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중에 될 여자’를 만났다는 백희…사실일까[책과 삶]
제인에게
안준원 지음
현대문학 | 312쪽 | 1만6800원
“여자를 만났어. 내가 나중에 될 여자.”
‘백희’와 ‘나’는 옥탑방에서 함께 살았다. 백희는 열심히 일한 직장에서 번번이 잘렸다. 마지막으로 잘리고 나서는 좀처럼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시체처럼 누워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들만 뒤적였다.
백희는 어느 날 여행을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그 뒤로 연락이 끊겼다. 3년 만에 돌아온 백희는 “내가 나중에 될 여자”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안준원의 소설집 <제인에게>에 수록된 단편 ‘백희’는 시간에 대한 소설이다. 백희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골목길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걸어가는 여자를 본다. 이내 그 여자를 미래의 자신이라고 확신한다. 백희는 매일 그 여자를 따라잡으려 하지만 번번이 놓친다. 그러던 어느 날 도망치듯 사라지던 그 여자가 돌연 백희를 향해 얼굴을 돌리려 한다.
골목길 그 여자는 정말 미래의 백희였을까. 어쩌면 백희는 잇따른 불행으로 한때 과거에 사로잡혔듯, 미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혀버린 건 아닐까.
소설은 이에 대한 답을 내리기보다는 더없이 환하고 따뜻한 길로 나아간다. 백희는 ‘나’에게 시간은 연속적이지 않으며, 그러므로 과거·현재·미래의 자신은 모두 다른 존재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독자는 결말에 이를 때쯤 백희의 이야기 속에서 분절된 채 존재했던 시간들이 어느 순간 슬그머니 서로 이어졌음을 깨닫게 된다.
저녁 어스름, 검은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돌아가는 백희가 옥상에서 바라보는 ‘나’를 향해 인사하고는 이내 골목길로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은 탄성을 자아낼 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날 늦은 오후부터 저녁 어스름까지 ‘나’와 ‘백희’가 마주한 옥상에서는 어떤 마법의 시간이 흘렀던 걸까.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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