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이 죄가 된 ‘최악의 대통령’

한겨레 2024. 8. 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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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미국 대통령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사람이 워런 하딩.

"대통령답게 생긴" 미남자 하딩이 대통령이 된 지 29개월 만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세상을 떠나자, 하딩의 주검을 실어 나르는 워싱턴행 열차를 보려고 미국 사람 300만명이 몰려나왔다.

신참 정치인 하딩의 주위에는 나랏일을 맡을 사람이 없었다.

하딩은 자기랑 가까운 사람 아무한테나 중요한 일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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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워런 하딩 (1865~1923)

최악의 미국 대통령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사람이 워런 하딩. 1923년 8월2일 하딩이 죽던 날만 해도 민심은 이렇지 않았다. “대통령답게 생긴” 미남자 하딩이 대통령이 된 지 29개월 만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세상을 떠나자, 하딩의 주검을 실어 나르는 워싱턴행 열차를 보려고 미국 사람 300만명이 몰려나왔다.

하딩이 죽은 뒤 하딩 정부의 실체가 드러났다. 하딩은 작은 도시의 신문사 사주였고 오하이오주의 신참 상원의원이었다.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은 이변이었다. 어쩌면 그 때문에 대통령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정치에 싫증 난 시민들은 정치 신인에게 무리한 기대를 걸기 마련이니까.

그게 문제였다. 신참 정치인 하딩의 주위에는 나랏일을 맡을 사람이 없었다. 하딩은 자기랑 가까운 사람 아무한테나 중요한 일을 맡겼다. 하딩 가족에게 신문을 배달하던 측근을 백악관 수석 군사보좌관으로 뽑았고, 이웃집 친구를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으로 앉혔다. 보훈국장이 된 찰스 포브스는 하딩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와이 여행을 한번 같이 간 사이라고 했다.

하딩이 임명한 사람들은 나랏일은 뒷전이고 제 잇속을 차리느라 바빴다. 내무장관 앨버트 폴은 거액의 대출을 받고 석유 개발 이권을 기업인에게 넘겼다. 하딩이 숨진 뒤 밝혀져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티포트돔 스캔들’이다.

하딩이 죽은 뒤 그의 방탕한 사생활도 폭로되었다. 아내 말고 애인이 여럿 있었다. 1927년에는 애인 중 한명인 낸 브리턴이 자극적인 회고록을 출판했다. 하딩이 대던 생활비(와 혼외 자녀의 양육비)가 끊겼기 때문.

시민들은 수군댔다. 스캔들이 터지기 앞서 평판을 지키려 영부인이 하딩을 독살한 것 아니냐고 말이다. 하딩이 죽자마자 영부인은 서류를 파기했고 부검도 거부했다. 죽은 뒤 여러 해 동안 밝혀진 일로 하딩의 명예는 땅에 떨어졌다. “하딩은 행정부의 부패에 개인적으로 연루되지 않았지만, 그의 유일한 죄는 완전한 바보였다는 점이다.” 입담 좋은 작가 빌 브라이슨이 꼬집은 대로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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