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싸운 선수들에게 미안, 슬프다"...허미미 꺾은 데구치, '악플 테러'에 입장문 올렸다[파리올림픽]
[OSEN=고성환 기자] 허미미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건 크리스타 데구치(23, 캐나다)가 악성 댓글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데구치는 1일(이하 한국시간)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댓글들을 읽었더니 슬픈 감정이다. 그리고 내가 상대했던 선수들에게 미안하다"라며 "여러분이 아끼는 선수들을 보호하려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아무도 나라, 선수, 다른 많은 이들과 관련된 의미 없는 싸움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그는 "난 여러분에게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상대를 총으로 겨누고 그 말들을 쏴버릴 필요는 없다. 그 경기들은 내가 원하는 것처럼 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데구치는 "다다미 매트(유도 매트) 위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각자 꿈을 위해 싸운다.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모든 팬분들이 우리처럼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라고 호소했다.
'세계 랭킹 1위' 데구치는 지난달 30일 프랑스 파리 샹드마르스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유도 여자 57kg 결승전서 랭킹 3위 허미미(22, 경북체육회)를 골든 스코어 끝에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허미미는 한국 여자 선수로는 1996년 애틀랜타 대회 조민선(당시 66kg급) 이후 28년만의 금메달을 노렸지만 아쉽게 패배했다. 그래도 지난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정보경(48kg급)의 은메달 이후 8년 만에 한국 유도에 메달을 선사했다. 한국 유도는 지난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노메달에 그쳤다.
데구치는 허미미와 마찬가지로 캐나다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다. 둘은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맞붙은 바 있다. 당시엔 허미미가 연장전 끝에 지도 3개를 얻어 반칙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다시 맞붙은 데구치와 허미미는 시작하자마자 날카로운 공격을 주고 받으면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쳤다. 1분여도 지나지 않아서 두 선수에게 모두 지도가 주어졌다. 허미미는 안다리와 업어치기를 번갈아 시도하면서 앞서갔다. 그러나 위장 공격으로 지도를 얻으면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데구치는 무리하지 않고 낮은 중심을 통해 버텼다.
골든스코어 시작 이후 허미미가 업어치기를 시도했다. 그래도 데구치의 철벽 같은 수비를 이겨내지 못했다. 지도가 2개인 허미미가 계속 공격을 시도했다. 골든스코어 내내 수비적이었던 데구치에게 지도가 주어졌다.
이제 대등한 상황서 진짜 의미의 연장전이 시작됐다. 허미미가 지친 데구치 상대로 계속 몰아쳤다. 데구치는 다리에 쥐가 난 듯 불편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심판은 갑작스레 위장 공격을 선언했다. 결국 허미미는 지도 3개로 패하면서 금메달을 놓치게 됐다. 결승 내내 제대로 된 공격도 한 번 하지 못한 데구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패배였다. 규정상 오류는 없다지만, 누가 봐도 허미미가 몰아쳤고 데구치는 공격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 위장 공격에 대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경기 후 허미미는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너무 아쉽다.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결승에 출전해 좋다"라며 "나도 위장공격인 줄 몰랐다. 시합이니까 어쩔 수 없다. 앞으로는 더 생각하고 잘해야겠다"라고 말했다.
김미정 대표팀 감독 역시 "3번째 위장공격 지도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미미가 워낙 앉으며 경기를 펼치는 스타일이다. 상대가 모션을 크게 쓰면서 움직인 것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라며 "계속 일어나면서 경기를 펼쳤는데 마지막에 위장 공격을 인정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라고 아쉬움을 토해냈다.
승리한 데구치도 마음껏 웃지 못했다. 그는 반칙승이 선언된 뒤에도 미소를 짓지 않았고, 잠시 허공을 바라봤다. '캐나다 유도 최초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역사를 쓴 선수에게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엇다.
데구치는 기자회견에서도 작심발언을 내놨다. 그는 판정 이야기가 나오자 "꽤 어려운 질문이다. 지난 3년간 유도는 많이 바뀌었다. 난 유도를 위해 우리가 바꿔야 할 게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마지막) 페널티에 대해선 따로 할 말이 없다.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유도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허미미의 아쉬운 패배 이후 일부 한국인들이 데구치의 소셜 미디어를 찾아가 화풀이를 했다. 욕설까지 섞어가며 도를 넘는 '악플 테러'를 자행한 것. 편파판정이라며 데구치를 비난하는 이들과 말리는 이들이 충돌하기도 했다.
결국 데구치가 직접 입장문을 올리면서 사태 진정에 나섰다. 그는 자신이 상대했던 선수들에게 미안하다며 허미미에게 간접적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데구치가 규칙을 위반하거나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우승한 게 아니기 때문에 여러 모로 씁쓸함이 남는 상황이다.
한편 아쉽게 은메달을 획득한 허미미는 한국 유도의 기대주다. 그는 한국 국적 아버지와 일본 국적 어머니 사이에서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6세 때 아버지를 따라 유도를 시작한 허미미는 2017년 일본 전국중학교유도대회에서 우승하며 ‘유도 천재’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일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허미미의 선택은 태극마크였다. 그는 2021년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한국 대표팀을 택했다. 게다가 그는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1857∼1920)의 5대손이라는 숨겨진 인연도 알게 됐다. 허미미는 올림픽을 앞두고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프랑스 하늘에 태극기를 휘날리러 갑니다"라는 출사표를 던졌고, 귀중한 은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에 오르면서 약속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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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크리스타 데구치 소셜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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