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중 빈자리, 'ERA 27.00 투수'를 마무리로 쓰다니… 김태형 도박 대성공, 새 거인 탄생했다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롯데는 7월 31일 인천 SSG전에서 10-5로 앞서던 9회 마무리 김원중이 5실점하고 무너진 끝에 결국 연장 12회 11-12 역전패를 당했다. 충격이 큰 패배였다.
아무리 김원중의 컨디션이 안 좋았다고 해도, 그만한 퀄리티를 가진 마무리가 아웃카운트 세 개도 잡지 못하고 5실점을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1사 만루에서 정준재에게 적시타, 박지환에게 희생플라이를 허용해 2점을 내준 김원중은 2사 1,2루에서 에레디아에게 중월 동점 3점 홈런을 맞고 허무하게 동점을 허용했다. 김원중은 결국 쓸쓸하게 강판됐다.
롯데는 10-10으로 맞선 연장 12회 정훈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내고 위기에서 벗어나는 듯했으나 연장 12회 2사 후 오태곤에게 끝내기 역전 투런을 맞고 경기를 내줬다.
김원중의 붕괴 여파는 단순히 한 경기로 끝날 게 아니었다. 31일 35개의 공을 던지면서 1일 경기에도 쓰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빨리 맞고 끝냈다면 1일 만회의 기회라고 있었을 텐데 전날 35개를 던진 선수를 다시 내보내기는 쉽지 않았다. 롯데는 마무리 없는 1일 경기가 예고되어 있었다.
이런 날 또 하필 마무리가 필요한 상황이 온다. 그게 야구다. 롯데는 경기 초반 상대 선발 드류 앤더슨의 위력적인 구위에 눌리며 5회까지 1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0-2로 뒤진 7회 1점을 만회했고, 8회 상대 실책에 힘입어 3점을 더 추가하며 4-2로 앞섰다. 이제 불펜 운영이 중요한 상황이 됐다.
선발 박세웅이 7회 1사까지 막고 내려간 상황에서 진해수가 두 번째 투수로 올라 두 타자, ⅓이닝을 소화했고 롯데는 휴식을 마치고 이날 1군에 올라온 김상수가 마운드에 올라 1⅓이닝을 완벽하게 막아주며 다리를 놨다. 그런데 9회가 문제였다. 김원중을 대신해 마운드에 오른 구승민이 정준재를 아웃으로 잡아내는 과정에서 몸에 공을 맞았고, 이후 제구가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구승민은 이지영 하재훈에게 연속 볼넷을 내줘 1사 1,2루에 몰렸다. 구승민이 공에 맞은 뒤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롯데의 선택은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었던 한현희가 아닌, 좌완 송재영(22)이었다. 아무리 상대 타순이 최상민 박성한이라는 좌타자로 이어지고, 대타로 낼 만한 우타자가 없다고 해도 깜짝 기용이었다.
라온고를 졸업하고 2021년 롯데의 2차 4라운드(전체 31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한 송재영은 2021년 1군에 데뷔했으나 큰 성과는 남기지 못하고 입대했다. 상무에서 기량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제대했다. 하지만 올해 1군 출전은 어제까지 3경기에 불과했다. 그나마 평균자책점 27.00이었다. 전날 SSG전에서 잘 던졌고, 상대적으로 수월한 좌타 라인이었지만 분명한 도박이었다. 이 어리고 경험이 적은 선수가 이 압박감을 이겨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했다.
하지만 송재영은 강심장이었다.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콤보로 차분하게 경기를 풀어갔다. 제구도 잘 됐다. 최상민과 승부에서 1B-2S의 유리한 카운트를 잡은 뒤 4구째 가운데 패스트볼을 던져 루킹 삼진을 잡아냈다. 롯데 벤치는 송재영을 밀고 나갔다. 그리고 송재영은 기대에 부응했다. 최근 타격감이 좋은 박성한과 승부에서 1B-1S 카운트를 잡았고, 이어 패스트볼을 연거푸 던지며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다. 롯데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송재영의 데뷔 첫 세이브가 올라가는 순간, 그리고 롯데가 어제의 악몽에서 탈출하는 순간이었다.
김태형 롯데 감독도 경기 후 “어제 경기에서 팀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을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 경기 선수들이 집중력을 발휘해서 좋은 경기하며 승리 할 수 있었다. 선발 투수로 나선 박세웅 선수도 선발로서 역할을 잘 해줬고, 손호영 선수도 좋은 타격으로 팀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면서 “마지막으로 등판 했던 송재영 선수가 잘 던져준 덕분에 너무도 귀중한 세이브를 기록했다”고 이날 수훈 선수 중 하나로 송재영을 뽑았다. 벤치의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한 이 어린 선수가 예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벤치의 큰 축하를 받은 송재영은 경기 후 “등판 상황에 ‘결과는 제 힘으로 할 수 없다. 후회 없이 던지고 내려오자’는 생각을 했다. 등판 후 긴장이 되기는 했지만, (손)성빈이가 잘 이끌어줘서 카운트를 잡고 승부할 수 있었다. 첫 세이브에 대한 소감보다 먼저 팀의 연패를 끊을 수 있었다는 것에 기쁘다.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자리에 앞으로도 설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면서 “첫 세이브에 대한 소감을 굳이 밝히자면 꿈꿔 왔던 상황이라 믿기지 않고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앞으로도 오늘과 같이 팀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위기 상황에서 큰 거인으로 클 수 있는 배짱을 가진 선수가 나타나 롯데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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