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이 그린 ‘악당’… 이렇게 짜릿할 수가
그가 연기한 악당도 근사했고, 그가 그린 악당도 근사했다. 휴대폰 광고에서 괴짜 같은 ‘맷돌춤’으로 주목받기 시작해, 드라마 ‘추노’ ‘각시탈’, 영화 ‘최종병기 활’ 등에서 악역으로 활약해 선역만큼이나 회자된 배우 박기웅(39). 배우이기 전 미대생이었던 그가 화가 겸업을 선언한 지 3년여 만에 네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 제목은 ‘몽타쥬: 모든 동화에는 근사한 악당이 필요해’.(관람 무료) 애니메이션 등 대중문화 속 악당을 자신만의 감각과 충만한 에너지로 재해석했다. 악당들의 표독스럽고, 괴팍하고, 솔직한 표정에는 가식이 없다. 더위를 날리는 짜릿하고 시원시원한 맛이 있다.
이달 17일까지 전시하는 서울 중구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만난 박기웅은 “작년 전시 그림들이 20년 넘게 배우를 한 사람이 그렸을 법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배우 반, 작가 반 ‘변종’ 전시”라며 “그래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더 긴장했다”며 웃었다. 작년 개인전 ‘48 VILLAINS’에선 영화의 유명 악역 배우들의 극적인 얼굴을 실제와 가깝게 흑백으로 그린 작품들로 주목받았다. 표정을 항상 연구하는 배우다운 전시였다.
이번엔 사뭇 다르다. 손으로 그리는 핑거 페인팅, 인물 앞에 초록색 필터를 끼운 듯한 글레이징 기법 등 자유분방한 표현으로 그만의 색깔을 보여준다. 청량하거나 아기자기한 색감에 ‘심슨 가족’의 ‘몽고메리 번스’,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의 ‘크루엘라’, ‘라이온 킹’의 ‘스카’ 등 여러 악당이 저마다 표정을 드러낸다. “각 캐릭터가 가장 열심히 연기하고 있는 모습,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못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골라 그렸어요.”
성적도 좋고 그림도 잘 그리던 그는 지망하던 미대에 가지 못해 좌절하던 중 길거리 캐스팅이 돼 배우가 됐다고 한다. 손이 굳지 않을까 걱정하며 손에서 그림을 놓지 않았다. 화가 겸업을 시작한 건 “순전히 법 때문”이라고 했다. 주 52시간 근무제 영향으로 밤샘 촬영이 줄어 마음에 담아뒀던 화가의 길을 “질렀다”는 것. 그는 “배우로서 삶이 훨씬 길었던 만큼, 앞으로도 연기와 닮아있는 작업을 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악당을 그리는 것도 배우의 삶이 묻어난 것이다. 배우로 40작품 넘게 이력을 쌓은 그는, 극 중 악역으로 돌변하거나 사연 있는 악역을 맡아 큰 존재감을 보여줬다. 그가 악역을 맡은 작품들이 흥행했다.
그는 “예전에는 ‘나도 악역 일본 순사 대신 주인공 각시탈을 잘할 수 있는데’ 같은 결핍도 있었다”면서 “20대에는 자격지심에 동년배 배우들이 하지 않는 독특한 도전을 많이 했고, 그래서 그런지 저는 ‘뒤에 있는 것’에 더 마음이 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1년 반 넘게 준비한 이번 전시는 작품마다 공을 들인 흔적과 애정이 가득하다. “나의 일부가 어딘가로 간다는 점에서 연기와 미술에 교집합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림은 한번 보내고 나면 다시 못 볼 가능성이 높잖아요. 더 아쉽고 사랑을 많이 줄 사람에게 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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