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바이든 사퇴와 윤 대통령의 선택

김진우 기자 2024. 8. 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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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구도를 극적으로 바꾼 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는 정치 지도자의 자질과 책임의식, 권력의 속성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대선 후보 첫 TV토론 후 불거진 ‘고령 리스크’로 당 안팎의 압박을 받다가 재선을 포기하기까지 25일간은 바이든에게 당혹과 분노, 고심과 결단의 시간이었을 테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 투표일을 100일 남짓 앞두고 재선 도전을 포기한 건 사상 초유의 일이다.

바이든은 3수 끝에 대통령에 오르는 등 50년 넘게 정치인으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물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막을 수 있는 건 4년 전 그를 제압한 자신밖에 없다는 사명감이 강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자신의 정체성과 경력을 부정하는 선택을 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이번 사퇴극은 폐쇄적이고 자기도취적인 권력의 속성도 함께 드러내 보였다. 바이든은 재선 포기 압력이 갈수록 커지는데도 최측근이나 가족의 의견에만 의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선 포기 직전까지도 트럼프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고, 선거운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기객관화를 결여한 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한 것이다.

또 하나 짚어야 할 것은 바이든의 고령 리스크가 재발하기 전까지 민주당 내에서 이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제기하는 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바이든의 고령 실태를 쉬쉬하기는 백악관 참모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다 잘될 거라고 믿거나 사고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자기보신과 무사안일주의인 셈이다.

권력은 잡기도 어렵지만 내려놓기는 더 어렵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존경받는 이유는 종신 대통령으로 계속 군림할 수 있었지만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미련 없이 대통령직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신생 공화국의 첫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행동이 선례를 만들 수 있다는 책임감과 권력 행사를 절제하는 리더십을 보인 것이다.

한국 정치에도 권력에 취해 초심을 잃고 아집에 빠져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놓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갑자기 출세한 이들일수록 권력이 주는 위세에 포획돼 자기배신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지난 2년여간의 국정운영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때 내건 ‘공정과 정의, 상식’을 스스로 배신했다. 여당의 총선 참패로 민심의 심판을 받았지만 국정쇄신이나 통합은 말로 그쳤다. 채 상병 사망사건과 김건희 여사 의혹에 대한 특검 필요성을 키운 오만과 독선의 국정운영은 그대로였다. ‘윤심’ 개입 논란이 일었던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친윤’을 내세운 원희룡 후보를 꺾고 ‘절윤’(윤 대통령과 절연)으로 평가받던 한동훈 후보가 압승했다. 또 한 번 ‘윤심’의 패배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전당대회 다음날 한 대표를 비롯한 신임 지도부와 낙선자들을 대통령실로 불러 삼겹살 만찬을 했다. “선거 때 일은 다 잊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30일엔 한 대표와 별도로 만나 “애정 어린 조언”(대통령실 관계자)을 했다고 한다. 당정 화합을 연출하면서 ‘20년 넘은 우리 사이에, 알지?’라고 다짐이라도 받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찔끔찔끔 변화하는 척하면서 위기를 모면해보려는 건 안이한 대처 방식이다. 20%대 후반(갤럽 기준) 지지율로 레임덕 위기는 상시화했다. 야권을 중심으로 나오는 대통령 임기 단축을 전제로 한 4년 중임제 개헌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만큼 민심은 싸늘하다. 정부·여당과 야당의 대치 국면이 이어지면서 정치와 민생은 길을 잃고 있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야 할 책임은 결국 국정 최고지도자에게 있다. ‘너 죽고 나 죽자’식의 막무가내가 아니라면 격노와 즉흥, 독선과 아집으로 점철된 국정운영의 방향타를 돌리고, 내줄 것은 과감하게 내줘야 한다.

바이든의 사퇴는 이대로는 공멸한다는 위기의식 아래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을 떨쳐낸 바이든과 그 같은 결단을 이끌어낸 민주당이 만들어낸 결과다. 물론 평가는 아직 이르다. 트럼프가 승리한다면 바이든의 결단이 너무 늦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바이든 대신 나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이긴다면 바이든은 자신보다 국가를 우선한 지도자로 기억될지 모른다. 바이든은 “(후보에서) 물러나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 직무를 다하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 당과 국가에 최선의 이익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틈만 나면 한·미 공조를 강조해온 윤 대통령은 바이든의 결단을 어떻게 생각할까.

김진우 정치에디터

김진우 정치에디터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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