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이들의 일상도 소설이 된다[책과 삶]

김한솔 기자 2024. 8. 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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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들
김려령 지음
창비 | 256쪽 | 1만5000원

김려령 소설집 <기술자들>의 등장인물들에게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표제작 ‘기술자들’은 배관공 최가 우연히 만난 조와 함께 실리콘, 줄눈 시공 같은 잡다한 일을 하며 살게 되는 이야기다. ‘상자’는 평범하게 연애하던 30대 초반의 연인이 전혀 예상치 못한 사소한 문제로 이별하는 이야기, ‘황금 꽃다발’은 얄미운 큰아들과 마음 쓰이는 작은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독백이다. ‘세입자’에서 주인공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보증금을 날리는 일이 벌어지긴 하지만, 그조차도 대단히 드라마틱하게 그려지진 않는다.

책을 덮고 다시 생각해본다. 사실 평범한 사람의 일상에 영향을 주는 건 어떤 ‘소설 같은 사건’이 아니라 이런 일들일 것이다.

운영하던 가게를 접고 정해진 목적지조차 없이 떠나야 하는 사람 앞에 갑자기 못하는 일이 없는 무던한 성격의 기술자가 나타나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결혼까지 할 줄 알았던 연인에게 엄마가 보관해 둔 자신의 어릴 적 물건을 보여줬더니 ‘징그럽다’며 이별을 통보하는 건 다음 연애를 망설이게 할 만큼 황당한 사건이다.

이기적인 큰아들은 잘 먹고 잘살고, 순한 작은아들은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리는 건 마음이 아프지만, 작은아들은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고 가끔은 어머니와 맛있는 동치미국수도 말아 먹으며 일상을 버틴다. 학창 시절 오해가 쌓여 서서히 멀어졌던 친구와 어른이 된 뒤 우연히 다시 만나 오해를 풀게 되기도(‘오해의 숲’) 한다.

갑자기 일이 잘 풀렸으면 좋았겠지만, 처음부터 오해하지 않았다면 긴 세월을 불편한 마음으로 보내지 않았겠지만, 누구나 선택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일에 적응하고 대처해 나가면서 살아간다.

작가가 등장인물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그것을 그대로 원고지에 옮겨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등 히트작을 쓴 작가가 처음으로 선보인 소설집이기도 하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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