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정권에 농락당한 검찰총장, 그의 아마겟돈 [세상읽기]

한겨레 2024. 8. 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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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 7월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록삼 | 언론인

역대 검찰총장 중 권력과 불화한 사례는 지금껏 꽤 있었다. 김각영, 김종빈, 한상대, 채동욱, 문무일, 윤석열, 김오수 등등. 어떤 연유에서건 권력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다는 게 핵심 이유였다. 검찰총장이 권력에 고난을 겪는 모습은 검찰이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는 이미지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정치권의 비리와 부정부패를 징치하다 검찰의 수장이 좌절하는 모습은 국민들로서는 연민의 감정과 더불어 응원을 보내야 할 이유가 됐다. 한동안 검찰을 향한 국민의 신뢰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착시였다. 부정부패에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검찰이라는 이미지는 허구에 가까웠다. 검찰과 그들의 수장은 사실상 권력에 순치했다. 권력에 맞서는 경우라도 대단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풀어갔을 따름이다. 사표를 던지는 식으로 개인의 자존심을 지키려 하거나 아니면 소극적인 기자회견쯤으로 반발하는 정도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세상이 바뀌었다. 모두가 목도하듯 검찰은 2년 전 아예 스스로 권력을 잡고 전면에 나섰다. 더 이상 권력의 도구와 수단으로 남기를 거부하고 주인을 자처했다. 대통령이 된 검찰총장은 대통령실과 정부 내각은 물론, 국무총리 비서실, 금융감독원, 국가정보원, 국민권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등 사회 곳곳에 검사 출신들을 포진시켰다.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컸지만 권력 장악 의지는 노골적이었다.

스스로 권력의 일원이 됐으니 매사가 무소불위다. 공수처 설치 및 수사권 축소 등 검찰 집단의 이해관계 이슈가 전면에 등장할 때마다 정치권과 싸웠고 국민과 맞서며 현실 정치의 한 축으로서 적극 개입했다.2022년 9월 개정 검찰청법 시행으로 직접 수사권이 부패범죄·경제범죄로 축소됐음에도, 시행령 꼼수로 직접 수사가 가능하도록 한 것은 입법부의 법 개정 취지의 원천적 부정을 넘어서 민주주의적 체계와 질서의 부정이다. 검찰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낯 뜨거운 상황임에도 한마디 자성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던 검찰 집단이었지만 야당이 추진하는 검사 탄핵에 검찰 내부망에서 일제히 와글거린다. 스스로 경계하거나 성찰하는 모습은 없다. 한줌이나마 선량하고 정의로운 검찰이 있으리라는 일말의 기대가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는지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검찰정권에서 권력의 중요한 축이 될 검찰총장이 권력과 불화하기 시작했다. 최근 이원석 검찰총장이 겪은 수모는 검찰정권의 가장 큰 걸림돌이 검찰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 부분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및 명품 백 수수 사건 관련 피의자인 김건희 여사 조사와 관련해 검찰총장으로서 존재를 부정당했다. 관련 혐의로 고발된 이후 무려 4년을 훌쩍 넘겨 처음 이뤄진 조사지만 대통령 경호처 건물로 검찰이 찾아가 피의자 쪽에 휴대폰까지 맡기고 진행한, 이름도 해괴한 ‘출장 조사’였다. 그 과정에 검찰총장의 권한은 무력화됐다. 검찰정권에서 검찰총장을 제대로 농락한 셈이다. 이미 지난 5월 서울지검장 등 주요 검찰 인사에서 철저히 배제됐음에도 고작 ‘7초 침묵’으로 대응하는 데 그쳤으니 이 수모는 일찌감치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허수아비로 전락한 듯하지만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는 자신의 말을 이제 와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거 검찰총장들이 그랬듯 사표 제출로 개인의 자존심을 지키는 데 그치거나 자신의 권능을 부정한 몇몇 검사를 징계하는 수준에서 자족하는 것은 결코 정도가 아니다. 비록 시행령 등 편법으로 보전한 것이지만 검찰의 수사 역량은 그대로다. 이 역량을 집중해 검찰이 검찰공화국의 일원이 아님을,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됨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가 그에게 남았다. 대통령 배우자의 국정농단 의혹, 대통령(실)의 수사 개입 의혹 등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권력과의 싸움에 나서야 한다. 최후의 전쟁 아마겟돈을 치르는 심정으로. 이는 검찰 집단의 이익에 부합될 뿐 아니라 미흡한 역량의 공수처, 표류하는 특검법 등 여전히 빈틈투성이인 형사 사법 시스템에서 남겨진 검찰 고유의 역할이기도 하다. 임기 마지막 날인 9월15일 권력의 박수가 아닌, 역사의 박수를 받으며 떠나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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