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134) 부산 서면
부산은 조선시대에 동래현, 동래도호부, 동래군, 동래부 등으로 불렸고 바다에 면한 포구를 ‘부산포’(현재 부산의 동구)라 했으니, 부산은 동래의 아주 일부분에 불과했다. 고려 말부터 왜구의 침입이 잦자 조선 조정은 부산포, 내이포(진해), 염포(울산) 등 삼포(三浦)를 일본과의 무역 장소 및 거주지(왜관)로 지정하여 교류를 양성화했다.
하지만 열린 곳은 곧 침략의 입구이기도 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산포에 설치된 부산진은 일본군의 첫 공격 장소가 되었다.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자 부산포 주변(동구, 서구, 중구, 영도구)은 개항장이 되면서 일본의 조계가 형성되어 일본의 경제침략 첨병이 되었다. 1910년 국권피탈 후에는 동래부 전체가 ‘부산부’로 개칭됨에 따라 동래가 부산이 되었다. 하지만 1914년에는 부산부가 개항장 일대로 축소되고 나머지 큰 지역은 ‘동래군’이 되어 부산과 동래가 분리되었다.
동래군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동래군 동래면이었던 곳의 중심이 지금 부산의 ‘동래구’이다. 동래군의 서쪽에 있는 면이 ‘서면(西面)’이었는데, 그곳이 현 부산의 서면이다.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부산시를 경상남도에서 분리시켜 내무부 ‘직할’의 도시로 만들었다. 정식 명칭은 ‘부산시’였지만 ‘부산직할시’(1981년 정식 개칭)는 사실상 이때 시작되었다. 이를 기념해 ‘부산탑’이 세워졌는데 지금의 서면교차로 정중앙에 있었다. 서면은 부산을 상징하는 곳이 되었다.
1971년 사진은 부산탑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자가용이 부산탑 주변을 돌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원래 서면 ‘로터리’였다. 탑의 전체 모양은 부산의 ‘부’자 모양이고, 탑 윗부분의 울퉁불퉁한 모양은 ‘오륙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부산탑은 1981년 부산지하철 1호선 공사를 하면서 철거되었다. 부산 시민들이 추억하는 부산탑은 서면역 4번 출구와 영광도서 앞에 ‘축소 모형’으로 남아 있다.
2023년 사진은 ‘별’ 모양의 교차로 전체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번화가로 바뀐 서면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로터리가 교차로로 바뀐 것은 직접적으로는 지하철 공사 때문이지만, 자동차 중심 도시 전략의 필연적 결과일 것이다. 파리의 ‘15분 도시’와 같은 새로운 도시 전략이 세워진다면 서면의 모습은 언젠가 또 바뀔 것이다.
* 이 칼럼에 게재된 사진은 셀수스 협동조합 사이트(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김찬휘 선거제도개혁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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