‘노 재팬 운동’ 등 일방적인 반대로 억눌렸다가 오히려 반발로 소비가 폭증한 것도 있다”고 말했다.

◇”K컬처 세계적 인기, 문화적 경계심 가질 이유 없어”

K팝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상황에서 한국 시청자들에게 일본 문화라고 해서 금기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방송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1020세대가 주도하는 K팝 아이돌 그룹이 이미 미국의 빌보드 차트 상위권을 점령하면서 젊은이들은 문화적 자신감이 강하다”면서 “이른바 왜색 문화에 우리 문화가 잠식당할 것이라는 식의 인식이 설 자리는 없다”고 했다.

일본 엔터테인먼트 업계도 적극적으로 한국에 구애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TV조선과 프로그램 제휴를 맺은 일본 NTT 도코모 스튜디오&라이브의 야마지 가쓰아키 대표는 “일본의 문화 소비시장은 크지만, 해외를 겨냥한 움직임은 대형화하는 한국에 비해 개별적이고 작은 규모”라면서 “최근 들어 K팝을 비롯해 한국 드라마 등이 세계 시장을 섭렵하면서 한국과 손잡는 것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빠른 길이라고 평가를 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일본대중문화 개방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에도 계속 막아온 일본 대중문화의 유입을 공식 허용한 조치.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단계적으로 실시돼 2004년부터 영화, 음반, 게임, 출판 등이 전면 개방됐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일본 노래를 방송에서 부르는 것은 금기시됐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