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 불의의 시대, 시와 소설로 ‘구도의 길’ 걷다
고교 때부터 빼어난 글재주 명성
‘너에게…’·‘청산’·‘숨’ 등 남겨
동인문학상·대산문학상 등 수상
민주화 운동으로 4차례 ‘옥고’도
‘구도의 작가’로 잘 알려진 시인 겸 소설가 송기원이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1일 문학계에 따르면 전남 해남에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하던 송기원은 지병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지난달 31일 오후 숨을 거뒀다.
전남 보성 출생인 고인은 고교 재학 시절에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는 등 일찌감치 글재주를 인정받았다.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현 중앙대 문창과)에 입학한 그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로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자유실천문인협회, 민족문학작가회의 등에서 활동하며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에 적극 나섰던 그는 시국사건에 연루돼 4차례나 옥고를 치르면서 한동안 제대로 작품활동을 하지 못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주범으로 몰렸으며 1985년에는 민중교육 필화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작품활동을 본격적으로 재개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다. 1993년 단편 ‘아름다운 얼굴’을 발표한 그는 유년기와 청년기의 방황과 편력을 탐미적으로 그려낸 작품들을 써냈다. 세상의 상처와 치부, 자기혐오의 감정을 구도적인 서사로 승화한 작품들을 통해 ‘구도의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으로는 소설집 <월행> <다시 월문리에서> <인도로 간 예수> <사람의 향기>, 장편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 <청산> <숨>, 시집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 등이 있다. 역사의 비극성과 그 속의 인간을 다룬 <월행>(1979년)은 전후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2021년 발표한 마지막 장편소설 <숨>에는 백혈병으로 먼저 딸을 떠나보낸 작가 개인의 경험이 녹아 있다. 백혈병으로 딸을 떠나보낸 작중 화자가 초기 불교 수행법과 명상을 통해 자기혐오와 죄의식, 상실의 고통을 극복하고 완전한 평온함에 이르는 과정을 그렸다. 자전적 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는 1996년 김영빈 감독 연출, 박상민·최민수 등이 주연한 <나에게 오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1990년 국악인 김영동의 권유로 국선도에 입문한 고인은 오랫동안 깨우침의 길을 좇아 방황과 탐색을 거듭했다. 1997년 인도로 떠나 요가의 호흡법을 배우고 히말라야 산기슭을 헤매고 다녔으며, 인도에서 돌아온 뒤 계룡산 언저리에서 탁발수행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해남 땅끝문학관에서 조각가 강대철과 함께 명상과 참선을 주제로 한 전시회도 가졌다. 그는 이 전시회에서 잠언시와 해골을 주제로 그린 수묵화 등 작품 15점을 선보였다.
그는 제2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으며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김동리문학상,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했다.
빈소는 대전 유성구 선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3일 오전 8시, 장지는 세종은하수공원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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