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06] 바람 불면 냉큼 눕는 풀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2024. 8. 1.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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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풀은 바람이 불어오면 금세 눕는다. 바람의 영향이야 그저 풀에만 미치지 않겠지만, 바람을 좇아 가장 먼저 눕는 풀 모습은 사람의 시선을 제법 끈 듯하다. 공자(孔子)의 ‘논어(論語)’에도 이는 일찌감치 등장한다.

군자(君子)의 덕을 바람에, 소인(小人)의 모습을 풀에 비유했다. 초언풍종(草偃風從)이라는 어구다. 바람 따라 풀이 누워버리는 현상을 유가(儒家) 지향의 가치에 견줬다. 그러나 ‘바람과 풀’은 그런 도덕적 취향에 국한되지 않는다.

풍미(風靡)는 우리도 잘 쓰는 단어다. 바람이 향하는 곳으로 풀이 죄다 눕는 현상을 가리킨다. 어떤 것이 큰 세력을 이뤄 휩쓸고 다니는 현상을 그렸다. 세찬 바람처럼 커다란 유행(流行)을 이루는 무언가를 지칭한다.

거세게 부는 바람에도 잘 버티는 풀을 묘사한 성어도 있다. 질풍경초(疾風勁草)다. 제아무리 센 바람이 불어닥쳐도 꿋꿋하게 잘 견디는 풀이다. 고난과 역경을 이기면서 뜻을 이루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실제 자연현상과는 거리가 있다.

바람에 얼른 눕는 풀은 중국인들의 오랜 관찰 거리다. 중국인들이 요즘도 즐겨 쓰는 말은 ‘담벼락 위에 자란 풀’이다. 한자로는 장두초(墻頭草)라고 적는다. 담장 위에 자라나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잘 드러눕는 풀이다.

비난과 야유가 깃든 언어다. 바람을 보고 먼저 능동적으로 눕는 사람의 인성(人性)을 지적한다. 주견(主見) 없이 시세(時勢)에만 맞춰 움직이는 이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해타산에 밝은 중국인들의 집단적 심성이 어느덧 ‘장두초 문화’를 이뤘다는 지적도 있다.

요즘 당과 정부의 관료들 머리 위로 시진핑(習近平) 총서기의 바람이 거세다. 그 바람의 향배를 좇아 당과 정부의 ‘풀’들은 납작 엎드리기에만 바쁘다. 무엇을 몰고 올 바람인지, 어디로 향하는 바람인지 상관없이 그저 눕기에만 바쁘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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