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해병대에도 좌우가 있다니
더불어민주당 정청래(4선·서울 마포을) 의원의 마포구 자택 앞에 1일 오후 ‘해병대 전우 전국 총연맹’ 회원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정 의원이 지난 6월 해병대원 특검법 청문회에서 군복 입은 해병대 장성(將星) 등을 퇴장시키거나 ‘일어나라’고 하는 등 고압적 자세를 보인 데 대해 “해병대를 능멸했다”며 “당장 사퇴하라”고 했다.
요즘 전국 곳곳에서 해병대 예비역 집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달 19일은 채 상병 순직 1주기였다. 서울 광화문 일대에선 해병대 예비역 연대가 개최한 추모제가 열렸는데, 군인권센터 등 시민단체도 채 상병을 추모한다는 취지의 윤석열 정부 규탄 대회를 열었다. 순직 장병 추모 집회조차 좌우로 쪼개진 느낌이었다.
같은 날 경기 성남의 한 호텔에서 해병대전우회도 추모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현 상황은 해병대 창설 후 가장 큰 위기”라며 “정치권은 해병대를 더는 정쟁에 이용하지 말고, 전우들은 더는 정치권에 매달리지 말며, 해병대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자”고 했다. 해병대전우회 경북도연합회는 다음 날 포항 해병 1사단 앞에서 삭발식까지 열었다.
해병대 예비역 간 갈등은 최근 채 상병 특검법 재표결 부결을 계기로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해병대 출신의 한 가수가 “좌파 해병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발언하자, 해병대 출신의 친야(親野) 변호사는 “정권에 들러붙어 부끄럽지도 않으냐”고 했다. 이 변호사는 지난 4월 총선 민주당 공천을 신청했다가 떨어진 인물이다. 최근엔 임성근 전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제보 당사자로 나타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취재를 맡은 종로구·중구·용산구 일대에선 거의 매주 해병대 집회가 열린다. 한 집회에선 파란 옷을 입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몰려와 ‘이재명! 이재명!’을 외치기도 했다. 작년 이맘때 채 상병이 실종된 경북 예천 현장 취재를 나갔다. 수색에 참여했던 해병들은 그저 전우를 찾겠다는 마음 하나로 땀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1년 뒤 서울의 온갖 ‘추모 집회’에서 해병대마저 좌우로 쪼개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챙기겠다는 욕망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줄은 그때는 몰랐다.
해병대는 상륙 작전을 하는 부대다. 빗발치는 총탄과 포탄을 뚫고 해안에 상륙, 적 진지를 점령해야 한다. 6·25 전세를 바꾼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현장에 그 해병대가 있었다. 상륙 작전 부대의 생존율은 높지 않다. 죽음의 두려움마저도 초월하는 단결과 사기가 그래서 요구된다. ‘귀신 잡는 해병’이란 구호는 해병대의 본질 그 자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 좌우로 나뉜 해병대 모습을 보면 조금 겁이 난다. 상륙작전 도중 “너는 좌파 해병이다” “너는 정권에 빌붙었느냐”며 손가락질하는 해병대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런 해병대를 누가 만들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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