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어린이 댄스교실 흉기 난동’ 사건, 가짜뉴스가 혐오 만나 반이슬람 시위로

박은경 기자 2024. 8. 1.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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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아랍식 이름” 유포
극우단체, 반이민 부추겨
영국의 불법 이민 반대자들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시위 중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말 영국에서 발생한 어린이 댄스교실 흉기 난동 사건이 반이슬람 폭력시위로 번지면서 수십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용의자에 관한 거짓 정보와 극우단체의 부추김이 더해지면서 비극을 추모할 새도 없이 또 다른 비극이 만들어졌다.

1일(현지시간)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사우스포트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이후 영국 곳곳에서 반이슬람·반이민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30일 사우스포트에서 열린 시위로 경찰관 53명이 다쳤으며, 골절이나 뇌진탕을 겪은 중상자도 8명 나왔다. 지난달 31일 런던 다우닝가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참가자들이 “우리 나라를 찾고 싶다”는 구호를 외쳤고, 경찰을 향해 맥주캔과 유리병을 던지며 공격했다. 100명 이상이 체포됐다. 같은 날 더럼주 하틀리풀에서 일어난 시위에서는 경찰차가 불탔다.

시위의 발단은 어린이 댄스교실 흉기 난동 사건의 용의자를 둘러싼 가짜뉴스다. 지난달 29일 오전 한 17세 소년이 댄스교실에 난입해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6~9세 어린이 3명이 사망했다. 다친 어린이 8명 중 5명이 위중한 상태고, 현장에서 용의자를 막던 성인 2명도 중태다. 경찰은 이 사건의 용의자가 웨일스 카디프 태생으로 사우스포트 인근 마을 뱅크스에 거주해 왔다고만 밝히고 종교는 공개하지 않았다. 영국은 18세 미만 미성년 용의자의 신상은 상세히 밝히지 않는다.

비극적 사건이 반이슬람 혐오 시위로 변하는 데는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소셜미디어에는 범인의 이름이라면서 아랍식 이름이 떠돌았고, 그가 소형 보트를 타고 영국에 입국한 지 얼마 안 되는 이주민이라는 유언비어도 퍼졌다. 혐오 발언으로 여러 차례 논란이 된 전직 킥복싱 선수 겸 인플루언서 앤드루 테이트는 “침략자들이 당신 딸들을 학살하는데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서 부추겼다. 이 글은 조회수 400만 이상을 기록했다. 극우단체 ‘영국수호리그’(EDL)를 공동 설립한 영국의 반이슬람 활동가 토미 로빈슨은 정부를 향해 “국경을 폐쇄하고 모든 범죄자를 추방하라”고 요구했다.

채널3나우 같은 일부 매체는 흉기 난동범이 무슬림 망명 신청자라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흘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퍼진 가짜뉴스로 인해 혐오 집회가 여러 도시에서 일어났다.

더타임스는 “거짓 정보가 폭력으로 바뀌는 데 24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면서 “이번 사태는 SNS 시대에 영국에서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가짜뉴스 캠페인”이라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용의자가 무슬림, 이민자, 난민 혹은 외국인일 것으로 추측하는 SNS 게시물이 24시간 동안 최소 2700만건 쏟아졌다고 더타임스에 밝혔다.

경찰은 소셜미디어에 도는 피의자의 이름은 사실과 다르다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과도한 억측을 하지 말라”고 진화에 나섰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엑스(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사우스포트 주민들은 우리의 지원과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며 “희생자를 위한 추모회를 폭력으로 강탈한 자들이 슬픔에 잠긴 지역사회를 모욕했다”고 밝혔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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