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어봅시다] 세월만 가는 `슈퍼컴 6호`… GPU 가격 오르자 급제동

이준기 2024. 8. 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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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까지 예산 추가 확보 안 되면 연내 사업자 선정 어려워
사업 지연으로 기초과학, 초거대 AI 연구지원 서비스 차질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구축된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 모습.

팍팍한 나라 살림에 AI 대전환 시대의 필수 인프라인 슈퍼컴퓨터 6호기 도입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생성형 AI로 촉발된 GPU 가격 급등과 수급난이 겹쳐 이미 네 차례 유찰됐다. 예산 확대를 위한 정부의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가 마무리되지 않으면서 연내 사업자 선정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올해 말 정식 서비스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대내외적 환경 변수와 글로벌 공급망 위기 여파로 슈퍼컴 6호기 사업자 선정이 내년으로 더 미뤄질 가능성도 있어 기초과학 분야와 초거대 AI 연구 서비스에 공백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29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지난해 네 차례에 걸친 슈퍼컴 6호기 구축사업이 모두 '무(無)응찰'로 유찰됨에 따라 과기정통부와 사업 주관기관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는 추가 예산 확보를 위해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를 요청, 지난 3월부터 재정 당국에서 진행하고 있다.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는 총사업비가 당초보다 15% 이상 증가했을 때, 예비타당성조사에 준해 증액 규모를 검토하는 절차를 뜻한다.

과기정통부는 2022년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해 슈퍼컴 6호기 구축에 총 2929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이 중 장비 구축비는 3분의 2에 달하는 2000억원이 넘는다. 사업 기간은 2024년부터 2028년까지 5년 간으로, 이론 성능은 600페타플롭스(PF) 규모다. 성능 면에서 세계 10위권 진입이 목표였다.

특히 슈퍼컴 6호기는 기존 CPU 계산자원 외에 처음으로 GPU 계산자원을 도입해 에너지와 신소재, 반도체, 바이오, 신약, 우주, AI 등 첨단 분야의 과학·공학적 계산과 문제 해결, 연구성과 창출 등에 활용한다. 이 가운데 30%의 GPU는 자연어처리, 강화학습, 자율주행 등 초거대 AI 연구개발에 지원한다.

하지만, 생성형 AI 등장에 따른 GPU 가격 상승과 환율 인상, 고금리 등을 대외적 변수가 생기면서 슈퍼컴 6호기 사업 입찰에 단 한 개의 기업도 참가하지 않았다. 입찰 참가 기업 입장에서 2900억원 규모로는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해 입찰에 참가하지 않은 셈이다.

KISTI는 고육지책으로 지난달 10월 입찰에서 당초 도입하려된 슈퍼컴 6호 성능을 낮춰 입찰을 냈지만, 이마저 무응찰로 유찰됐다. 이후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정부의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 결과가 차일피일 늦어지면서 슈퍼컴 6호 구축사업은 전면 표류되고 있다.

현재 슈퍼컴 5호기의 사용률은 90%대를 넘어섰고, 시스템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자원 부족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 KISTI는 슈퍼컴 5호기를 활용한 대학과 연구기관의 연구지원 서비스를 제때 지원하지 못하고 있으며, 신규 연구과제는 아예 접수받지 못하고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해외 기관의 슈퍼컴에 맡기고 있는 상황이다.

과학계에선 최소 600억원 이상의 예산을 추가 확보해야 하고,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 결과가 9월 이전에 나와야 연내 사업자를 선정해 내년부터 슈퍼컴 6호기 구축 사업에 착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9월 안으로 추가 예산안이 확정되도록 재정 당국과 적극 협의하고 있다. 우리의 상황을 잘 알고 있어 10월을 넘지 않아 검토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며 "입찰에 경쟁력 있는 사업자들이 참가하고, 입찰부터 사업자 선정까지 빠르게 진행할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만반의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과연 슈퍼컴 6호 구축사업 입찰에 해외 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실제 참여할 것인가다. 작년보다 환율이 올랐고, AI반도체 수요 급증에 따른 GPU 공급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슈퍼컴 관계자는 "아직 GPU 공급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추가 예산이 어느 정도 되느냐에 따라 사업자들의 관심이 달라질 것"이라며 "사업자를 연내 선정해 내년 장비 도입과 테스트 등을 거쳐 연말쯤 슈퍼컴 6호기를 가동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사업이 1년 넘게 늦어지는 것이어서 600PF 수준으로 당초 계획했던 서비스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슈퍼컴 6호기 구축 사업자로는 크레이를 인수한 HP와 에비든, 레노버, 슈퍼마이크로, 델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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