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라면은 엄마한테 배운다
한국 라면이 요즘 난리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붐을 일으키고 있다. 외국에서 말이다. 한 회사는 주가가 치솟고 있다. 내가 기억하기에 그 회사는 한때 경영이 어려워 크게 고생하기도 했다. 그 회사 제품은 매운 라면인데, 공장을 세게 돌려가며 납기를 맞추고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한국 라면이 빅 히트를 기록한 경우가 적지 않아 업계에서도 처음에는 ‘그러다 말겠지’ 했다고 한다. 그러던 경쟁 업체들이 진땀을 흘리며 추격에 나섰다. 얼마 전 외국인 친구가 한국에 방문했다. 선물로 그 라면 한 박스를 준비했다. 갈 때 보니 양손에 두 박스씩 들고 공항 수화물 카운터에 나타난 게 아닌가. 원조 나라에 갔으니 많이 사오라고 가족이 신신당부를 했다고 한다. 선물용으로 특히 인기라고 한다. 언론은 이 라면의 성공 요인을 K팝으로 보기도 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가고 있다.
라면은 칼로리이고 식사이고 상품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무엇이 한국인 유전자와 경험에 내장되어 있다. 개별적인 한국인은 대부분 최초의 요리를 라면으로 시작한다. 나도 그랬다. 밥을 차려 먹는 것보다 간단하지만, ‘차리는’ 작업을 넘어서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간단하지만 요리의 과정을 압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을 끓이고, 면을 삶고, 수프를 넣고, 계란이나 파를 넣고, 그릇에 담아 반찬을 곁들이는 일관된 과정이 통상적인 요리와 흡사하다. 그래서 라면 잘 끓이는 사람은 요리를 잘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런 학습은 보통 어머니로부터 배운다. 어머니의 ‘감시’(?)와 지원을 받으며 첫 시도에 나선다. 많은 한국인들이 그렇다. 의외로 성공했을 때 성취감도 있다.
인스턴트 라면은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였다. 어머니=밥이었고, 라면은 부등호였다. 인스턴트라는 말이 그런 선입견을 주었다. 간편해서 붙인 말이 오히려 네거티브가 되었다. 요리사로서 봐도, 라면은 결코 인스턴트가 다는 아니다. 칼국수처럼 반죽을 하고 밀고 면을 완성하고 육수를 만드는 과정에 비해 인스턴트일 뿐, 현대사회에서는 라면도 어엿한 요리다. 어려운 요리는 점점 하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라면이라도 끓이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요리에 접근하지 않게 될 것이 자명하다. 라면을 끓이면서 불과 물, 요리의 기초적인 이해를 하게 된다. 최초의 라면 회사들이 염두에 두지 않았을 중요한 대목이다. 요리 잘하느냐고 물어보면 쑥스러워하며 “라면 정도는…”이라고 말하는 태도는 이제 달라져도 된다. 라면 잘 끓인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요새는 라면도 개별적이고 복잡한 레시피가 퍼져나간다. 라면이야말로 그런 변화를 시도하기에 최적이다. 크림을 넣은 된장찌개는 절대 나올 수 없지만, 라면은 가능하다(실제로 나오고 있다. 카르보나라 라면 같은 것).
라면 우습게 보지 말기를. 우리가 우연히 얻은 라면의 종주국 시민의 자부심을 갖기를(한국인은 1인당 연간 80개 가까운 라면을 먹는 세계 1위권 라면 소비자들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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