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짜장면으로 근원 찾기

조규익 숭실대 명예교수·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장 2024. 8. 2.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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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DB

어린 시절 아버지 따라 면사무소 옆 장터에 갔다가 처음 맛본 짜장면. 그 부드러운 감칠맛의 기억이 강했으나, 다시 맛볼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몇 해 뒤 중졸 검정고시 합격증을 받고 자축하기 위해 친구들을 시장 골목의 중국집으로 불렀다. 짜장면 맛이 추억으로 남게 된 건 바로 그때. 서울살이 37년 동안에도 짜장면은 간혹 먹었으나, 그 첫 기억과 추억이 떠오른 적은 없었다. 분주하고 번잡한 일상 때문이었으리라.

전원으로 돌아와 한적한 어느 면 소재지를 지나던 중 시장기가 동했고, 짜장면 집이 바로 옆에 있었다. 첫 젓가락질에 잡힌 면 몇 올이 옛 맛의 기억을 끌어냈다. ‘미각은 지문보다 정확하다’는 속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기억과 추억을 만들어준 고향의 그 집이 사라졌음을 안 그 즈음부터 짜장면 맛 탐색은 시작되었다. 심지어 짜장면의 원조라는 인천 차이나타운에도 들렀다. 내 혀에 남은 맛의 단초가 혹시 거기에 있을까 해서였다. 짜장면 맛 찾기를 통한 내 ‘근원 찾기’라고나 할까.

시골 장터에서 친구들과 짜장면의 추억을 공유한 뒤 노마드로 세상을 전전하다가 ‘고향 가까운 곳’에 내려와 그 맛을 찾아다니는 오늘까지 반세기가 넘었다. 고향의 순채국과 농어회를 못 잊어 벼슬을 버리고 귀향했다는 서진(西晉) 문장가 장한(張翰)의 ‘순갱노회(蓴羹鱸膾)’ 고사도 있지 않은가. 벼슬과 명예를 구하며 타향을 전전하는 일의 부질없음을 자각한 그가 고향에 내려간 것도 바로 맛의 추억 때문 아니었겠는가.

타향살이가 나를 변화시키고 키워준 ‘혁명의 시간’이었다는 건 섣부르고 헛된 자부였다. 거울 속엔 콧물 찔찔 흘리던 옛날의 내가 빈손으로 돌아와 서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취의 자부심 무너지는 동안에도 고향의 짜장면은 이곳 전원의 한구석에서 여전히 방긋 웃고 있었다. 그러니 짜장면을 손쉽게 시장기를 해결할 수 있는 싸구려 음식으로만 여길 수는 없다. 누구든 자성(自性)을 관조할 때가 되면 고향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소울 푸드’ 짜장면이 가르쳐 주는 삶의 진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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