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했으니 국회 속기록에서 삭제? 안 됩니다 [정치BAR]

이우연 기자 2024. 8. 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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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국회 과방위 전체회의에선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지금은 임명됐습니다)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여부를 놓고 여야가 맞붙었습니다.

"제 발언을 속기록에서 위원님들이 양해해 주신다면 삭제할 것을 요청합니다." 자신의 발언을 국회 속기록에서 지워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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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연의 우연히 여의도
취지 유지하는 선에서 수정은 가능
지난달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민희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박충권 위원님. 제가 아까 대화 과정에서 전체주의 운운한 부분에 대하여 깊이 사과드립니다.”(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지난달 29일, 국회 과방위 전체회의에선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지금은 임명됐습니다)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여부를 놓고 여야가 맞붙었습니다. 최민희 위원장을 사과하게 만든 발언은 여야의 공방 도중 나왔습니다.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이 야당의 공세를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남용한 심각한 인민재판이 아닌가”라고 하자 최 위원장이 “전체주의 국가에서 생활하시다 보니 민주주의적 원칙이 안 보이나. 인민재판이라는 표현이 말이 되는가”라고 받아친 겁니다. 박 의원이 북한 이탈주민인 점을 겨냥한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제대로 항의하지 못한 박 의원은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인신공격”이라며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논란이 계속되자 최 위원장은 회의 도중 “박충권 위원님께서 사선을 넘어서 자유주의, 민주 국가 대한민국으로 오신 부분에 대해서 경의를 표한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고 했습니다.

사과보다 더 눈에 띈 것은 이어진 최 위원장의 말이었습니다. “제 발언을 속기록에서 위원님들이 양해해 주신다면 삭제할 것을 요청합니다.” 자신의 발언을 국회 속기록에서 지워달라는 것입니다. 이게 가능한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삭제는 안 됩니다. 국회법 제117조는 속기로 작성한 회의록의 내용을 삭제할 수 없으며, 발언을 취소해달라고 했을 경우 그 발언까지도 회의록에 적도록 하고 있습니다. 16대 국회(2003년)에서 개정된 내용인데, 속기록 발언의 내용을 정정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많았으면 그랬을까 싶습니다. 이 법 때문에 욕설이 적힌 속기록도 있습니다. 2019년 여상규 당시 법제사법위원장은 법사위 국정감사 도중 “웃기고 앉았네. 정말 XX 같은 게”라고 말했는데요, 속기록에서 삭제해달라는 여 위원장의 요청에도 욕설과 삭제 요청이 고스란히 속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다만 발언의 취지가 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정할 수는 있습니다. 법조문·숫자를 착오로 잘못 발언하거나, 간단한 앞뒤 문구를 변경하는 경우, 기록의 착오가 있는 경우, 특정 어휘를 유사 어휘로 변경하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회의록이 배부된 후에 문제가 있는 ‘자구’(문자와 어구)가 있다면 국회의장(본회의일 경우)이나 상임위원장(상임위 회의일 경우)에게 정정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를 이용해 거친 발언을 교묘하게 바꾸는 사례도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임오경 민주당 의원은 2021년 문화체육관광위 국정감사에서 같은 당 정청래 의원을 두고 “친구들을 많이 괴롭히셨답니다”라고 했는데, 속기록에는 “친구들과 많이 다투셨답니다”로 수정됐습니다. 19대 국회에서는 “개떡같이”라는 표현이 “엉망진창”으로 수정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20대 국회에서는 이러한 남용을 막기 위해 정정 요구를 더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송재호 의원 대표발의)이 발의됐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되기도 했습니다.

최 위원장은 자신의 발언을 수정할 수 있을까요? 속기록을 작성하고 편집하는 의정기록과 관계자는 “상임위원장이 특정 자구를 수정해달라는 공문을 보내오면, 법의 요건에 맞는 이상 우리는 수정 작업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최 위원장은 본인이 위원장이니만큼 직접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문제의 회의록은 2일에 배포될 예정입니다. 추후 수정이 될지 궁금합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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