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지네의 딜레마

기자 2024. 8. 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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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초대 저출생대응수석비서관으로 계량경제학자를 임명했다. 경제기획원을 모델로 인구전략기획부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더니, 인구를 주로 경제 문제로 접근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명확히 드러냈다. 인구 관련해서 수행한 연구를 살펴보니 계량경제학자답게 실증분석에 주력하고 있다. 예컨대 일반원리에 해당하는 함수를 채택하고 특정 변수를 통제할 경우 그 함수의 누진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패널 자료를 통해 추정한다. 정부 출연 연구소도 대부분 계량 연구에 치중한다. 이를테면, 인구수와 인구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변수를 인구균형방정식으로 모형화하고 이를 통해 인구수와 인구구조의 변화를 예측하고 설명한다.

왜 이렇게 인구를 변수의 방정식으로 접근하는 계량 연구가 저출생대응 정책을 주도할까? 변수 중심의 사회학 연구를 미국사회학의 주류로 제도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라자스펠트. 지네의 우화를 통해 변수 중심의 사회학을 정당화한다. 지네는 두꺼비가 장난으로 다음과 같이 묻기 전까지는 너무나 행복했다. “지네야, 너는 어떤 순서로 발을 내딛는 거니?” 지네는 자기도 너무 궁금해서 궁리하다가 도랑에 빠지고 말았다. 어떻게 걸어야 할지 몰라 발이 그만 꼬여버렸기 때문이다. 이 우화는 보통 지네의 딜레마로 해석된다. 지네가 걷는 행위에 신경 쓰지 않을 때는 잘 걸었지만, 어느 발부터 내딛는 게 맞는지 의식하며 걷다가 오히려 자빠졌다는 것이다. 라자스펠트는 다르게 묻는다. 어떤 연구자가 무슨 목적으로 어떤 지네에게 질문했는가? 이 연구에 참여한 다른 지네는 질문을 받고 어떤 모습을 보였는가? 이러한 질문에 지네는 나름 합당한 답을 했을 것이다. 연구자는 이러한 응답을 바탕으로 ‘걷기 행태의 일반원리’에 도달해야 한다. 과학의 목적은 경험 세계의 특정 현상을 기술해서, 결국 이 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 일반원리를 확립하는 것이다.

한국은 한때 가족제도 안에서 아이를 많이 낳는 나라였다. 그러다가 왜 아이를 낳느냐고 묻자, 갑자기 아이를 낳지 않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해도 결혼을 왜 해야 하는지, 결혼해도 아이를 왜 낳아야 하는지 답하기 어렵다. 그럼 다시 가족제도 안에서 아이를 많이 낳게 하려면? 무수한 경험 연구를 통해 결혼과 출생의 일반원리에 도달해야 할 것이다. 이후 이러한 일반원리를 법칙 삼아 경험자료를 검정한다. 변수 사이의 상관관계를 설정하는 가설이 동원된다. “살아온 삶의 수준보다 향후 살아갈 삶의 수준이 좋아질 것으로 판단하면 결혼과 출산을 결정할 것이다.”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결혼과 출산을 결정할 것이다.”

수많은 경험 연구를 축적해서 결국 결혼과 출생의 일반원리를 방정식으로 만들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변수 간의 특정한 상관관계를 가정하는 여러 가설을 만들어서 검정할 수도 있다. 사실 연구 대상의 수가 많아 그 일반적 유형을 파악하는 게 필요할 때는 계량 연구가 딱 맞다. 정책을 입안하기 위해서도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일반모형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계량 연구만으로는 사회적 삶이 지닌 풍부한 ‘문화적 의미’를 드러내기 어렵다.

가족은 신앙, 희생, 열정을 통해 성원을 결속한다는 의미에서 종교적이다. 불멸성! 가족은 현세의 복리를 뛰어넘는 구원을 약속하는 종교다. ‘구원종교’로서의 가족제도는 이 세상이 제공하는 부, 권력, 친밀성, 에로티시즘, 진리 등 온갖 ‘주술적 재화’를 완전히 거부한다. 그 덕에 이 세상 재화가 종교적 의미를 갖게 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지금 이 구원종교가 파탄났다. 현세의 재화를 늘려주는 주술적 정책은 결혼·출생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맺기 어렵다. 지네의 딜레마! 계량 연구뿐 아니라 가족제도의 문화적 의미를 탐구하는 ‘질적 연구’가 필요하단 점을 알려준다.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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