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칼럼] `양자 얽힘`과 주택임대차 2법
이 세상 인간만사는 칡넝쿨처럼 얼기설기 서로 엉켜 있는 법이다. 상호 간에 끊임없는 되먹임을 통해 정보와 영향을 주고받는다. 세상은 일방보다는 쌍방이다. 이런 현상은 양자물리학의 '양자 얽힘'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초미세 영역에서 양자 얽힘은 고전 물리학에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얽힌 상태의 입자들은 공간적으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연결된 것처럼 즉각적으로 움직인다. 서로 보이지는 않지만 독립적이지 않고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양자 얽힘은 음택풍수(陰宅風水)에서 동기감응(同氣感應)과 비슷하다. 조상을 명당에 모시면 조상과 유전자가 같은 후손들이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얼핏 이해되지 않지만 양자 역학의 눈으로 바라보면 동기감응도 전혀 엉뚱한 얘기는 아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세상을 초연결사회라고 한다. 일상생활에 정보혁명 기술이 깊숙이 들어오면서 모든 사물이 거미줄처럼 인간과 연결된 사회가 되었다.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의 진화로 사람과 사물의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이어진 사회라는 얘기다. 양자 얽힘, 동기감응, 초연결사회는 겉으로 보면 독립적이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측면이 있다.
부동산 시장도 양자 얽힘으로 풀어낼 수 있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존재하는 한, 환경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자신이 세입자든, 유주택자든 말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가령 양도소득세나 종합부동산세 중과세는 다주택자에게만 미치는 세금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어떠한 방식으로 경제적 약자인 세입자에게 전가된다. 임대료가 통제되면 아예 엘리베이터 비용이나 주차료, 계단청소비 명목으로 관리비를 올린다.
2020년 7월 말 임대차 2법이 시행되면서 세입자들의 주거권이 한층 강화되었다. 세입자들은 그동안 2년마다 이사해야 했지만, 새 제도 시행 이후 4년까지 안심하고 살 수 있게 되었다. 계약 2년이 지나면 종전 임대료에 5%만 올려주고 계약갱신청구권을 쓸 수 있어 임대료 부담도 줄었다. 분명 임대차 2법은 세입자에겐 유리하고 집주인에게는 불리한 제도다.
하지만 이런 혜택을 활용하기 위해 세입자들이 재계약에 나서면서 전세 유통 매물이 줄었다. 집주인도 4년 치 전셋값을 한꺼번에 올리고 싶어한다. 이 바람에 전세 시장에서 수급 불균형이 심해지면서 전셋값이 껑충 뛰었다. 멀쩡히 잘 있던 집이 없어져서 전셋값이 오른 게 아니다. 전국에 1,954만 가구가 넘는 집은 그대로 잘 있다. 진짜 문제는 스톡(저량)보다는 플로(유량)다. 아무리 저수지에 물이 많아도 냇가에 흐르는 물이 적으면 고기가 살 수 없듯이 경제는 흐름이 중요하다.
이제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세입자들은 전세를 구하려면 더 큰 비용을 내야 할 판이다. 집주인들은 처음에는 울상을 지었지만, 지금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전셋값이 크게 오르니 집주인들은 임대차 2법의 피해자가 아니라 수혜자가 되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전세보증금을 올려 받아 부동산 투자 비용을 대거 회수했기 때문이다.
세입자의 주거 불안은 여전하다. 임대차 2법 시행 이후 전세 가격이 오버슈팅되니 고점에 전세를 구한 세입자는 매매 가격이 조금만 내려도 깡통전세 피해자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부동산 시장은 서로 되먹임을 통해 움직이기에 일방적이라는 개념은 통하지 않는다. 가령 흑과 백이라는 2가지 물감이 있다고 치자. 처음에는 색깔이 선명해 흑백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되먹임이 계속되면 흑과 백은 회색으로 변한다. 시장에서도 처음에는 누가 수혜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분명했지만, 시간이 흐르니 그 구분마저 모호해졌다.
의도에만 초점을 맞추고 정책을 펴면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나타난다. 선한 의도가 항상 선한 결과를 낳는 건 아니다. 미국의 정치가 벤저민 프랭클린은 "상대를 설득하고 싶다면 이성이 아니라 이익에 호소하라"고 했다.
정책은 당위나 규범보다 현실, 실용성에 근거해 서로가 이익이 되는 '좋은 결과'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직전 계약 대비 임대료를 5% 이내로 올리면 집주인에게 양도세 혜택을 주는 상생임대주택 제도가 좋은 예다. 한쪽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규제는 그 효과가 오래가지 못하고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초래한다. 굳이 양자 얽힘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경제정책은 조화와 합리성에 바탕을 두고 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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