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남북의 올림픽 셀카
2024 파리 올림픽 탁구 경기장에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중국의 오성홍기가 올라가고, 양옆으로 태극기와 인공기가 게양됐다. 중국·북한·한국의 혼합복식 선수들이 금·은·동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에 나란히 선 것이다. 시상식의 하이라이트는 다 같이 찍은 셀카였다. 한국 임종훈 선수가 스마트폰을 들고 신유빈, 중국 왕추친·쑨잉사, 북한 리정식·김금용 선수와 한 화면에 잡히도록 손을 뻗자 모두 휴대폰을 바라봤다. 쑨잉사의 제안으로 자리까지 바꿔가며 여러 번 촬영했다. 리정식은 다소 굳은 표정이었으나 김금용은 미소를 지었다. 그 뒤에 선 한국·중국 선수들의 환한 미소가 어우러지며 역사에 남을 멋진 한 컷이 만들어졌다.
남북 선수가 셀카를 찍는 진풍경은 파리 올림픽에 ‘빅토리 셀피’ 순서가 생겨 가능했다. 전통적으로 올림픽 시상식에는 휴대전화 반입이 금지돼 있지만, 이번 대회에선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공식 후원사 삼성전자가 제공한 스마트폰으로 시상대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덕분에 메달 못지않은 셀카 감동이 전 세계로 전해질 수 있게 됐다.
IOC가 이 사진을 공식 계정에 공개하자 해외 언론도 큰 관심을 보였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적대적인 이웃 나라 사이의 국경을 넘나드는 드문 단결을 보여줬다”고 했다. 현지 매체 르파리지앵은 평화라는 올림픽 정신을 보여준 유일한 장면이고, ‘역사적 셀피’라고 평했다.
올림픽이 열린 파리에서, 북한 선수들에게선 찬바람이 불었다고 한다. 남한 선수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언론 취재에도 일절 응하지 않았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탁구 은메달 소식을 이틀이 지난 1일에서야 보도하면서도, 한국의 동메달 수상은 전하지 않았다. 딱 요즘의 남북관계 그대로였다.
스포츠는 종종 정치와 이념의 장벽을 뚫는 역할을 한다. 미국이 중국의 ‘죽의 장막’을 뚫은 것도 핑퐁 외교가 시발점이다. 오물 풍선과 대북확성기, 핵·미사일 대치로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잠시나마 녹아내린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시상대에 선 남북 청년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폈다. 훈훈하고 또 한편에선 아리게, 한 컷의 셀카가 파리 올림픽의 사진으로 남았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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